일본풍 만화를 그림 대신 글로 쓴 게 라노벨임.

예를 들어 주인공이 놀라서 뒤로 자빠지는 연출을 생각해 보자. 이건 시각적인 매체인 만화에서 주인공이 놀라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좋아서 쓰이게 된 연출일 거임. 애니메이션은 더 그렇지. 시각적인데다 동적이니까. 옛날 디즈니 만화 같은 거 보면 연출이 얼마나 과장됐냐. 뭐 잡아당기다가 팔이 존나 길게 쭉 늘어나는 연출 같은 건 매편마다 나옴.

당연히 소설에서 차용하기는 부적합한 연출임. 비현실적이지만 시각적으로 직관적인 연출을 굳이 글로 길게 풀어서 쓰다 보니 원래의 시각적인 직관성 같은 장점은 하나도 없고, 비현실적이기만 하니까. 하지만 라노벨은 이런 만화의 연출을 그대로 소설에서 사용함. 그런데 그런 연출이 별 문제가 안 되는 건, 독자들이 그런 장면을 읽을 때 장면을 만화 속 장면처럼 뇌 속에서 필터링하면서 읽기 때문임. 글의 묘사에는 없는 화면 흔들림이나,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같은 걸 상상할 수도 있겠지. 원래는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만화적인 연출들은 글을 읽을 때 만화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됨.

이런 연출들이 아니더라도, 라노벨 하면 떠오르는 미소녀 캐릭터들도 시각적인 매체 속에서 만들어진 캐릭터상임. 과장된 대사나 행동은 만화의 연출과 어울리고, 로리 같은 특수한 캐릭터성은 만화적인 그림 없이는 아예 존재할 수도 없음.

그러니까 그냥 만화를 따라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뇌속에 만화 필터를 깔고 읽는 게 라노벨이고, 그냥 소설이라기보단 만화를 그림 대신 글로 쓴 거에 가까운 거지. 취향을 떠나서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만화를 한번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 라노벨을 읽는다면 아예 이해 안 되는 연출들도 있을 거임.

만약 라노벨이 시장규모가 만화시장이랑 애니시장을 추월한다 해도 라노벨은 만화에 종속적인 매체임. 현실의 모사에 대한 모사로 만들어진 작품들이고, 모사 대상인 만화 없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냥 그런 것 같다고. 사실 안 읽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