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영국하고 대륙 철학이 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는지 설명좀 해줄사람
tolle(58.227)
2017-01-0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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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로크 의회민주주의 입헌군주정 때문이래. 누구나 한 번쯤 철학을 생각한다, 로크 편 보면 나옴.
철학갤로 ~
로크가 철학자가 된 것은 대륙으로 망명하여 지식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대륙 철학을 배웠기 때문임. 그 전에는 본래 의사였고, 평생을 명망가의 집사와 같은 존재로 나이 50 이 넘도록 조용히 살았음.
대륙과 영국이 갈라진건 그냥 지리적인 위치때문. 그 이후는 논리학의 발전을 수용한 쪽이랑 나찌로 수용 못한 쪽으로 나누는게 맞다고 봄
ㄴ 그 이전에 오래전부터 차이 있었지 않음? 경험대합리로
제 대답은 정설이 아니라 가설입니다.(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를) 철학 역사의 큰 흐름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회의주의와 교조주의. 이것은 사람의 이성이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느냐에 대한 신념에 따라 갈립니다. 이성이 일상적 경험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입장이 회의주의, 넘어서려는 입장이 교조주의입니다.
왜 이런 입장의 차이가 생겨나는가? 사람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간 자신의 이성으로 일상적 경험의 영역 이상을 탐구하려는 욕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욕구는 어떤 경우에 적게 일어나는가? 두 가지 정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일상적 경험 세계를 넘어서는 영역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둘째, 일상 영역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한 욕구를 이성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만족시킨다. 예를 들면 종교라든가.. 이러한 욕구가 약하면 회의주의 취향을 갖게 되고, 강하면 교조주의 취향을 갖게 됩니다. (이성이 다루는 영역에 대한 관점에 한하는 말입니다)
흔히, 같은 유럽이라고 생각하지만, 영어문화권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은 기질상의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영어문화권 사람들이 더 세속적이고 실용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를 믿는 비중도 더 높고.. 어떠한 사정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공부가 부족하여 정확히는 모르겠고요. 이런 기질이 철학에 있어 회의주의 전통을 더 좋아하는 경향을 낳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경향이 영미철학과 대륙철학의 차이를 낳는다고 봅니다.
아주 대충 말하며 덧붙이면, 교조주의는 이성으로 종교를 완전히 대체하려는 경향입니다. 반대로 회의주의는 이성으로 종교의 영역을 넘보지 않으려는 경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란, 일상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지식들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가리킵니다. 사람에 따라 그 지식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해, <죽으면 나의 모든 것이 끝>이라는 말에 만족하면 회의주의, 만족하지 못하면 교조주의 취향을 갖게 됩니다. 이성으로 불멸에 접근하려는 취향이 교조주의라는 말입니다.
원래 회의주의는 단순명쾌합니다. 일상 경험 세계에서 얻는 지식으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의미 이상의 것을 넘보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적 탐구에 관한 인내심이 약한 사람들이 회의주의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쉬우니까요. 철학 탐구가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상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지식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부터입니다. 그 영역을 넘어서면서, 말로 바꾸기 어려운 내용들을 말로 바꾸려다 보니, 말이 어려워지고 꼬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인 말을 풀어내고 재조합하는 지적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꼬이지 않은 말로만은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회의주의 경향의 철학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륙철학 같은 교조주의 경향의 고생스러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강조하지만, 위의 말들은 사실이나 진리가 아니며, 저의 개인적인 의견doxa입니다. 너무 진지하거나 어렵게 받아들이실 필요없이, 이런 말도 있구나 하고 가볍게 넘어가면 됩니다.
덧붙임 -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의 차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과 둔스 스코투스 사상의 대립까지 거슬러올라간다고 봅니다. 참 오래되었죠..
죽어 이 열등언덕아
회의주의는 소승불교와 꽤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고... 상당히 냉정한 면이 있습니다. "그냥 실존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가치를 두죠. 사람이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에 대하여 정의하고 그 잣대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냥 실존하는 것에 대하여 억지로 해석한답시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되고, 사람이 이런저런 관점을 가지고 해석한답시고 덧칠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는 것이죠. 그러한 각자의 관점에 의해 덧칠된 것이 다름아닌 "색"이라는 것이고... 진리는 하나인데, 사람이 오만가지 말로 뻥튀기 한다는 것입니다. 수학은 오직 하나 뿐인 "해"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사람의 나름의 관점으로 덧칠한 것은 수학에서 "해"가 될 수 없으므로, 회의주의와 수학은 어울리는 면이 있죠. 수학 역시 아주 냉정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