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와 보트는 갈라졌다. 차갑고 습기 찬 밤바람이 배와 보트 사이로 불었다. 갈매가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 위를 날아갔다. 배와 보트의 선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만세 삼창을 한 뒤, 망망한 대서양으로 운명처럼 맹목적으로 뛰어들었다. P.169
항구는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항구는 자비롭다. 항구에는 안전과 안락, 난로와 저녁식사, 따뜻한 담요, 친구들, 우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 강풍 속에서 항구나 육지는 그 배에 가장 절박한 위험이 된다. 배는 모든 환대를 피해서 도망쳐야 한다. 배가 육지에 닿으면, 용골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배 전체가 몸서리칠 것이다. 배는 돛을 모두 펴고 전력을 다해 해안에서 멀어지려 한다. 그러면서 배를 고향으로 데려가려는 바로 그 바람과 맞서 싸우고, 또다시 거친 파도가 배를 때리는 망망대해로 나가려고 애쓴다. 피난처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위험 속에 뛰어든다. 배의 유일한 친구가 바로 배의 가장 고약한 원수인 것이다! P.170
벌킹턴이여, 이제 알겠는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진실을 그대는 어렴풋이나마 보는 것 같다. 무릇 기고 진지한 생각은 망망한 바다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영혼의 대담한 노력일 뿐이며, 또한 하늘과 땅에서 가장 사나운 바람은 서로 공모하여 인간의 영혼을 배반과 굴종의 해안으로 내던지려 한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하지만 가장 숭고한 진리, 신처럼 가없고 무한한 진리는 육지가 없는 망망대해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바람이 불어 가는 쪽이 안전하다 할지라도, 수치스럽게 그쪽으로 내던져지기보다는 사납게 으르렁대는 그 무한한 바다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벌레처럼 육지를 향해 기어가고 싶어 하겠는가! 무시무시한 것들의 공포! 이 모든 고통이 그렇게 헛된 것인가?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 벌킹턴이여! 완강하게 버텨라. 반신반인의 영웅이여! 그대가 죽어갈 바다의 물보라. 거기에서 그대는 신이 되어 솟아오르리라! P.170~171
세상 사람들이 우리 고래잡이를 존경하기를 거부하는 주요 이유는 우리 직업이 기껏해야 일종의 도살업이고 그 일터는 온갖 더러움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도살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기꺼이 존경하는 군대 사령관들도 도살자들이고, 게다가 잔인하기로 이름 높은 도살자들이다. 우리의 일이 불결하다는 문제에 관해서 말하자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을 이제 곧 알게 될 텐데, 향유고래를 잡는 포경선이야말로 이 깔끔한 지구에서도 가장 깨끗한 것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도 그렇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어수선하고 미끄러운 포경선의 갑판을 시체가 썩어가는 전쟁터의 그 말 할 수 없는 참상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여성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축배를 든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군인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그렇게 높이 올라가는 것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즉, 포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한 역전의 용사들도 향유고래의 거대한 꼬리가 불쑥 나타나 머리 위의 공기를 휘저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 그 즉시 놀라서 움츠러들고 말 것이라고.
서로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신의 경이와 공포에 비하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공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P.172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 고래잡이들을 업신여기면서도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깊은 경의를 바치고 있다. 실로 어마어마한 흠모를! 지구 전역에서 타오르는 심지와 등불과 촛불은 수많은 신전 앞에서 타오르는 불빛처럼 우리에게 감사하며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P.172
'고래잡이에는 위엄이 없다'고? 우리 직업의 위엄은 하늘 자체가 증명하고 있다. 고래자리는 남쪽 하늘의 별자리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러시아 황제 앞에서는 모자를 깊이 눌러써도 퀴퀘크 앞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평생 동안 고래 350마리를 잡은 남자를 알고 있는데, 그 남자야말로 350개의 성채를 함락시켰다고 자랑한 고대의 장군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점이 내 안에 있다면, 작지만 조용한 그 세계에서 내가 진정한 명성을 얻고 싶어 하는 것도 그렇게 터무니없지는 않겠지만 내가 정말로 그런 명성을 얻을 자격이 있다면, 앞으로 내가 대체로 보아 사람으로서 하지 않고 방치하기보다 하는 편이 나은 일을 한다면, 내가 죽을 때, 내 유언 집행인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빚쟁이들이 내 책상 속에서 귀중한 원고를 발견한다면, 나는 모든 명예와 영광을 포경업에 돌린다고 여기서 미리 밝혀두겠다. 포경선은 나의 예일 대학이며 하버드 대학이기 때문이다. P.176~177
충성스러운 영국인들이여. 여러분의 왕과 여왕들의 대관식에 쓰는 기름을 공급하는 것은 우리들 고래잡이라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 P.179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포경업 같은 위험한 작업에 종사하는 다른 사람들이 자주 보여주는 그런 저돌적인 행동을 자제한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보트에 절대로 태우지 않겠다"고 스타벅은 말했다. 이 말은 가장 믿을 수 있고 쓸모 있는 용기는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위험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위험한 동료라는 뜻이기도 했다. P.181
스타벅은 일부러 위험을 찾아다니는 십자군 전사는 아니었다. 그에게 용기는 감정이 아니라 다만 자기한테 유용한 것이었고, 실제로 꼭 필요한 경우에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늘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 포경업에서 용기란 쇠고기나 빵처럼 반드시 배에 갖추어야 하고 어리석게 낭비하면 안 되는 주요 품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가 진 뒤에 고래를 잡기 위해 보트를 내리거나, 너무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고래를 고집스럽게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위험한 바다에 나온 것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지, 고래의 생계를 위해 고래한테 죽으러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된다는 것도 스타벅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의 아버지는 어떻게 죽었는가? 바닥 모를 심해 어디에서 갈기갈기 찢긴 형의 팔다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P.18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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