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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죽지 않는 사람도 없다. 인생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굴레이다. 세상에 내던져져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온갖 제약을 감당하며 버티는 것, 이것이 인생의 본질이다. 우리는 가끔 우리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커다란 선물처럼 즐기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불행을 곱씹으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한탄하고는 한다. 인생을 살며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나에게 엄청난 굴곡이다. 하지만 세계의 관점으로 보면 나에게 있던 일은 아예 없었던 일과 똑같이 가볍기만 하다. 대다수의 인간은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이 필멸의 굴레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인간의 굴레에서」는 필립 케어리가 성장하고 경험하고 생각하며 인간의 굴레를 탐구하는 이야기이다.


립은 절름발이로 태어났다. 어려서 양친을 여의었다. 필립은 사제인 큰아버지 밑으로 들어가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자랐다. 큰어머니가 필립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베풀었지만 종교는 그에게 영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절름발이가 약점이 되어 또래들에게 차별을 당했다. 아무리 기도해도 신은 필립의 다리를 낫게 해주지 않았다. 결국 필립은 신앙이라는 작은 굴레를 벗어던진다. 먹고살기 위해 회계사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이내 필립은 자신이 밥보다 자유를 갈망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파리에서 미술을 배우기도 했지만, 알면 알수록 미술에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없으며 모든 것이 제멋대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는 와중에 밀드레드라는 희대의 악녀와 엮여 마음을 빼앗기고 돈도 허비한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의사 일마저 증권 투자에 실패하여 단념하게 된다. 필립은 아무리 자유를 좇아도 굴레들을 벗어날 수 없었다. 종교, 교육 같은 작은 굴레를 벗어도 끝내 정욕과 돈의 굴레는 벗어날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굴곡진 체험들이 결코 헛된 일은 아니었다. 필립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큰 약점을 타고났고 그 덕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감수성을 키우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지닐 수 있었다. 필립은 자유를 좇다가 자유를 남용하기도 했다. 이는 필립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깨닫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유만 추구하는 계기가 됐다. 필립은 자유를 위해 찾아온 파리에서 자신에게 예술적 재능이 부족하고 자유가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름을 알게 됐다. 이는 필립이 자유에 대해 피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돈의 문제는 긍정으로도 돌파할 수 없었다. 밀드레드가 남긴 상처도 전혀 긍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남은 일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필립은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다. 인생은 페르시아 융단과도 같다. 페르시아 융단은 씨실과 날실이 어울려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그러나 그 무늬에 특별한 의미가 있지는 않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에 영원히 남지 못할 대다수의 인생은 전체를 놓고 봐도 커다란 의미가 없다. 다만 직조공이 그저 아름다운 무늬를 내기 위해 융단을 짜듯, 우리에게는 인생의 융단을 완성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탄생, 성장, 만남, 죽음이라는 날실이 주어져 있다. 운명은 차차 우리에게 갖가지 사건과 우연이라는 씨실을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는 묵묵히 날실에 씨실을 엮어야만 한다. 물론 모든 수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드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그때그때를 마음이 이끄는 곳에 따라 무늬를 새기면 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큰 그림을 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 최선의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여, 삶의 거대한 날실에, 사람은 다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 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깨달음을 기점으로 필립의 인생에도 드디어 볕이 들기 시작한다. 필립은 행복한 삶을 위해 정해둔 사상을 포기한다. 필립은 다양한 사색들을 접하며 자기 나름의 원칙을 정했지만, 도저히 그것으로는 살 수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필립을 이끄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으로 유추한 자유는 규칙이 되어 사람을 구속한다. 사상을 위해 사는 일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굴레에 철저히 묶여서 치르는 고행이다. 심지어 그 사상이 자유에 대한 사상일지라도 그렇다. 인간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굴레에 묶여있어도 굴레가 없는 듯 행동하는 것이다. 굴레를 빠져나오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굴레의 존재는 더욱 분명해질 뿐이다. 굴레를 의식하지 않고 운명이 주는 대로 우리만의 무늬를 짜야 한다.


혹자는 아무런 의미도 의도하지 않는 인생이 과연 좋은 인생인지 반문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의문을 품고 필립의 삶을 지켜보았다. 필립은 실제로 인생이 무의미함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죽음들에 대해 연민 섞인 조소를 보인다. 하지만 아직 필립의 성장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필립은 사상의 자유를 완성하기 위한 동방 여행을 계획한다. 그러나 그 직전에 운명의 장난이 발동해서 필립에게 가장의 책임을 안기려 든다. 필립이 어차피 인생은 무의미하니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고 회피하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필립은 그러지 못한다. 필립은 자유만큼이나 샐리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필립이 가정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들어가는 상황은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면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행복 또한 즉흥적인 것이 아니고 철저히 설계된 것이라면 결국 굴레에 불과하다. 하지만 필립은 무의미의 날실에 사랑이라는 씨실을 엮는다. 세상 전체에게는 의미가 없는 날실이다. 그러나 필립의 무늬에서는 의미가 충만한 날실이다. "생각해 보면 그는 그동안 남의 말과 글이 주입해 온 이상을 좇아왔을 뿐 제 마음의 욕망을 따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행로는 언제나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좌우되었을 뿐 제 마음이 진정 원하는 바를 따른 적이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그는 이 모든 거짓을 내던져버렸다. 그는 지금까지 미래만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 그래서 현재는 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이상? 그는 의미없는 삶의 무수한 사실들로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짜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가장 단순한 무늬,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는 그 무늬가 동시에 가장 완전한 무늬임을 깨닫지 않았던가? 행복에 굴복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그것은 수많은 승리보다 더 나은 패배였다." 결혼을 약속한 필립과 샐리에게 햇볕이 드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인간의 굴레에서」가 끝난다.


필립의 성장기로부터 깨달은 점이 몇 있다. 우선 사람은 생명을 지속하는 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사람은 눈앞에 있는 일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위기가 코앞에 있으면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 벌벌 떠는 것이다. 나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해결도 목숨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순간들도 어찌어찌 지나갔다. 비록 아픈 기억을 남겼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럭저럭 살고 있다. 돌아보면 행복에 겨운 인생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것도 사실이다. 필립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어차피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후회하지 말라고. 물론 이렇게 다짐한다고 해서 후회를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후회보다는 체념이 훨씬 낫다. 그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전체를 기대하며 순간에 의미를 두지 않고 관조하는 것. 이것이 내게 필요한 태도이다. "따지고 보면 그가 겪은 불행이란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권태이든 격정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의 무늬를 더 풍부하게 하니까."


둘째로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해서 배웠다.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나도 필립처럼 보통의 존재이다. 하지만 이런 인생이라고 해서 허무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비하지는 않겠다. 필립은 결국 세계를 바꿀 위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바꿀 영향력은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자신의 무늬 전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만들고 싶은 무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무늬를 꿈이라고 한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는 꿈을 꿀 수 있다. 꿈 그대로 무늬를 짜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숙련된 직조공들과는 달리 우리는 모두 인생을 처음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그때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때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간절히 달리다 보면, 우리가 의도한 무늬에 조금씩이나마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꿈을 가지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지배자가 되기만 한다면, 생활 환경이 무슨 대수겠는가."


마지막으로 사상을 위해 사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사람이 많다. 노동자로 살아온 과거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자유의 상징처럼 소개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일생동안 공부한 내용을 보여주며 자신이 세계의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이들은 원하는 무늬를 짰지만, 세계가 통째로 그들의 무늬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물론 사상을 계속 들이마실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이성이 기능할 수 있다면 나는 칸트의 정언 명령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나는 내게 사상으로부터의 자유도 허락할 것이다. 생각이 내 인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생각으로 나타나도록 살 것이다. 생각이 나의 주인이 아니다. 내가 생각의 주인이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일천 쪽이 넘는 책이었지만 풍부한 서사와 심도 있는 사색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필립의 생각이 나를 감화시켰다고 해도, 금방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다만 필립은 내 인생에 빠지지 않을 씨실을 심었다. 나는 필립과 다른 인생을 살며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다만 필립을 기억하려 노력할 것이다. 필립처럼 인간의 굴레에서 스스로를 해방할 그날을 염원하며. 내 인생에도 「인간의 굴레에서」에서처럼 영원히 지지 않을 햇빛이 박히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