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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단어> 저자 "르네 피스터"는 독일 권위지 슈피겔 기자다. 그는 워싱턴 지국으로 이동해 미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지켜본다. 저자의 정치적 스탠스는 좌파다. 책의 기본적인 논지는 "좌파의 정체성 정치가 종종 헌법과 같은 기본권을 무시"하면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파의 독주도 문제지만 좌파의 독주도 위험하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PC문화는 소외자를 수면 위로 올렸다는 평을 받지만, 너무 과해 타인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최근 디즈니의 인어공주 배우 문제를 보면, 갈채를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작품을 훼손 했다는 사람도 있다. 표지 문구 "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는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책은 좌파의 독단의 사례가 나열되어 있다. 좌파의 "정체성 정치"는 "표현의 자유"와 격돌하면서 상대방을 매장시켜버린다. 웃긴 사례중에 미국 대학교는 연사를 촟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특정 연사를 거부하는 시위가 늘고 있다. 혹자는 이런 시기를 "연사 거부 시기"라 논평하기도 한다. 그만큼 자기와 뜻이 맞지 않으면 이야기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아예 추방시키려 하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이런 행태가 우파(극우라 번역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싶다.)포퓰리즘처럼 위험한 좌파(극좌라 해야하지 않을까?)의 독주다.

MIT교수 도리엇 애벗은 고작 의견 표출로 몰매를 맞았다. 교수는 모든 학생이 똑같이 대우받고 선발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특히 아시아학생이 체계적으로 불이익 당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원자들이 남학생이라는 이유로 탈락하는 과정을 보며, "학자로서 얼마나 유망한가"로만 따져서 선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파급효과가 대단했다. 많은 학생들은 "소수자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처벌을 요구했다. 과학자로서 의견을 제시했던 애벗 교수는 학생들의 몰매를 맞았다. 물론, 결국에는 큰 불이익은 없었다. 하지만, 과학자의 하나의 의견이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질 뻔 했던 사건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책은 이러한 사건을 나열한다. 회사와 단체는 개인의 의견일 뿐 우리와 다르다라고 주장하며 꼬리 짜르기를 시도한다. 만약 정말로 주장이 옳지 않더라도 무죄 추정의 원직을 짓밞고 사회적 매장을 시키는 것이 과연 옳을까?

예전 한국의 "미투 사건"이 떠올랐다. 고여있는 한국 남성의 폭력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요소도 분명있다. 그런데 무죄 추정의 원직을 무시하고, 인터넷 마녀사냥같은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처럼 저자는 때때로 정치적 올바름이 헌법과 같은 기본권과 부딪쳤을 때 과도한 폭력을 발생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미국 대학의 히스테리적 예민함을 오로지 새로운 세대의 심리적 성향 탓으로 돌리는 것은 순진한 태도다. 만약 감정이 주장을 대체하면 감정은 거대한 효과를 내는 정치적 무기가 된다. 주장은 반박할 수 있지만 감정을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또는 소셜미디어에서 비난받는다면 그 사람은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 위장한 인종차별주의자로 의심받는다. 동시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의 높이가 최근에 특히 '미세공격'이라는 개념과 함께 체계적으로 하향되었다.“

"더 불분명하고 더 모호한" 미세공격은 특히 백인에게 나타난다고 한다. 왜냐하면 백인은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무시와 우월감이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는 말이다. 예전에 SNS에서 "흰 피부"에 대한 글을 봤다. 과거 자신이 미국에서 유학 중, 미국인이 아시아 사람은 흰 피부에 과도한 집착이 있고, 미의식이 그쪽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것이 "미세공격"이 아닐까? 사실 한반도는 삼국시대부터 "흰 피부"가 아름다움에 하나였다. 이렇게 주장해도 수용하지 않고 잘못됐다고 말하는 미국인은 확실히 이상한 "우월감"이 있을 것이다. 맞다. 과거부터 "흰 피부"는 아름다움에 한 가지였다.

“인터넷 시대에 진지한 언론이 해야 할 공헌은 사실과 음모론을 분리할 뿐 아니라 열린 논쟁을 조직하여 사회분열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의견도 견뎌야 한다. 그것이 필수다. 현재 미국에는 특히 보수적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이 거대 언론사를 떠나 서브스택 같은 인터넷 포털에서 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위험한 트렌드가 퍼져 있다.”

“어찌보면 <뉴욕타임스>는 미국을 분열시키는 갈등에 휘둘렸다. 트럼프는 거짓말과 언사로 나라를 양극화했지만 좌파의 독단주의도 나라를 다시 합치기 힘들게 하는 데 일조했다.”

미국의 언론도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등장 이후, 많은 좌파 엘리트들이 신문을 구독했다. 한때 <뉴욕타임스> 미디어팀 편집장 벤 스미스는 "이제 우리에게는 이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 바로 좌파적 대토를 보여주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라고 저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언론 자유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탈레반 지도층 칼럼을 실은 적이 있을 만큼 다양한 의견을 수용했다. 저자는 그런 <뉴욕타임스>가 편파적으로 될 위험성을 논하고 있다.

“혐오와 독단은 자유로운 토론의 적이다. 또한 선의의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자유로운 토론이 죽을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뭔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을 분노의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쿨하고 자유로운 자유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트럼프나 회케 같은 인물은 우리 사회에 불운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싶지 않다면 그들의 지지자를 멸시하며 콧방귀를 뀌고 "개탄스러운 자들"이라고 욕해서는 안 된다. 더 적극적으로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시야만 존중하는 관용은 쓸모없고 황량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만 보아도 좌우 갈등이 엄청났다. 한반도가 위 아래로 쪼개지는 것을 넘어, 좌우로 쪼개졌다. 우린, 더 이상 타인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 맥락을 생각하지 않는다. 행간을 읽지 않는다. 존중을 하지 않는다.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린 오로지 타인을 죽일 뿐. 죽여서 나의 주장이 관철되기만을 원한다. 해답은 정말 간단하다.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과거 상인들이 향신료를 찾았듯, 우린 아주 작은 향신료 "사랑"만 찾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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