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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가구가 딸린 셋방'이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비극, 리얼리티하고 착취당하고 슬픈, 톱니바퀴 평범성 인물들에게 '소설적 사건'이 가미되어 있다. 반전은 책의 재미를 담당하는 상업성이지만 기저에 깔린 사람들의 생활상은 비참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진흙탕에 핀 꽃이라고 해야 될 거 같다. 하지만 유쾌한 자극이 진동을 해서 코가 마비되는 그런 즐거움도 있다. 유쾌함은 허구성이다. 작 중 인물에 현실성을 느끼지 못하게 허구성이 티를 내거나, 뮤뎌질 만큼 익숙한 현실성이라면 우리는 더 이야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천달러'뿐만 아니라 이러한 오헨리 소설의 감성은 지금으로 치면 뼈대만 남은 클리셰 덩어리, 기술적 요소들같다. 여기에 살을 잘 붙이면 재미있는 오락소설이 될 거 같다. 이런게 바론 고전소설같다. 문학의 지층으로 쌓이거나 흩날려 잊혀지거나 둘 중 하나다. '사랑의 헌신', '동방박사의 선물', '천 달러'의 감성이 예쁘다. '마지막 잎새'는 베이먼씨가 진주인공 너무 멋있다. '어느 도시의 보고서'는 정말 오헨리스러웠다. 부담감없는 맛이면서도 무색무취하지 않고 정형화된 느낌이다. '되찾은 새 삶'같은 진부하고 낭만적인 게 좋다. '아르카디아의 나그네들'도 그렇고 책에서 노동자들이 상류층, 귀족 흉내내는게 심심찮게 나온다. 신분제가 아니고 유럽이 아닌 신대륙이라서 그런 거 같다. 책 내내 우연들이 맞물리는데, 우연이 한 번이라도 엇나갔다면('녹색의 문') 일어날 비참한 삶의 무게에 계속 깔려 압사당하는 모습이 계속 상기되니까 비극적이다. 2024년 현재 한국의 (노동)환경을 기준으로 생각해서 1900년대 초반 노동자들이 비극적이라 느끼는 거지만, 그걸 느낄 수 있을만큼 생활내가 나게 글을 잘 썼다. 일상화된 비극들 속에서 작가가 소설적 이야기를 상상하여 반전과 희극으로 만들어내는 거 같다. 단편 묶음이라 가끔씩 튀는 이야기('가구가 딸린 셋방')는 그 자체로 두 번 꼰 반전같다. 구매하여 가끔씩 한 편씩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소장할 만한 책이다.
8. 세계문학 단편선 : 오 헨리 (현대문학)
그 단편 빨려들어가는 맛이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