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오마이스타, 「'꿈★은 이루어진다'를 가르쳐 준 <복수혈전>」.



 복수극은 포르노와 같다고 했다. 매번 똑같은 내용인데 항상 잘 팔린다고.


 정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러 작법서에서도 동기와 목표부터 확실하기 때문에 독자들 붙들고 가기 좋다고 해서 추천하는 소재이긴 하다. 


 왜 다들 복수극에 몰입을 할까. 원수 없는 사람이란 없는 것인가? 다들 경멸과 굴욕 속에서 사는 것이었던가? 그렇기에 오늘도 마음 속에서부터 칼을 갈고 사는 건가?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게 살벌한 세상이었던가? 어쨌든.


 오늘 이야기할 소설은, 복수극 하면 순위권에 드는 걸작. 미국의 작가 루 월러스의 『벤허(1880)』이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Vancouver is awesome, 「This bear in a bathtub is basically doing what every Vancouverite wants to this week (VIDEO)」.




복수는 전부가 될 수 없다

 

 소설 하나로 영화와 연극이 몇 번은 나온 사골국 같은 작품. 그래서 안 본 사람들도 줄거리를 아는 소설, 『벤허』.


 유대인 벤허와 로마인 메살라는 어릴 때부터 아주 친했으나, 갑자기 벤허네 집에서 떨어진 기왓장 때문에 총독이 놀라 자빠져서 벤허는 테러 분자라고 누명을 쓰게 된다. 메살라는 전의 일로 삐져서 벤허를 안 도와주고, 그것 때문에 벤허 식구들은 오해를 풀 시간도 없이 감옥으로 가고, 벤허는 갤리선 노예가 된다. 그러다가 벤허가 로마 해군장관 아리우스를 구해준 게 계기가 되어 아리우스의 양자가 되고, 벤허는 전차 경주 선수로 부와 명성을 누리고, 그러다가 메살라와 마주 하게 되면서 목숨을 건 전차 경주를 하게 되고, 어쩌구 저쩌구…….


 대충 그런 얘기.


 복수극이긴 한데, 막상 책을 펼치면, 뭔가. 뭔가 예상과는 다르다.


 물론, 주인공 벤허도 다시 만나게 된 메살라를 보고 복수심을 불태우기도 하고, 복수가 성공한 뒤 승리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근데 그게 끝이다. 복수를 끝내도 벤허가 심적 동요를 겪거나, 허무함에 고뇌하는 모습도 없다. 부모님과 여동생을 찾는 게 더 급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걸 생각해도 뒷내용을 보면 아주 쿨하다.


 전차 경주 이후 살아남은 메살라가 암살자를 보냈을 때에도, 벤허는 그냥 메살라의 암살자를 털어내려고 꾀를 냈을 뿐이다. 직접 끝장을 보려고도 않는다.


 정작 메살라를 끝장낸 건 벤허가 아닌 메살라의 연인 이라스. 


 이라스는 로마 제국이 예수를 죽인 것을 보고 로마인의 더러움을 알았으며, 메살라가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다 하여 죽이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게 끝이다.


 그래서 복수극하면 떠오르는, 원수와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나누는 비장한 대화 같은 건 없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 中.


 사실, 벤허의 그 복수극 일대기를 제외하더라도 이야기가 아주 풍성하다. 소설의 시작인 1부부터가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알현하는 바로 그 장면이기도 하고, 복수 이후 벤허는 성경에 나오는 장면들에 등장하는 게 대부분.


 주인공 유다 벤허의 행적을 보자면, 동방박사 발타사르를 따라가 그 유명한 산상수훈도 직접 보고,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는 그 장면을 직접 보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게 물을 묻힌 스펀지를 건네주기도 하고. 주인공이 그러한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서 우연한 증인의 역할로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벤허의 일대기 중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역사를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이래서 벤허의 복수극은 벤허를 중요한 역사적 순간으로 인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벤허가 우연한 기회에 역사의 산 증인이 되는 장면이나, 다양한 인종과 연을 맺고, 탄압받는 유대국 사람들을 위해 싸우기도 하는 등. 내용이 복수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기도 하고.


 이렇게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한데, 이 소설은 부제부터가 '그리스도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무게추가 메살라에게 좀 모자란 것도 당연하지 싶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위키리크스코리아, 「[미 대선] 링컨과 트럼프… ‘불복정치’ 대혼돈으로 빠져드는 미국」.



미국인을 위한 새 복음서


 겉은 복수극이지만, 막상 파고들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아리송한 소설의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작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작가 루 월러스는 성공한 군인이자 정치가로, 남북전쟁 당시 군공을 세워 최연소 소장이 되기도 하고, 뉴멕시코의 지사로 부임한 경력이 있다.


 이런 사람이 왜 소설을 썼느냐 싶지만, 원래 대하소설을 무진장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벤허 이전엔 아즈텍 원주민들과 스페인 제국의 전쟁을 다룬 소설을 쓰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 미국은 멕시코 전쟁으로 뉴멕시코 지역을 얻었고, 작가 루 월러스는 여기에 지사로 부임하게 됐다. 이때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있던 구세력과 미국 남부에 기반을 둔 신세력이 싸움을 벌이게 된다.




+ 사진은 내용과 관련이 없음. 출처: 중앙일보, 「아재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빌리 아일리시 스타일」.



 당시 활동 했던, 지금도 유명한 총잡이 빌리 더 키드의 활동 동기도, 신세력의 우두머리였던 존 턴스톨이 체포 과정에서 보안관의 총에 맞아 숨진 것에 대한 복수때문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주지사였던 루이스도 분쟁의 진압을 위해 무던 애를 썼고, 이 과정에서 직접 빌리를 심문해 이야기도 듣는 등.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접했다.


 새 정복자와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자, 세력 다툼에 휘말리다 가족과 친구를 잃고 복수심을 자연히 갖게 되는 모습 등. 분쟁의 이면을 숱하게 봐왔을 것이다.


 작가가 삶에서 보아왔을 그 이야기들이 소설 벤허와 무척 닮았기 때문에, 소설 벤허는 그들을 위한 답이라고도 본다.


 마침 작가가 벤허를 쓰던 시대는 도금 시대(Gilded Age). 남북전쟁이 끝나고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달하던 시대. 도덕적 혼란을 극복해 나아가던 시대. 그런 시대였다. 


 결국 요약하자면, 소설 『벤허』는 미국의 역사와 사건들을 로마에게 지배당하던 유대국이라는 배경을 통해 은유한 것이고,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 시대에 걸맞는 새 도덕성을 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자기 취미인 대하소설 덕질도 끼얹어서.


 그러니까 실은, 루 월러스의 소설 『벤허』는 새로운 미국을 위한, 새 시대를 맞이한 미국인들의 복음서였던 것.


 그것을 바탕으로 이 소설의 메시지를 읽어내면 다음과 같다.


 사상은 밥 먹여주지 않는다.

 복수 같은 건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에게 닥칠 또 다른 복수를 걱정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복수자 자신을 죽일 뿐이다.

 서로 증오하는 대신 사랑하시라. 자신의 민족, 문화, 종교에 자긍심을 갖되, 남을 긍지를 더럽히는 데에는 쓰지 마시라.

 남에게 선의를 베출 준비를 하며 살되, 이익만 챙기는 악인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지는 마시라.

 악인과 선인을 구분할 정도로 지혜로워지고, 자신과 선인을 지킬 정도로 기민하고 영리한 사람이 되시라.

 무엇보다도 그냥 가족끼리 오손도손 사는 게 제일 행복하다. 모든 부와 명예를 던져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의미있고 가치있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 없는 교훈들이다. 그러나 언제나 들어맞는 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견 진부한 메시지만 던지는 소설이라고 폄하하기 쉽지만, 누구도 맞이하지 못했던, 혼란한 새 시대엔 이런 교훈이 사막의 물만큼이나 귀한 법이니까.


 그리고, 소설이 재밌으면 된 거 아닌가? 아님 말고.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