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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는 꽤 오래된 책이고 저번에 썼다 지운 독후감이긴 한데, 다시 읽어보니까 꽤 인상 깊어서 우리 독갤러 아조씨들이랑 공유하고 싶어졌음. 그래서 다시 쓴다!



굉장한 스포있음.



키아르키아로라는 아저씨가 있었음. 매우 평범하고 정직하게 일하며 살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액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한순간에 길거리로 패대기쳐져버린 인물임. 게다 아내는 아파 누어있고, 부양할 자식들은 넘쳐났기때문에 거리를 배회하면 구걸이라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키아르키아로가 구걸 다가오면 괜히 부정 탈까봐 돈을 쥐어주고서라도 쫒아버리고, 주인공은 그 돈으로 간간히 먹고사는 생황을 이어가게 됐음.



그러다 주인공이 시장의 아들과 파찌오란 시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게 되면서 극이 시작된다. 자신을 공개적으로 경멸했다며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는 건데... 피고가 주인공에 비해 말도 안 될만큼 권위있는 사람들일 뿐더러, 주인공에대한 경멸은 이미 공공연한 행동이 되었던지라 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심지어 판사들도 모여 이 소송을 두고 뒷담이나 까고 있는 판이었으니 말 다했음.


모두가 주인공의 적인 상황이었지만, 우리의 살아있는 양심, 정의로운 판사인 단드레아는 키아르키아로를 부당한 평판에서 구해주고자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내 도움을 주려고 말을 건내게 된다. 근데 주인공는 한사코 거절하는 거임. 오히려 상대편 변호사에게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갖다 바치는 공작까지 하고 있었고, 자신은 패소하기 위해 소송을 걸었으며, 반드시 그렇게 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 키아르키아로 : 이건 아십니까? 내가, 바로 내가, 이 로사리오 키아르키아로가, 로레키오 변호사한테 그 사실에 대한 증거들을 직접 갖다 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 무시무시하고 확-고-부-동-한 사실들이지요. 그 위엔 ‘액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나의 명성이 꼿꼿이, 꼿-꼿-이, 세워져 있습니다.



단드레아 : 미안하오만... 상대편 변호사에게 증거 자료를 주었었다니, 왜 그랬소? 그 두 사람의 무죄를 더욱 확실히 해주기라도 하려고 그랬소? 그렇다면 소송은 왜 걸었단 말이오?



키아르키아로 : 판사님, 바로 그 질문이 판사님께서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증겁니다. 내가 소송을 건 이유는 내 위력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겁니다. 지금으로선 그 능력이 그나마 남은 유일한 재산이란 말입니다, 판사님. (...) 증명서를 원하는 것이지요. ‘액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란 증명서. 검사필증이 붙은, 법적으로 검사필증이 붙은, 법정에서 인정한 ‘액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란 증명서를 말입니다. (...) 그걸 명함에다 박아서 방문하는 곳마다 내 전문 타이틀로 쓰는 겁니다! 아니, 당신께는 이것이 하찮게 보이십니까? 증명서라니까! 그게 내 직업이 된단 말입니다! 판사님, 나는 사람들한테 파멸 당했습니다! (...) 나로선 이제 액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란 직업 외에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





난 세상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 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인학교'의 야콥이 멋졌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고, '베르나르다' 가정의 불행이, 그레고르 잠자, K의 비극이 그렇지 못한 점에 있다고 본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상 사회의 시선에 완전히 자유로운 건 불가능 하겠지만, 최대한 자기만의 관점으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삶이야말로 건강한 삶이고,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있다.


그래서인지 키아르키아로의 대사를 읽으면서 굉장히 소름 돋는 거임. 부당한 편견에 희생당한 사람이 오히려 지가 나서가면서 편견을 더 부추긴다는 상황이 너무 충격이었다. 내 믿음에 따르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냥 다 좆까고 황무지에 씨뿌려 풀이라도 뜯어먹는 게 맞겠지만, 현실을 그럴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억울하게 쫓겨났지만 아픈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일부러 더 괴물 같은 꼴을 하고 혐오스러운 거지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이 매우 처절하고 눈물겨웠음. 처음엔 실성한 놈 지랄하는 꼴 같아 보였지만, 사실 현상황을 굉장히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정상화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극단적인 상황을 유도하는 거다. 손톱만큼도 원치 않지만, 이젠 살아가기 위해선 자신의 불행을 더 악화시키고, 더 강력하게 고착시켜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말이 너무 소름끼쳤다.


둘의 짧은 대화 끝에 단드레아 판사는 자신이 어찌해줄 수 없는 상황과 인정 안할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깊은 절망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 나도 그 절망에 깊이 공감한다. 현실과의 타협이 없이 주관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이상적이고 철없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아직도 너무 어리구나라고 생각도 듦. 최대한 내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이야 하겠다만 어느날 무서운 현실 앞에 고꾸라지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씁쓸한 뭔가가 있다.




사실 선신제라는 단막극이랑 같이 붙어있는데, 이건 재미도 없는 데다가 너무 노골적이라 불쾌하기까지 하니 패스하겠음.

내가 겉멋이 들었나 싶기도 한데, 이런 건 문학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책에 대해서도 잠깐 얘기해보자면 제본, 편집, 번역 뭐 하나 제대로 된 구석이 없으니 절대 사서 볼만한 책은 아님.

번역이 어투가 오락가락에 부자연스럽고, 제본도 허접하고, 편집도 보기 싫고, 오타도 많고 굉장히 불만스러웠다.

몇줄 인용하면서도 꽤 여러군데 손봐야 했다.

작은 출판사의 한계인가 싶기도 한데, 기왕 하는 거 좀 신경 좀 써서 내지 왜 이따구로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감.



내용은 꽤 괜찮았으니 빌려 읽으면 좋을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