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공이 회당의 높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윤편은 회당 낮은 곳에서 수레를 깎고 있었다.
윤편이 나무망치와 끌을 밀쳐두고 올라와 환공에게 물었다. “공께서는 지금 무슨 말들을 읽고 계십니까?”
환공이 “성인의 말이다”라고 말했다.
윤편이 “그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라고 묻자 환공은 “그는 죽었다”라고 대답했다.
윤편은 반문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가 아닙니까?”
환공이 말했다. “수레바퀴 깎는 장인인 네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을 논의하려 하는가! 만일 네가 자신의 행위를 해명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그러지 못하면 너는 죽을 것이다.”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저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겁니다. 바퀴를 깎을 때 끌질이 느리면 끌은 나무에서 미끄러져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빠르면 끌은 나무에 박혀 빠지지 않습니다. 끌질이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저는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입이 있어도 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 끌질하는 동안 몇몇 방법[數]이 있겠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제 아들도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이 일흔이 되도록 제가 바퀴를 깎고 있는 이유입니다. 옛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게 아닙니까!”
내편 말미의 혼돈 우화랑 곁들여 생각하면 참 오묘한 부분
소크라테스랑 비슷하넹
근육기억을 일화기억 또는 의미기억과 혼동하고 있네. 전자는 당연히 전승되기 어렵지만 후자는 언어로써 전달이 수월하지. 물론 윤편의 말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으나 그 시대에 규명되지 않은 것들로 인한 오류가 있는 듯.
이런 유동 보면 장자 말대로 ㄹㅇ 글로는 뜻을 다 전할 수 없다는 게 참인 거 같노...
환공은 성인의 말을 읽고 있으니 어떤 일화 또는 지식에 대한 책이겠고 따라서 이러하게 제언함. “어떻게 하면 끌질을 잘할까?”에 대한 책이었다면 윤편말이 맞겠거니와 장자의 이 구절도 옳다마다 ㅎㅎ
장자는 대부분이 우화고 저 말도 당연히 바퀴깎는 기술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의 한계에 대한 우화로 봐야 함...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모양과 색깔뿐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소리일 뿐인데 소위 도의 실정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말로 전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말을 하는 거임...
노자에서 "그래서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라고 라는데 이를 말하는 것임
본인은 말의 한계를 당연히 인정하고 있었음 그저 예시의 오류를 짚은 것뿐. 도가철학을 좋아하나 본데 잘못된 비유 하나 꼬집은 것 뿐이니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실 필요 없음.
물론 암묵적 기억하고 의미 기억 사이엔 언어화의 난이도에 대한 차이가 있겠지만 그뿐이지 둘 다 언어로 온전히 담기지 못하는 건 동일하지 않나. 물론 더 엄밀하게 설명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님. 결국 정신의 온전한 언어화는 불가능하며, 언어화되지 않은 부분은 그 개인과 죽은 것이 맞으니. 이걸 찌꺼기라 부르는 게 맞냐 아니냐는 둘째치고.
찌꺼기라고 한게 가장핵심적 문제고 그걸 트집잡은건데
비유에서 원관념 보조관념에 차이 있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닌데 꽃처럼 아름답다는 말에 인간은 암술과 수술이 없는데 잘못된 비유 아니노 이런 소리하면 비유를 이해 못한 것인데스... 결국 장인이 기술을 전하지 못하듯이 성인이 깨달음을 다 전하지 못한다는 거니까
그리고 "보아도 보기에 부족하고 들어도 듣기에 부족하다"는 게 도라고 했으니 찌꺼기라 해도 틀린 말도 아님
어 넌 성인 책 많이 읽어라 읽기만 하면 성인되니 개꿀이네
비유가 잘못됐단건 수레깎는 기술은 글만 읽고 숙달하기 어려우니 평생을 깎으며 노력해야하지만, 성인 되는 기술은 언어로 전달이 수월하니까 예시가 잘못됐단거 아님? 그니까 성인되는게 기술자보다 훨씬 쉽네 방구석에서 글만 외우면 되니까 ㄹㅇ
꽃처럼 아름답다같은 예시를 들게 아니라 이구절은 마치 “물고기는 지느러미가 있다->물고기는 생물이다->사람도 생물이다->사람도 지느러미가 있다”마냥 비약이 있다는 거임 이해를 다들 못하네. 도를 얻는거고 뭐고 이 구절은 책을 읽고 있는다는 거고 책을 읽는것과 끌질은 확실히 다른 범주라는 거지
그럼 책만 읽으면 성인 될 수 있겠네 ㄷㄷ
어쩌면 장인정신의 기술자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지 ㅎㅎ
뭐가 더 어렵냐가 문제가 아니라 글만 읽고 되느냐가 문제인데
자꾸 장자철학이라는 큰 범주에서 잣대를 들이대는데 나는 이 구절을 그저 트집잡은 거에 불과함. 도를 얻는다는 입장에서는 언어의 한계가 크겠지만 난 이 구절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할 뿐인거임. 장자를 비판할 생각은 애초에 없음
우리가 깊은 철학적 사고를 하려면 당연히 철학원전을 읽듯이 옛사람의 글을 읽는건 찌꺼기가 아니라는 생각.
그냥 이해 잘못하고 딴소리했다 하지 이상한 소리 계속하노...그럼 장자 책 구절에서 장자가 뭔 소리하는지 신경도 안쓰고 맥락에 안어울리는 트집 잡았다는 거임? 장자는 책을 읽는 것과 끌질이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성인이 도를 앎을 통해 전하고, 장인이 자신의 기술을 아들에게 전하려 하지만 둘 모두 온전히 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지
물론 둘다 온전히 전하진 못하겠지만 정도의 차이가 확실히 있다는 건 무시못하지. 끌질이 로또5등도 안된거면 책읽는 거는 로또2등은 되겠지. 그런데 넌 둘다 로또1등당첨 안된거니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함.
이제 또 암술 수술 없는 인간이 어떻게 꽃이랑 똑같이 비교 가능함으로 들어가네. 완전히 같으면 비유를 왜 하겠노...
그냥 좋을대로 믿으셈ㅇㅇ
애초에 이 일화에서 얘기해주고 싶은 본질적인 내용과 전혀 상관 없는 피상적인 오류를 지적하지 못하곤 못 넘어가는 꾸러기 심보를 가진 222.98 친구의 잘못
무식하면 이런 확증편향도 나오구만 첫 댓글부터 오류라 지적하기에 사람들이 잘 해설했음에 그걸 또 언어사유로 변명하기 일수니 무식한 네 말이 옳다
꾸러기 심보라면 심보라겠지만 그 속뜻이 좋은 말이다 싶으면 눈에 훤한 오류 따위는 무시하고 그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보다야 이러는게 나는 누가뭐래도 좋다. 난 자네들의 철학을 트집 잡은것도 아니고 그저 장자 구절하나 붙잡고 늘어졌을 뿐이나 왜 이렇게 다들 예민하게 비꼬고 비난하느라 바쁜지..
그래 도를 얻는다는게 아무 가르침없이 육체와 정신의 수련으로만 가능하다면 내 트집도 완전히 잘못된 것이겠다. 그러나 장자도 글로 전해 후세에 도를 가르치려는 것을 보면 모순이로다. 윤편의 말 하나 이치가 맞지 않다는 것쯤은 장자와 지금 대화해도 확실할테니 마음은 편하다
실천이 이론에게 이론이 실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