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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sf를 '과학적 상상력으로 성립하는 서사'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상상력이 부각될수록 하드sf에 가깝고, 서사에 집중한 게 스페이스오페라 부류다. 그런 면에서 삼체는 별의 계승자와 대비된다. 물론 별의 계승자를 3권까지만 읽었지만. 별의 계승자는 초반에 생물학에 대한 상상력, 인류의 기원에 대한 흥미진진한 설정으로 시작해 우주 발란뭐시기로 이어진다. 그것도 생각보다 시시하게 끝났지만. 삼체는 그 반대이다. 삼체는 인류에 대한 절망, 생존을 위한 전쟁에서 시작해 우주의 법칙에 의한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 의미에서 삼체 속 인간의 발버둥은 전혀 의미 없고, 또 의미로 가득 차 있다.


 각 부의 주인공들인 1부의 왕먀오, 2부의 뤄지와 장제이하이, 3부의 청신은 각부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1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쟁의 시작점에서 소시민은 어떤 기분일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2부는 전쟁의 한 복판에서 인간은 어떻게 전사가 되는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평가가 갈릴 것 같은 3부는 대자연의 앞에선 인간을 내던졌다. 그렇다, 류츠신은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는 불가지에 인간을 내던졌다.


 삼체 등장인물 인기투표를 하면 뤄지, 스창이 1,2위를 다투고 청신은 안티가 많을 거 같다. 뤄지와는 반대로 청신은 태생적으로 sf적으로 멋진 캐릭터가 될 수 없다. 뤄지가 망상병 날라리에서 삼체행성을 협박하는 검잡이가 되는 과정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청신이 미래로 던져지는 과정은 서사적으로 딱히 매력적이지는 않다. 특히 헤일로 호에서 뤄지의 유언을 들은 후부터 혹은 웨이드에게 기업을 넘겨준 후부터 청신은 우주의 끝을 향해 내던져진다. 원톈밍을 우주로 보낸 후로 청신에게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사랑 있는, 아픔을 느끼는, 공허한, 그러면서도 꿈꾸는 여느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뤄지 같은 전사도 되지 못하고, 웨이드 같이 냉혹한 사람도 도지 못했다. 정말 부모를 팔아넘길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청신에게는 하나의 사명이 있었다. 서기인의, 류츠신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세계를 시간을 뛰어넘어 세계의 끝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그녀가 첫 동면에 들어가고부터 427호 우주에서 나오기까지 그녀는 10년 정도 밖에 살지 않았다. 청신에게 세계는 아직 20대 후반이었던 21세기의 지구로 남아있다. 시간을 건너뛰면서 청신은 동면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스스로를 시간의 이방인으로 느꼈다. 그녀의 고향은 기억 속에만 있었다. 기억만이 그 떄 그 자리에 있던 인간을 증명한다. 인간이 불멸을 원한다면 우리의 묘비는 돌덩이가 아니라 기억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하나의 소망이다. 불멸을 향한 하나의 소망. 21세기 중국의 한 남자는 시간 앞에 무너지지 않을 하나의 묘비를 희망했다. 청신은 셈이 무의미한 시간을 뛰어넘어 묘비를 미래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묘비가 전해질 수 있도록 한 발짝 더 내딛었다, 차갑고 어두운 숲이라고 생각했던 우주가 따뜻할 거라는 희망을 안고 .



넷플릭스 드라마는 1,2,3부를 잘 섞어 만든 것 같다. 시간순서대로 배치한 건 마음에 들었음. 주연들은 친구관계로 만들어서 빈 틈 없게 하는 것도 좋았고. 근데 등장인물들일 통폐합한 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창웨이쓰는 은근히 감정선이 중요한데 웨이드랑 합친게 좀 아쉽고, 진 청은 청신이랑 너무 다르다. 또 살라자르에서 왕먀오의 삼체게임 부분을 뺀 건 드라마 분량 배분상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아쉽다. 뭐 드라마가 원작 안따라가도 상관 없는데 파나마작전 이후로 살라자르 분량은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