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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독립군 군대가 마사노프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식량문제 등으로 한인군대와 러시아 농민들의 관계가 최악의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인 군대의 통합을 둘러싼 주도권 쟁탈전으로 3, 4개월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한인 병사들이 러시아 농촌에 주둔하게 됨으로써 러시아 농민들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던것이다. 1921년 5월 중순에 이르러 군과 당의 러시아 인사들 사이에서 한인군대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되고 있었다. 러시아 공산당 당원들은 인민혁명군 총사령관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한인군대가 자행하고 있는 “탄압적 조치”와 “체포와 폭행”으로 러시아 농민들과 한인 군대의 악화된 관계가 “무장충돌 일보 직전에있다”며 조속한 조치를 취할것을 촉구하기도했다. 본의 아니게 러시아 농민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있는 현실에서 간도 독립군의 마사노프 탈출과 자유시 행은 늦었지만 자연스러운 결행이었다. 특히 의병과 독립군 시절 농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어온 홍범도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음에 틀림없다. 6월 초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자유시 도착은 이러한 진퇴양난의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던 홍범도등 간도독립군 지도자들에게는 돌파구를 제공한셈이다.

역사비평 146호 365-366쪽


저 때 홍범도 등의 간도독립군이 공산당 밑에 안 들어갔으면 독립군과 러시아 농민 사이에 전쟁날 뻔함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