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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가 한 이야기 중, 인간이란 존재가 결국 여기-있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총체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서는 현존에 이를 수 없다. 라고...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대충 내가 이런 식으로 이해한 말이 있다.


하이데거를 좋아하는 나의 친구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애국에 대해서라면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가 오히려 이 말에 감응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유독 한국에 대한 정이랄까, 애랄까, 그런 게 강한 편이었다. 그 친구가 페터 한트케를 좋아하고(학생 때 읽은 <아이 이야기>가 좋았다고 함) 국제문학상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동안 나는 정작 읽지는 않는 국문학이 언제 상을 탈까 은근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국문학을 읽은 연혁은 얼마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 문학이란 우리에게 너무나도 낯선 총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요즘 우리에겐 한국 영화가 우리의 총체와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족이 길었다. 24년을 시작하며 나는 동아시아 문학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창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중간 점검 삼아 읽었던 국문학을 정리해본다.



1.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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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단편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사실 구보 씨 자체는 교과서에서든 아니면 나중에 시간을 내서 따로 읽었든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다. 다만 구보 씨 외에 박태원이 그려낸 편린들은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기에 꽤나 신선했다.

좋았던 단편을 하나 꼽자면 <낙조> 허구헌날 막걸리나 잡수러 다니는 약 장수 양반의 생활사를 그린 작품이다.

박태원의 문체는 만연체임에도 그리 화려하지 않고, 정념이나 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묘사가 장황하거나 탐미적이지도 않고 박태원만의, 경성만의 모더니즘을 유지한다. 그건 단순히 미숙한 마이너 카피(박태원이 조이스를 좋아했다는 건 유명하다)일 수도 있겠지만 박태원만의 '모던-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단편, <골목 안>은 <천변풍경>의 프리퀄 격인데, 사실 집필 시기로만 따지자면 <골목 안>이 더 뒤에 쓰였다.

박태원의 이러한 모던-리얼리즘적인 특성은 고현학이라는, 일본에서 당대 유행했던 학문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도 있겠다. 이 학문은 고고학을 뒤집은 학문인데, 말 그대로 현대에 대한 고찰을 담은 학문이다. 연구랄 건 없고,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하여 그에 대한 사료를 얻는다는, 제법 변태적인 방법론을 가진 학문이다.

박태원 소설에 그려진 시선은 그러한 고현학적 방법론과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고현학에 따라 '촬영'된 경성 풍경은 일종의 식민지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2. 이태준 단편집 / 무서록(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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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의 작품ㅡ달밤 / 해방전후, 그리고 산문집인 무서록까지.

이태준은 으레 한국 현대 단편의 완성자라고 일컫어지며, 실제로 무서록을 보면 상허 자신은 장편보다는 단편을 더 세련되고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태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역시나 문체인 듯하다. 문학을 할 때 중요한 건 거기 담긴 사상보다도, 작가가 내세우고자 하는 일련의 정념을 강조했을 정도로, 그는 글에 있어서 아주 정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적은 짧은 글들에서는 대개 미려하고 절제미 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장편에 있어서 이태준은 그리 능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앞서 말했듯 상허 스스로 장편은 단편에 사족을 붙인 것이라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편보다 아주 조금 분량이 긴 중편 소설 정도라 해도 통속적인 서사에 다소 밀도 풀린 문장들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단편에 비하면 이태준 특유의 문체가 옅어지는 것은 아쉽다.

사실 이태준의 또 다른 점은 서사적인 장치나 사상보다도 특유의 문체와 함께 나타나는 '장면적인 힘', 이미지에 있다. 이점인 대표작인 달밤이나 까마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현진건과 함께 경성 단편 제일로 많이 엮인다. 둘 다 읽어본 바에 따르면 이태준 쪽이 좀 더 엘리트적이고 서구적인 향이 많이 나는 단편들을 쓴다. 그렇다고 상허가 김동인 같은 카피카피 룸룸이었냐면 그건 아니고, 무서록을 보면 동양 또는 조선 고유의 미를 상당히 중요시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무서록에 의하면 그의 절제된 문체는 동양의 정적인 미를 탐구하며 습득한 듯하다.




3.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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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의 아버지라지만 차라리 대부代父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광수의 장편이다. 당대 연재할 때는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사실 이거 읽고 광수햄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지는 바람에 그다지 좋은 점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름 열심히 찾아봤었던 것 같은데 뚜렷이 생각나는 정보가 없다. 진짜 대부가 맞을지도?

다만 이렇게 치부하기에는 이광수란 사람 자체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음은 맞다. 그렇다고 정감 가게 복잡한 건 아니지만, 그냥 국문학 애비 수준 ㅋㅋ 하고 넘어가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이광수 입장에서는 조선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는데에 나름 치열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무정에서 유독 살아가는 것에 대한 대목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대목들이 은근히 있는 편이다.

이광수는 계몽주의와 많이 엮이는 인물인데 한편에선 이광수의 계몽주의는 당대의 계몽주의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서구 속 동양이라는 위기의식과 중간적인 지식인 계층이라는 자기 인식은 비슷했던 것 같다.

<무정> 자체는 좋은 작품이라고는 하기 힘든데, 특히 결말 부분은 프로파간다 문학 같은 게 연상될 정도로 부자연스럽다.

어쩐지 좋은 말이 남기 힘든 작품이라 오히려 암울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신소설이 문학사에선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진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존 문학사를 뒤엎을만한 문학사론이 하나쯤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루카치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문학은 별조차 없던 시대에 겨우 태어난 것만 같다.




4. <관촌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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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최다 출제를 자랑한다는 이문구의 관촌수필이다. '지방의 고유적인 미'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문체로, 이문구가 과거 관촌에서 겪은 다섯 가지 이야기와 현재(70년대) 작중 말 그대로 '일락서산'이 되어버린 관촌을 풍자하는 세 편의 이야기까지.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집이다.

앞서 언급했듯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보다도 문체다. 충청 방언을 사용한 어쩌구저쩌구로 문학적으로 가치가 높고... 물론 매우 유려스러운 문체임은 맞지만 상당히 고난이도의 방언이라 읽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다행히 아주 못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서사 같은 부분은 해설에서 나오듯 고유적인 문체는 물론이고 한국 특유의 서사, 특히 'ㅇㅇㅇ전'의 형식을 많이 빌려온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단편도 장편도 아닌 중편 소설인 특성도 이러한 고유 문학의 형식을 어느 정도 빌려옴에 따라 형성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관촌이라는 공간을 재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얘기했듯 앞부분과 뒷부분이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앞부분이 과거를 더듬어가며 각각 이문구의 어린 시절 사람들을 '관촌'으로서 복권해가는 형식이라면, 뒷부분은 현재 관촌의 우스운 풍경을 재치있는 묘사로 풍자한다. 갑자기 분위기가 급변하기 때문에 공산토월에서 앙앙 울었다가 여요주서에서 낄낄거리게 될 수도 있다.

서사 자체로만 보자면 역사나 이데올로기를 고찰하는 부분은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만(이게 반드시 의무 사항도 아니고) 고유적인 미와 전통, 그리고 애수를 그려내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아마 국문학사에서 가장 사사롭게 아름다운 작품일 것이다.




5. <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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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문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걸작, 광장이다. 일단 오랜 기간 작가 최인훈이 수없는 개작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 읽어도 세련됐다고 느낄만큼 매우매우 뛰어난 언어 감각을 보여준다. 쉼표를 통해 생성하는 리듬은 별미거니와, 작중에서 나타나는 이미지 등도 어찌 보면 고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강렬함을 선사한다.

관념적인 소설의 대명사다보니 독백적인 부분도 많지만, 그럼에도 템포가 늘어지지 않고 중편 분량에서 이명준이라는 인간의 인생사를 풀어낸다. 더할나위 없는 GOAT.

같이 실린 구운몽은 모더니즘 향이 진하지만 이후 시기 본격적인 한국 모더니즘(특히 이인성)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하지만 아주 모자라지만도 않은 작품으로, 전후 소설 특유의 혼란스러움을 최인훈 특유의 문체로 풀어낸 느낌이다.

그냥 알레고리와 문학적 재미를 모두 잡은 GOAT. 더할나위 없다.




6. 황석영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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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 나온 황석영의 단편집. 대표작인 삼포 가는 길부터 2016년작인 만각 스님까지 다양한 단편이 실려있다.

아쉽게도 전에 읽었던 <돼지꿈> 단편에 비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확실히 덜한 감이 있었다. 가객은 특이하게도 아예 우화처럼 쓴 작품인데, 이건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그밖에 다양한 인간사를 황석영 특유의 다채로운 어조로 써내려가는 작품이 많다. 한편 다시 읽으면서 느낀 건데 황석영은 리얼리즘으로만 풀이되곤 하는데 낭만주의적 성격도 매우 짙은 느낌이다. 독갤에서 언제 본 건데 예이츠 마냥 언젠가 다른 사조 작가로 분류될 수도 있지 않을까.

비교적 최신작인 만각 스님은 황석영이 80년대 절 한 켠을 빌려 집필했던 경험을 적은 일종의 자전?소설이다. 특유의 썰 푸는 맛은 확실하다.

문필가냐 이야기꾼이냐로 따지자면 황석영은 역시 재담꾼에 더 가깝지 않을까.




7.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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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태준과 함께 조선 단편을 씹어먹었던 현진건의 단편집이다. 아무래도 이태준보다는 먼젓시대 사람이다보니 초기작은 아직 신파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다만 초기작도 문체 자체는 상당하다. 이태준 특유의 세련된 문체하고는 비슷한듯 또 다른, 더 친숙한 어조의 언어를 사용하려는 느낌이다.

소재 자체도 이태준이 지식인 시점으로 기생집 놀러다니는 단편이 많은 것과 대비되게 사사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그려냈다. 표제작이자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운수 좋은 날>은 다시 읽어도 GOAT가 아닐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역시 작품 자체가 많이 없어서 금방 금방 읽는다는 점이다. 아마 대부분 단편집이 여기 실린 22편의 리스트를 유지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게 단편 전집인 걸까? 좋은 요절 작가들을 읽을 때마다 으레 그렇듯이 아쉽고도 또 아쉬울 따름이다.




8. 김남천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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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 작가중에서도 인지도는 많이 떨어지지만 상당히 읽을만한 작가, 김남천이다. 초기작은 역시나 카프 계열 단편답게 그다지 감흥이 없지만, 감옥에 갔다온 이후 작품들은 자기 고찰적이고 반성적인 작품이 많고, 또 발자크의 문학론을 가져오면서 자신만의 '인간 희극(조선의 세태)'을 그려내겠다는 문학론에 따라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 많다. 문필가로서도 소설가로서도 카프 치곤 상당한 문학력을 보여준다.

표제작 <맥>은 연작 단편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다가 감옥에 가서 사상 전환을 한 남주인공(당연히 김남천 자신이 모델이다)에게 걷어차인 여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다. 김남천은 위의 작가들 못지 않게 서구 속 동양, 동아시아 속 조선에 대한 고민이 상당했던 작가였던 것 같다. 연작 내내 '동양학'이 주요 제제로 등장하여, '우리다움'을 상실한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주된 문제거리로 삼는다.

그외 대표작으로 일컫어지는 <물>은 카프 문학 이후 감옥의 매콤함을 본 김남천이 그때의 경험을 그대로 적어낸 작품으로, 일제 시기, 특히 말기에 탄압적이었던 일제의 조선인 수용소 환경을 보여준다.

카프 계열 작가이면서도 무조건적인 혁명을 부르짖기보다는(사실 카프 와해 사건 이후 대부분 작가들이 이러한 고민에 빠졌으리라 생각된다) 자기 고찰과 반성을 통해 노동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작가로서도(초기 김남천은 본래 문필가보다는 문학을 끼얹은 노동사상가에 가까웠다) 일약 활약할 수 있었을 테지만, 카프 계열 작가들의 일생이 으레 그렇듯 월북한 뒤 숙청 엔딩을 맞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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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빛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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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지만 한국 작가가 아닌, 국문학의 범주(국문학은 1. 국문으로 써야 할 것 2. 한국에서 쓰여야 할 것 3. 한국 국적이 써야할 것)에 따라 교과서에 좀처럼 등장하지 못하는 외딴 작가, 김사량의 작품집이다.

일단 전반적인 작품 자체는 대체로 무난한 편이다. 그런데 장면적인 힘, 이를테면 <빛 속으로>의 난 조센징이 아냐! 하는 장면이나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 또는 <천마>의 문을 두드리며 나는 일본인입니다! 하는 장면 등 인상적인 장면 묘사에 매우 탁월한 작가라고 느껴졌다. 세 번째 단편인 <풀이 깊다>에서는 한국 오컬트 단골 소재인 백백교도 등장하는 등 작품 스펙트럼도 은근히 넓은 편이다.

다만 역시나 감질맛 나게 짧은 작품선인 건 아쉬웠다.

국문학이지만 국문학이 아닌, 해설의 말을 빌리면 '방랑 문학(보다는 사실 개인적으로 이방인 문학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전혀 결이 다르지만 이창래가 쓴 소설도 있고.)' 특유의 이질성 덕분에 국문학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맛의 작가로 기억에 남았다.




많이 읽었다 싶었는데, 다 세어보니 이제 9권이다. 아직 읽을 게 산더미다.

국문학이 읽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 작품이 뚜렷한 색채 대신 우중충하고 어중간한 어조를(특히 일제 시대 작품들이)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계절마다 어울리는 문학이 있다면 국문학은 어느 날씨에도 끼기 힘든 것이다.

국문학에 어울리는 날씨가 올까, 모를 일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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