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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국제정치학을 연구한 저자가 써서

엄밀하게 역사를 조망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국제정치학자로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문제의 근원을 돌아본다는 의미가 강한 듯함.


19세기 조선은 언제 누구에게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실패국가였고

그 당시 일본은 조선의 통치권을 조용히 장악한 게 아니라 지속적인 민중봉기를 진압하고 최대 53만 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학살을 통해 조선을 강제로 지배한 학살의 제국이라는 점을 전제하면서


이 두 가지 점을 분명히 인식한 채로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고 지나치게 트라우마적인 태도를 버린 채 현재의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지.

현재 일제강점기 36년에만 주목한 나머지 그 이전 20년 동안 있었던 의병전쟁기의 커다란 학살의 역사에 대한 조망이 부족하고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


논지나 주장이 상당히 민감한 부분을 다루면서, 이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만


이 저자의 주장 역시 지나치게 한국 중심의 천동설에 가까운 외교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듯함.


예를 들면 마치 이 책에서는 일본의 혐한감정이 한국의 반일정서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한국이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적 역사관을 버리고 열린 자세로 일본에게 나아간다면 일본이 극적으로 태도를 바꿀 것처럼 묘사하나 (물론 일본 내부적으로도 충분히 사죄와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히 지적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애당초 한국과 일본의 국력의 크기를 비교했을 때 딱히 일본이 한국의 국민 정서 하나하나에 반응하면서 외교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고, 일본의 외교관, 정치인들도 한국인의 반일감정에 딱히 신경 쓰면서 외교전략을 짤만큼 그렇게 순진하거나 감정적인 사람들도 아님.


한일간의 외교문제는 결국 현재 존재하는 한일 간의 지정학적 대립에서 비롯됨.

산업구조가 유사해서 경쟁국인 데다가 일본의 패권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현재 한국이 누리고 있는 국제적 권리나 패권의 측면에서 대립의 소지가 많음.


예컨대 현재는 일단락됐으나 과거에 EEZ나 중간수역을 둘러싼 대립이 그러했고,

최근에는 라인과 같은 한일 간의 경계에 있는 다국적 기업의 국적 문제가 그러하지.


이렇듯 한일 간의 대립 및 갈등의 소지가 발생한 뒤에야 이러한 역사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

마치 이러한 역사적 문제가 한일 간의 외교 갈등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앞뒤가 바뀐 이야기라 할 수 있음.

일본이 현재 한국과 함께 미국의 패권 아래에 놓인 것은 맞지만, 19세기,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한일 간 지정학적 대립관계는 한 번도 변한 적은 없음.

도덕적으로 누가 옳고 그르냐를 이야기하기에는 한일 간의 이해의 충돌의 여지가 너무 명확하고 그 때문에 역사적 갈등이 불거지는 것이지


역사적 갈등만 사라지면 이러한 한일 간의 민감한 이권관계의 문제가 해소된다? (물론 이 책에서는 명시적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이는 너무나 한국중심적인 사고방식, 한국적 천동설이 아닌가 함.


미국 외교당국자들에게 한국 외교관이나 국제정치학계에 있어 '한국 중심적 사고' '한국적 천동설'이 강하다는 비판이 많은데, 이 책 역시 그러한 비판의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책인 듯 함.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일제가 벌였던 학살에 대해서 잘 조망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그리고 이미 그 이전부터 실패국가화 되어 있었던 조선 정부와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이 균형잡혀 있음.


그리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지인, 일제 강점기를 지나치게 일제에 의한 일방적 침략사로 이해하지 말고, 실패국가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침략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대규모 학살, 그리고 이 과정에서 차츰 민중이 지속적인 투쟁과 저항을 거쳐 근대적 시민으로서 자각해 나간 역사로서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의 역사를 이해하지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은 있음.



하지만 논지를 위해 딱히 엄밀한 역사적 자료들을 검토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단순히 양란 이후에 조선이 망했어야 한다는 강만길의 발언을 별다른 검토나 논증없이 단순히 자극적으로 인용한 것은 비판의 소지가 있어 보임.


또한 논지 역시 상당히 민중사관적인 태도가 있어서, 동학란으로 말미암은 1차 학살 이후에 일제가 곧바로 조선을 장악하지 못했음은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그 과정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즉 아관파천으로 일제의 패권 확장을 저지하는 데에 성공했던 고종의 공헌을 두루뭉술하게 서술하고 넘어간다던가, 또 본서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의병전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사족 계층에 대해서도 대충 '대다수 엘리트들은 일제에 순응했으나 일부 엘리트들은 저항했다'라는 식으로 서술하는 등 지나치게 조선 정부 및 엘리트들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인상 역시 지우기 어려움.


물론 19세기 조선이 이미 파탄국가였다는 논지는 나도 대체로 동의하고, 그 당시 엘리트들이 무능했던 것도 사실이나, 이 책에서 그러한 일제에 대한 민중적 저항의 계기로 내세우는 의병전쟁 등은 주로 그러한 엘리트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대체로 민중에게 이 책에서 강조하는 새로운 저항의식과 근대성을 부여한 주체였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려움. 그 이전 동학란을 일으킨 전봉준조차도 본서에서 인정하듯이 존왕양이 사상을 기반으로 한 유학자였고, 의병전쟁 역시 대체로 새로운 신학문을 수용했던 사족, 혹은 평민이라 해도 주로 향리 계층들이 일으킨 것이니까. 이 당시 많은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도 사실이지만, 실상 고리타분한 성리학 지식과 근대적 신학문 사이의 가교를 담당했었던 것은,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를 위시해서 그 이전부터 신학문의 경향에 어느정도 익숙했고, 그래서 그 당대의 지식세계에 새로운 학문 체계를 수용할 수 있었던 전통적인 엘리트 계층의 기여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움. 대개 19세기 말-20세기 전반기 미국과 유럽의 선교사들과 함께 지방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고 근대 학문을 보급한 것 역시 저자가 그렇게 비난해마지 않던 사족 및 그 사족의 후예들이었는데 말이지.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지나치게 민중사관적인 태도 때문에 조선 및 조선국가의 엘리트 계층에게 과도한 적대감, 감정적 비난을 하고 있다고 여겨짐.

물론 일제의 침략사 역시 이제는 트라우마적, 감정적 태도를 버리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저자 본인도 어떤 측면에서는 상당히 감정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음. 조선이 19세기에 굉장히 낙후된 파탄국가였다고 해서,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거기에 감정이입해서 분노할 이유는 전혀 없는데 말이지.


오히려 이 당시 고종 및 집권층의 무능과 조선국가의 파탄상을 적절히 이해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이 시기 엘리트 계층들이 했었던 기여, 그리고 이것이 이 책에서 설명하는 '근대적 저항' 및 '근대 정신'을 민중이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 역시, 그리고 고종의 무의미해보이는 저항이 어느정도는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는 데에 공헌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해야만 이 당시 역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함.




도발적이거나 민감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의의가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이 저자가 바라는 '새로운 한일관계사 인식의 기초'로 작용하기에는 그 역사적 인식이 약간 부실한 측면도 많고 감정적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측면도 있어서 약간의 한계가 있는 책이라고 여겨짐. 특히 현재의 외교관계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한국적 중심주의'에 매몰돼 국제외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