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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울고 있다. 찌르듯이 아픈 소금에 절인 눈물, 그 눈물을 통해 코피(지명)가 어렴풋이 흔들거리며 나타난다. 그 코피를 돌아가는 대신 넘어가고 싶은 충동이 갑자기 미친 듯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있나?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공기가 탁@탁 소리를 내고 있다. 벼락은 그럴 때도 있긴 하지만 같은 곳을 두 번 때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정말로 멋진 길이다.」



계시

소녀를 때리는 번개. 작품의 사실상 주인공인 막내딸 아모르는 벼락을 맞고 살아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시공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마술적으로 나타나는 이사건은 아모르를 사제로 만든다. 아모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눈 대화, 어머니의 어렴풋한 유언, '이 집을 흑인 하인 살로메게 넘겨달라'는 유언을 엿듣곤 이것을 가족들에게 상기시켜준다. 벼락을 맞은 소녀가, 가정의 운명을 이어가는 신탁자가 된 것이다.



모친 살해

어머니가 죽은 시기는 80년대, 아파르트헤이트가 극에 달해 남아공이 극도로 불안한 시기였다. 장남 안톤은 국경에서 흑인 여자를 쏴 죽인 뒤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환상에 시달리던 안톤은 복무 중 탈영을 감행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탈영병 안톤의 이야기인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모친 살해에 중점을 두는 대신 이야기를 다음장으로 넘어간다. 안톤은 정치적 난리통에 처벌 없이(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정신 병리가 처벌 대신 내려진 그의 '벌'일 것이다) 복무를 마치고, 다시 농장에 찾아온 친척들과 마주한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죽음사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 네 명의 죽음에 따라 시대가 천천히 변화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녀 아스트리드, 그리고 장남 안톤까지 죽으며 농장 소유주였던 백인 가족은 서서히 와해되어간다. 아니, 사실 그들은 오히려 죽음에 의해 집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두의 죽음에는 늘 아모르의 질문이 하나 따라붙는다. '약속했잖아, 이 농장을 살로메에게 주기로.' 죽음이 오히려 그들에게 봉합의 가능성을 상기하게 한다. 그들을 와해시킨 건 차라리 삶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그들의 삶은 사실 엉망진창이다. 그건 신탁을 내리는 자이자, 자기 운명의 완성자인 아모르도 마찬가지다.



엎드린 메시아

아모르는 에이즈 병동에서 일하며(남아공은 에이즈 감염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쉴 새 없는 환자들을 돌봐주는 신세다. 아모르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녀는 유린당하는 성녀다. 그녀가 봉사하는 이들은 대개 돈을 지불하지 못하는 흑인 계층일 것이다. 종교의 알레고리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리 깨끗한 이미지는 아니다. 엎드린 메시아, 똥깐의 예수, 파렴치한 고해성사, 자기위로적인 성직자들 등등. 오직 벼락을 맞은 아모르만이 신실하게 그녀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아공이라는 교단 아래에서 그녀만이 유일한 메시아인 것이다.



살로메

정작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살로메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은 백인 가정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으므로 살로메를 '의도적으로 배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살로메는 늘 농장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은 살로메가 농장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로메가 등장하는 것은 기껏해야 가사 노동을 할 때나 '그들이 죽음에 맞았을 때'이다. 그러나 살로메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아모르를 농장으로 다시 불러낼 때이다. 가족의 마지막 주인 안톤이 죽자 멀리 떨어져사는 아모르를 불러올 자는 아무도 없다. 그때 아모르를 기억하고 불러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살로메다. 그리하여 이 소설의 서사 뒤에는 벼락을 맞은 소녀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향 서사가 존재하게 된다. 아모르를 다시금 불러오는 살로메는 이 가정의 사도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설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묵시를 고하는 30년의 귀향으로 완성된다.




소설을 읽고 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어지러울 정도로 다채로운 시점 변환이다. 몇 문장만 놓치면 금세 시점이 바뀌어있을 정도다. 작가 데이먼 갤것은 본래 극작가로, 전체적으로 극작에 가까운 서술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은 계속해서 서술자를 바꿔가며 그들의 내면을, 삶을, 가감없이 판단하며 계시를 내린다. 그러나 위의 장황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그저 한 가족의 몰락, 그리고 계승을 그린 가족 서사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농장, 두 개의 세상, 네 명의 죽음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그곳에 쓰인 사람들의 으레 흔한 이야기, 그러니까 삶과 죽음, 와해, 다툼, 돈, 사랑, 범죄 등 역시 마찬가지다.


쿳시나 고디머랑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쿳시를 안 읽어봐서 당장 비교는 힘들 것 같다. 게다가 데이먼 갤것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 뒤섞인 느낌이라 일반적인 감상을 내리기도 어렵다.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자면 그럭저럭이었다. 전반적으로 알레고리나 이미지, 유머 등은 좋았는데, 문체는 좋으면서 독특한 느낌이 있어 말하기 어렵고 서사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아모르에서 시작해서 아모르로 끝나는 구성은 좋지만 중간중간 들어간 이야기들이 막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는 뜻이다.


사족이지만 이거 읽고 남아공 현실을 찾아보니까 다소 상쾌한 소설 결말에 비해 암울함이 느껴졌다. 모쪼록 벼락이, 우수수 쏟아지곤, 계절을 따라 그쳐가기를. 이제 그곳은 겨울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