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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작가가 광장을 10여 회 개정했고, 크게 개정한 것만 5번이나 된다니 필생의 작품이라고 봐야 할 듯.
<광장>의 문체 변화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인데, 초판본과 최종본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라면 역시 이 작품이 한자어를 고유어로 최대한 바꾸는 방향으로, 전체적으로 다시 쓰여졌다는 것.
1)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이면서 숨쉬고 있었다. (최초 발표본)
->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최종본)
2) 개인적인 상처를 건드린 실수를 사과하는 그런 태도에 그들로서는 습관인지 모르나 퍽 교양이 있는 사람의 세련된 몸짓이 얼핏 스치는 것을 느꼈다. 선장이 잠시나마 어색한 기분을 가지게 한 것을 명준은 미안스럽게 여겼다. 양쪽으로 트인 창으로 바람이 달려 들어오며 핀으로 꽂은 해도의 가상자리를 바르르 떨게 했다. 갈매기들은 바로 배옆을 날으면서 창으로 구획진 공간을 우에서 아래로 강하하고 아래서 우로 치솟으며 대각선을 긋고 선미를 향하여 휙 사라지곤 했다. (최초)
-> 아픈 데를 건드린 실수를 비는 그런 품에 그들로서는 버릇인지 모르나 퍽 분별 있는 사람의 능란한 몸짓이 얼핏 스친다. 선장을 잠시나마 거북하게 해서 안됐다. 양쪽으로 트인 창으로 바람이 달려 들어와서, 바늘로 꽂아놓은 해도의 가장자리를 바르르 떨게 한다. 갈매기들은 바로 옆을 날면서 창으로 테두리진 넓이를 내려가고 치솟으며, 맞모금을 긋고 배꼬리 쪽으로 휙 사라지곤 한다. (최종)
3) 깡그리 불타버린 공포의 잿더미 위에 증오의 찬비가 소리 없이 내리면서 남은 재를 고스란히 적시며 명준의 온 몸에 스며갔다. 부드득 이 가는 증오보다 더 조용하고 확실한 증오였다. (최초)
-> 속에서 탈대로 타고 난 무서움의 잿더미에 미움의 찬비가 소리 없이 내리면서, 남은 재를 고스란히 적시며, 명준의 온몸에 스며간다. 부드득 이 가는 미움보다 더 차분하지만 사무치는 미움이다. (최종)
이 정도 비교 예시를 찾았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런 방식의 다시 쓰기가 과연 성공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문체를 바꿔서 더 나아진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더 나빠진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고유어를 고집하면서 표현이 더 유려해진 측면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자어를 없애면서 표현이 밋밋해지고 리듬이 평이해져버린 측면도 있다.
그리고 위의 예시들만 봤을 때는, 표현의 강약을 고려하지 않고 상당히 기계적으로 다시 쓴 느낌?
'깡그리 불타버린 공포의 잿더미 위에 증오의 찬비가 소리 없이 내리면서'에서는 상당히 다이나믹한 운동감이 느껴지지만,
'속에서 탈대로 타고 난 무서움의 잿더미에 미움의 찬비가 소리 없이 내리면서'는 좀 억지스럽고 장황하며, 운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전체를 다시 썼다는 건가?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광장>과 같은 스타일의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물의 심리적 운동인데, 문체를 거의 순수한 고유어 투로 고치면서 원래의 정교한 움직임의 포착은 상당히 사라졌다고 생각해야 할 듯.
결과적으로 고유어 버전 개정 전의 작품과 개정 후의 작품은 각기 장단점이 있는, 완전히 다른 텍스트이며, 광장의 최종본을 결정본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최인훈의 이런 시도 속에서, 문장가로서의 그의 그릇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것 같다.
정말로 오랜만에 읽어본 <광장>의 문장은, 상당히 늘어지고 경직된 것으로 느껴졌는데, 그만큼 나의 보는 눈이 높아졌다는 뜻이리라.
첫 문장부터 리듬에 빈틈과 경직이 느껴져 잘 몰입이 되지 않았고, 계속 읽는다면 억지로 읽어야 하리라고 느껴졌다.
광장의 도입부는 이러하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간다."
첫 번째 문장부터 미묘한 경직이 느껴지는데, 내 생각에는 저자가 소설의 첫 번째 단어를 꼭 '바다'로 시작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은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ㄱ.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이면서 숨쉬고 있었다. (신구판)
ㄴ. 바다는 숨쉬고 있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민음사판)
ㄷ.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전집판)
이 뭔가 애매한 경직을 최인훈 정도의 작가가 10번의 개정을 통해서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첫 단어를 바다로 시작해야 한다는 당위만 버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유연한 흐름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문단을 바꿔 이어지는 문장,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간다."
여기서는, 첫 문장의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에 이어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를 통해 -면서가 반복되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다음에도 '훈김을 헤치며'가 나오기 때문에 상당한 경직이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2번째 문장은 전체적으로도 억양 조직이 좋지 못한 문장이라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필자가 만약 <광장>의 작가였다면, 도입부를 이렇게 고쳐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원문)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간다"
수정 예시) "크레파스보다 진하도록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바다는 무겁게 뒤채이며, 숨을 쉰다.
인도 배 타고르호는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들을 싣고서,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어가며, 무슨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고 미끄러졌다."
원문에서는 1번째 문장에서 주어 '바다'가 첫 단어로 나오기 때문에 작가는 경직을 피해서 2번째 문장에서 '타고르호'를 약간 뒤로 뺐는데,
그 결과 타고르호 앞에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라는 장황한 수식어가 붙게 되어, 문장이 굉장히 늘어지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리고 뒤에는 -면서와 -며가 첫 문장에 이어 반복되는 경직이 일어나고.
오랜만에 다시 본 <광장>의 문장은 전체적으로 이런 경직 속에 있는 것 같았고, 의외로 문장이 굉장히 거친 듯한 느낌이었다.
<광장>을 발표했을 때, 작가는 고작 24세의 젊은이였다.
그 후 50년에 걸친 10여 차례의 퇴고 속에서 저자는 젊은 시절의 미숙함을 보충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러나 다시 읽어본 <광장>에서는, 원본의 미숙함이 퇴고를 통해 보충된 만큼, 원본이 가졌던 젊음의 힘 역시 퇴고를 통해 마모된 듯한, 그런 기묘한 느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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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교과서에도 최종판으로 실리지 않았으려나?
한자어->고유어로 대폭 수정이 이루어진 게 전집판(1976년)이라고 하니.....
아재요
왜 저리 집착했을까요? 젊었을 때 쓴 글이니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기지 못하고.
아마 자기의 출세작이자 대표작, 필생의 작품이라 그랬을 듯? 로쟈 서평가는 뭐라고 평가하죠?
이 글처럼 문체를 중점으로 놓고 비교 분석은 안 했던 걸로 기억 하는데, 그래도 계속 고쳤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퇴보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던 걸로 기억함.
원숙해진 작가가 보기엔 미숙한 부분도 그때 당시의 시대상을 드러내고 있으니 고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쓴 글을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다시 찾아보니 어디서 읽은 건지 당췌 모르겠노
찾았음.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에서 읽었네
음 동의가 되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글을 처음 쓸 당시의 열정과 흥분이 사라진 상태로 다시 보고 고치면서 표현들이 도식화되고 리듬이 경직되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일어난 건 확실해 보입니다..... 특히 문체를 전체적으로 고유어 투로 고치는 건 무리한 작업이었던 듯....
쓰고 싶은 걸 글이 제대로 담지 못했다 생각한 거 아님?
음 일단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 계속 보충한 듯..
4.19와 5.16 사이였기에 가능했을 작품이라 그런가? 모르겠노... 근데 로쟈 서평가랑 평가가 비슷한 듯.
바꾼 게 읽기 훨 편하구만 뭔 운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최인훈이 예시처럼 고쳤으면 광장 불에 태웠을 거임 나는
걍 이건 전집 1권 보면 판 개정할 때마다 그에 맞게 후기 다 적어 두셨으니 그거 보시면 됨
일리아스 때도 그렇고 보다보면 님은 리듬감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취향으로 작품을 통제하려는 것 같음
남의 감상에 고나리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두번쨰 문장 수정은 좋네. 인도 배 타고르호는 으로 앞에 빼는게 낫다. 근데 첫 문장은 지금이 좋음. 바다는이 앞에 오는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