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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이고, 사놓고 언젠가는 봐야지하다가 이제야 펼치게 된 책이다. 마사 누스바움의 다른 저작들이 쉽게 쓰였기에 얕보고 도전했다가 큰 코 다쳤다. 하지만 읽다보면 의외로 술술 넘어간다.
저자는 공동체에서 누군가를 벌하는 일의 감정적 기반이 혐오가 아닌 분노(저작에선 분노라고 번역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분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나싶다)가 되어야 하고 잘못을 범한 이가 느껴도록 만들어야 하는 감정은 수치심이 아니라 죄책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모두는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존재이고, 따라서 잘못을 범했을 때 그 개인을 벌하는 것은 특정 개인을 공동체에서 축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개인의 행위가 공동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교정되어 공동체로 다시 복귀헤야만 한다. 우리는 공동체의 시민을 영구히 추방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기독교의 격언이 떠로른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까? 범죄자를 축출해야한다고, 영원히 우리와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그의 신상을 공개해 망신을 주자는 여론이 높은 한국에서 누스마움의 말은 그냥 공허하지 않은가? 내가 누스바움에게 설득된만큼 한국이란 공동체가 죄와 벌을 대하는 문화가 누스바움의 주장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저자는 공동체에서 누군가를 벌하는 일의 감정적 기반이 혐오가 아닌 분노(저작에선 분노라고 번역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분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나싶다)가 되어야 하고 잘못을 범한 이가 느껴도록 만들어야 하는 감정은 수치심이 아니라 죄책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모두는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존재이고, 따라서 잘못을 범했을 때 그 개인을 벌하는 것은 특정 개인을 공동체에서 축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개인의 행위가 공동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교정되어 공동체로 다시 복귀헤야만 한다. 우리는 공동체의 시민을 영구히 추방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기독교의 격언이 떠로른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까? 범죄자를 축출해야한다고, 영원히 우리와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그의 신상을 공개해 망신을 주자는 여론이 높은 한국에서 누스마움의 말은 그냥 공허하지 않은가? 내가 누스바움에게 설득된만큼 한국이란 공동체가 죄와 벌을 대하는 문화가 누스바움의 주장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헉 이거 완전 유교의 염치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