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보가 돼야겠어.
사람들이 '바보'라
부르는 이들은
동네에 몇 명 있었다.
그 바보들은 무시는 당해도
기대에 부응할 필요가 전혀 없어서 더 평화롭게 사는 듯했다.
나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입가에 침을 약간 흘리며
거리 모퉁이에 선 나를 상상했다.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
나를.
그리고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내가 처음 주목받은 곳은 학교 운동장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욕을 하고 나를 노렸다.
아버지마저 주목했다.
"이 녀석이 꼭 바보처럼 구네!"
선생님도 내게 주목했다.
다리가 길고 비단결 같던 그레디스 선생님.
그녀는 번번이 수업 후 나를
남게 했다.
"왜 그러니, 헨리?
선생님한테 말을 해 보렴......"
그녀는 양팔로 나를 감쌌고
나는 그녀를 밀어냈다.
"말해 봐, 헨리, 무서워 말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할 때까지 여기 있어도 돼 헨리. 말하지 않아도 좋아......"
그녀는 내 이마에 입 맞추었고
나는 손을 내려
그녀의 비단결 같은
다리를 살짝
만졌다.
그레디스 선생님은
섹시한 인기녀였다.
그녀는 거의 매일
나를 방과후에 남게했다.
모두 나를 미워했다.
하지만 그때 로스앤젤레스에 살았던 열한 살짜리 놈들 중
나만큼 황홀한 꼴림을 맛본 놈은 없었을 거라 믿는다.
<창작수업>시집에 있는 '바보'라는시다.
<창작수업>은 부코스키가 백혈병에 걸려 죽기 전에 낸 마지막 시집이다.
맥킨토시란 문물을 처음 접하고 매킨토시로 처음 쓴 시집이기도 하다.
맥킨토시로 또각거리며 '황홀한 꼴림을 맛본 놈은 없을 꺼' 라고 타자치는 부코스키를 상상하자 웃음이 났다.
70대의 부코스키가 꼴림을 타자로 쳐낼때 추접하거나 저급하지 않다.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웃음이 나는 것이다.
그의 시,글을 읽을 때에 나는 위로 받는다.
ㅋㅋㅋ 노친네같은데 웃긴 노친네같아서 좋다
70대 늙은이가 말하는거보게 ㅋㅋㅋ 거 호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