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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미당 서정주 전집 1 - 예스24


한국어 시집을 이상 시 전집으로 처음 접한 후 읽게 된 시집임. 부끄럽게도 작년 10월 말에 이상 시 전집을 완독한 직후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에야 완독...

사실 한국어로는 감상문을 쓸 깜냥이 안 되는 거 같지만 지금 안 쓰면 영영 미뤄버릴 거 같아서 (지하생활자의 수기처럼) 부족한 글이나마 올리기로 함.


***


서정주의 시에 대한 찬사가 무수한 만큼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지만, 초장부터 말미까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여럿 있었다.


사투리는 몇 번을 검색해야 뜻을 알 수 있는 경우가 여럿 있어 흐름이 끊기는 일이 이따금 있었고, 주제가 밋밋하게 느껴지는 시들도 꽤 있었으며, 또 당시 한국의 생활을 이루던 요소들과 한국 설화들에 대한 낯섦 등으로 인해 직관적인 감상이 떠오르지 않는 시들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경우는 시인이 사용한 몇몇 단어의 함의를 파악하는 과정이었는데, 자주 언급되는 자연물과(달, 산, 그림자, 뻐꾸기, 외 여러 종류의 꽃들) 인체 부위들에(눈썹, 손톱) 대한 시인의 고유한 인상이 글로는 쉽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어는 시인이 언어라는 그릇을 삶의 경험으로 채워가며 빚어지는 것이라면, 아직 미당과 나의 삶 사이엔 너무 많은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이유로 인해 "뻐꾸기"가 무엇인지 해설을 찾아본다 하더라도, 녹음된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여럿 돌려 들어보더라도, "세계의 끝에서 죽지 아니하고 / 또 걸어가면서 / 버꾸기가 따라 울어 / 보라 등빛 / 칡꽃이 피고"에서 난 뻐꾸기가 뻐구기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뻐꾸기는 내게 그저 시의 빈 구멍을 메운 허울처럼 느껴질 뿐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더라도). 


다음 시는 시공을 뛰어넘는 꽃의 영원성을 설파하지만 내겐 전술한 어려움을 대변하는 듯하다:


「무제」


"솔꽃이 피었다"고

천 리 밖 어느 친구가 전화로 말한다.

"이 솔꽃 향기를 생각해 보라"고...

"그 솔꽃 향기를 생각하고 있다"고

나도 한 천 년 뒤를 향해서 속으로 말해 본다.

"이 솔꽃 향기가 짐작되느냐"고...


- 『서정주문학전집』 (1972) 


53년 뒤의 나로서는 짐작되지 않는다. 어쩌면 짐작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험은 미당의 시에서만 느꼈던 것이 아니고 수많은 문학 작품을 읽어오며 경험했지만 이 전집이 특히 심했던 기분이 들고, 이로 인해 『신라초』의 중반까지는 읽기 시작한 것을 끝까지 읽겠다는 타성 하나로 읽어온 듯하며, 그 후론 마음에 드는 시들이 늘어나 그럭저럭 즐겁게 완독한 것 같다.



*


좋았던 시/짤막한 감상


「쑥국새 타령」 (발췌)


그러니딸꾹울음하고있다가

딸꾹질로바스라져가루가되어

날다가또네근방달라붙거든

옛살던정분으로너무털지말고서

하팔담상팔담서옛날하던그대로

또한번그어디만큼묻어있게해다오


- 『신라초』 (1961)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슬픔의 무게에 육신이 바스러져도 그리움이 가루처럼 대기에 남아 미약하게나마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길 원하는 애절함이 생생하게 느껴져 좋았다.



「피는 꽃」


사발에 냉수도

부셔 버리고

빈 그릇만 남겨요.

아주 엷은 여름하고도 이별해 버려요.

햇볕에 새 붉은 꽃 피어나지만

이것은 그저 한낱 당신 눈의 그늘일 뿐,

두 번짼가 세 번째로 접혀 깔리는

당신 눈의 엷디엷은 그늘일 뿐이어니……


- 『동천』 (1968)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특히 5-8행 부분). 근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읽을 때마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느낌인데, 아마 불교적인 "비움"이 시에 자연스레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란꽃 피는 오후」 (발췌)


천지에 시간은

인제

금시 잠을 깬

네 두 눈의 눈 깜작임이 되면서……


- 『동천』 (1968) 


크리스 마커의 영화 [방파제]의 한 장면을 글로 써내린듯한 연.




「무제」 (발췌)


피여. 피여.

모든 이별 다 하였거든

박사博士가 된 피여.

인제는 산그늘 지는 어느 시골 네 갈림길

마지막 이별하는 내외같이

피여

홍역 같은 이 붉은 빛갈과

물의 연합에서도 헤여지자.


- 『동천』 (1968) 


전집 1권엔 "이별"을 주제로 쓰인 여러 시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표현이다.

본인은 이과이므로 위 연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원심 분리된 혈장과 혈구였으나 (혈소판과 백혈구는 시인이 빼먹었다), 이내 문과적 감수성을 발휘하여 생명력의 상징이 되는 피마저 둘로 나뉘어 이별하게 되는 쓰라림의 순간을 포착해낼 수 있었다.



「보릿고개」 (발췌)


사월 초파일 버꾹새 새로 울어

물든 청보리

깎인 수정같이 마른 네 몸에

오슬한 비취의 그리메를 드리우더니


어디 만큼 갔느냐, 굶주리어 간 아이.

오월 단오는

네 발바닥 빛갈로 보리는 익어

우리 가슴마닥 그 까슬한 까스라길 부비는데……


- 『서정주문학전집』 (1972) 


1연은 4월을 생육을 채울 수 없는 차가운 돌로 채우고

2연은 5월의 사람을 살색으로 익은 보리로 채우지만

아이가 자리한 곳은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2연이 아닌, 1연이다.

이러한 두 연 사이의 적절한 대비가 허기와 공허함을 극대화하는 듯 하다.


*


예시(禮詩)에 대해


전집을 읽기 전에 서정주의 생애에 대해 짤막하게나 읽어봤기에 예시(禮詩)에 실린 시들은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어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가장 마지막에 실린 「8.15의 은어」의 냉소가 앞서 느꼈던 반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지 않았나 싶다.


*


한 작가의 전집을 읽는다거나,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본다거나, 한 음악가의 디스코그래피를 듣는다거나 하는 행위의 묘미는, 내게 가장 감동을 주는 작품이 꼭 그 예술가의 대표작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닐까 (물론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 전 미당의 대표작을 읽어봤지만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데에 비해, 이 전집을 읽으며 훌륭한 시를 많이 접할 수 있어 즐거웠다. 내 식견이 부족해 더욱 유익한 글을 쓰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


그나저나 요즘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는데 전에 꾸준히 올라오던 서정주 시 읽기에 대한 독갤 글이나 읽어 봐야겠음...

쨌든 글 읽어줘서 아주 고맙고 난 자러감 다들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