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데나 펼쳐서 보면 그날그날 깨닫는게 있는데
이게 자기계발서가 아니고 뭐람
책이 포스트잇 범벅이 되고있네
영원의 철학 276p 인용)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에 대해 무지한 이유는 [[자기이해가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환상의 즐거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리주의에서 초월주의로 이르는 모든 기준에서 볼 때 무지는 그리 결과가 좋지 않다. 자기무지는 비현실적인 행동으로 이끌고 그럼으로써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말썽을 일으키기에 나쁘다. [[또 자기이해가 없으면 진정한 겸손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효과적으로 자기를 부정할 수 없으며]], 자아에 내재하고 대개 자아로 인해 가려진 신성한 근본바탕과 결합하는 앎이 없기 때문에 나쁘다.
222p 인용) (노자의 말)
더 멀리 나아갈수록, 아는 바는 적어진다.
이 말은 좀 해설이 필요하겠는데, 제딴에는, 어느정도 합리적인 지식이라고 평가되는 [경계]가 분명히 있고,
그 선을 너무 넘어서 가면 오히려 이해(즉, 아는 바)에는 방해가 된다는 말로 보임.
예를들면 자기가 환빠 같은거에 빠진다고 해봅시다.
이게 옳다고 생각해서 많이 나아가면, 되려 신뢰할만한 자료도 더 덜 참고하게 되고, 말이 통하는 사람도 적어지고.
그런 상태에서 '나 혼자 바른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남들이 무시하는거야' 하고 자기 세계에만 빠지겠죠.
그야말로 앎이 적어지는 거임.
(그 이우혁 작가님인가.. 이 예시 드니까 그 작가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죄송한데)
어떤 학문을 알려고 하는데 자기가 '음, 이 이상정도 나아가면 참 병적이고 이상하군' 하고 알아차리면, 이제 더 멀리 나아갈게 아니라, 경계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거지. 그래야 오히려 아는게 더 많아지는 거고.
논리실증주의자들 하던 짓거리나, 수학 공부하는데 수학의 기초가 불안하다고 집합론 같은거 깊게 파는거나, 그냥 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하면 될 윤리적 행동에 어떤 절대적 기초를 찾으려 하거나.
죄다 비슷하게 보임. 왜 무슨 절대적 뭔가를 찾으려고 하지?
극한까지 나아간 것 같다 싶으면 앞만 계속 볼게 아니라 주변은 뭐 어떻게 하고있나 빙글빙글 돌아봐야 하는 거임. 그런 말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하고싶은말이 뭐냐고요??
이 두 책 다 죽여주게 좋으니까 빨랑 사라고요, 네
님 저는 영원의철학 50p이상 진도가 안나가는데 번역이 구린거임 아니면 저자 문체가ㅜ원래 그런거임?
순서대로 읽지마요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625684
아니 그리고 머 어디가 안읽히는데요? 페이지좀 불러주세요 저도 함 봅시다
초반부분 읽다가 점점 에크하르트 인용하기 시작하면서 "신-아님not God = 불교의 공" 막 이런 개념 들고오면서 "신은 생기는 동시에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 막혀서 그냥 나중에 메모하면서 정독하기로 하고 책덮었음
저는 기독교의 신을 일종의 오메가라는 절대적 무한, 그리고 불교의 신인 부처?를 무한소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옳은 직관인진 모르겠는데, 이 명제를 받아들이시면, 절대적 무한의 부정은 무한소가 될테니 참이고요. 신이 생기는 동시에 생기지 않는건 뭐.. 신이란게 우리가 절대 지상에 불러낼 순 없고 단지 가리킬 수 있을뿐인 개념인데 (이것도 무한대니 무한소로 이해하면 이해됨. 왜냐면 무한대니 무한소니 정확히 가리키려고 하는 순간부터 무한대도 아니고 무한소도 아닌거죠) 그걸 우리가 표현하려고 [생기게] 하는 순간 신이 아니니 [생기지 않게] 되는거죠. 예 뭐 그렇습니다 예
합일은 오직 "그것"으로부터 "그대"를 분리하고 있는 장벽인 이기적인 에고를 소멸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마지막 밑줄인데 이럴거면 차라리 그냥 선불교책을 보는 것이 낫지 않나 싶어서 책덮었음
왜 성경쪽 신이 무한대냐면 뭘 사랑하려고 이해하려면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면 [점점 커지니까] 무한대인거고 불경쪽 신이 무한소인 이유는 미련을 버리고 거듭나려면 [내려놔야] 하는데 그러면 [점점 작아지니까] 무한소인거죠
네 뭐 불교책을 읽고오시는 것도 좋을것같네요 근데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대강 다 읽혀서 일단 보고난뒤에 나중에 불경 해설서 보면서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하나하나 설명해주니 고맙군여...저는 기성종교의 신 원형은 한계가 있다고 보는데 무한대, 무한소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면 결국 영원의 철학이라 함은 너무나도 초인격적인 개념이 되어버립니다. 감히 저같은 범부의 그릇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책으로 남을 수도 있겠네연..
그 뭐.. 초인격적이라기 보단 일종의 공리계인거죠. 예를들면 우리가 일상 덧셈뺄셈곱셈 하는데에 무한대니 무한소는 필요없지만 미분 적분이 필요할 땐 무한대니 무한소를 끌어와야 할 수 있는것처럼. 책을 읽을때 본인 이해의 공리계를 이렇게 바꿔서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때그때.
왜 의표세 내용은 글에 없음? - dc App
의표세도 걍 뒤에 아무데나 펼쳐도 다 좋아서 (511p) 성자가 철학자일 필요가 없듯이 철학자가 성자일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아름다운 인간이 위대한 조각가일 필요가 없듯이, 위대한 조각가가 아름다운 인간일 필요도 없다. (중략) 세계의 본질 전체를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며 분명하게 개념으로 재현하고, 이것을 반성된 모상으로서 이성의 끊임없이 준비되어 있는 개념으로 기록해 두는 것, 이것이 다름 아닌 철학이다.
(노자의 말에 대해) 감각으로 세상을 쪼겠다가 지각으로 세상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이 정신이고, 그걸 의식하는 게 최초의 앎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한 수많은 별개의 기억들을 의식 속에서 하나로 모아 흐르게 하는 것이 앎이 아닌가 싶음 (물론 전부가 하나로 통합되진 않지만). 그렇기에 더 멀리 나아갈수록, 아는 바는 적어진다는 말은 내겐 기억을 쌓아갈수록 이 "흐름," 혹은 앎의 상태를 점점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말로 이해됨. 나아갈수록 '얜 대체 어디다가 끼워맞춰야 하지?' 같은 생각이 드는 지식을 마주하게 되거나, 표면적으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명제가 둘 다 참이라거나 (혹은 개별적으론 참이라고 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거나) 하는 상황도 생기고
또 개인의 능력적 한계도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기억이 쌓일수록 지식이 서로의 움직임을 막아서, 또 그 순수한 질량 때문에, 하나의 통일된 움직임 - 흐름 - 이 어려워지지 않나 싶음. 그러니 쌓인 것이 적을 때는 그 미약했어도 흐르는 상태였으나 성장하며 비대해졌을 때는 되려 흐르지 못하게 되기에 앎 자체는 오히려 적어지는 거고.
그리고 기술간의 분류는 몰라도 학문간의 분류는 지금만큼 뚜렷하지 않았던 장자의 시대에 모든것을 통합적으로 생각하려다 오히려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상황은 더욱 자주 있었을 듯
별개로 본문의 내용은 Machado라는 시인이 쓴 "나그네여, 길은 없으나, 걸어야만 한다"라는 문장과 이를 보고 루이지 노노가 자신의 곡에 붙인 "걸어야만 한다, 꿈꾸며"라는 제목이 떠오름. 말대로 빙글빙글 돌다가도 이게 그것도 끝나 (근데 이게 사람의 지성으로 가능한?가) 나아가야할 때가 온다면, 줄어들어 비워진 앎의 자리를 꿈으로 채우고, 꿈이 차지한 자리를 다시 앎으로 치환하며 걸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싶은데 음 애초에 그정도의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 아니라 잘 몰?루겠내
하기야 의표세에서 쇼펜하우어도 천재는 암기[=앞의 공리적 지식들, 정의들을 알아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음]가 필요한 수학을 못한다 식의 얘기와 뉴턴의 허튼소리가 강단을 지배 (뉴턴이 한 일들이 사실상 이 공리 - 정의 -의 온갖 연쇄로, 그 세계에서 사는게 아니면 도대체 더 알기가 힘든..) 한다는 식의 얘기를 했죠. 뭔가 수학이란거 자체가 좀 많이 요약정리가 될 필요가 있어보이긴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지식이 서로의 움직임을 막는다는 점에도 동의하는데 이게.. 음.. 그래서 좀 많이 적어놓고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네 뭐 그렇습니다. 학문이 여역수행주이며 부진즉퇴란 말이 있던데, 뭐 아무튼 우리가 물이 뒤로 흐른단걸 아니 '음, 그러니까 계속 나아가든 해야겠군' 하고 의식하고 있으면 된다 생각합니다
사실 개츠비 마지막 문장은 학문에 대한 이야기였던 건가.
개츠비 읽어본지 하도 오래돼서 몰루 뭔가요
아니 걍 실없는 농담이었음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