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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태껏 과부는 욕망의 대상으로
마그란도니스 아들(4글잔데 이름 기억안남)이 과부가 자기 사랑을 안받아주자 자살하고
마그란도니스가 과부의 목을 잘라 복수하는걸 욕망을 이루지 못하자 욕망의 대상 자체를 거세하는 불쌍한 족속들로 여기고 넘어갔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깐 딱히 올바른 해석은 아니였던 거 같음
아 근데 또 쓰면서 생각해보니 합당한거 같기도 하고 몰루(다른 사람들도 의견좀)
근데 확실히 과부 부분이 유기적인 구성에서 벗어나는 느낌이긴 함
과부로 인해 잠깐 슬퍼하는 거 외에 뚜렷한 언급이나 변화나 파생사건도 없고 살해범인 마그란도니스도 그 뒤로 등장하지 않음(다만 법망을 피해 도망생활 중이라는 언급만 한 차례있을 뿐임)
그럼 주인공이 드디어 육체적 욕망에 눈을 뜨고 받아들인다는 소재 정도로만 취급되는건가? 그렇기엔 너무 소설적인 도구로만 쓰이는 거 아닌가? 뭐 안될 이윤 없긴해..
근데 그 뒤에 언급도 안될 뿐더러 성당 화재나 케이블 시설 운행 실패하는 구성은 의미가 통하는데 반해 궤도 달리해 붕뜨는 소재 같음
물론 주인공이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결말을 고려하면 과부가 죽었어야만 하는 건 백번 맞음
'부활절'에 죽은 과부라 이것도 의미심장하긴 한데... 잘 모르겠군 욕망과 화해하고 죽음과 화해하고 그 화해 속에서 주인공의 생명이 부활하는 그 순간이였던건가 싶기도 하고
카잔차키스 멱살잡고 물어보고 싶네
본능으로 욕망하는 것이 과부고, 이성을 통해 본능을 거부하다 받아들인 주인공은 거부를 통해 자신을 단련한 끝에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그 아들놈은 본능만 갈구하다 결국 자살해버리니 단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본능적이기만 한 사람은 욕망에 휘둘려다니다 죽는다는 의미 아닐까요.
좋은 생각 고마움. 근데 작품 분위기 및 전반적으로 이성의 틀을 깨고 본능, 욕망, 광기를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기초할 때, 이성 단련을 통한 욕망의 실현은 뭔가 안어울리지 않음? (물론 내가 이상한 데 꽂혀 잘못보는 것일수도 잇음) 물론 주인공과 달리 자살한 아들은 주인공과 대비되는 무언가를 드러내려는 거 같긴하지만..
예전에 읽어본 거라 지금 기억을 더듬어서 쓰는 거긴 합니다만, 우리가 뭔가 흠모하는 무엇인가가 생기면 어찌됐든 그것을 경계하건 경배하건 굉장히 진지해야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주인공이 그토록 거부를 하다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이니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지, 만약 처음부터 보자마자 쎅스였으면 애초에 이야기를 안만들었겠죠. 그런데 거부가
가능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그만큼 주인공이 욕망을 경계함에 있어 극도로 진지했고 그 진지함을 통해 작중에서 발현되는 주인공의 잘난점들이 있었을 거라는 거죠. 그런 상태가 되어서야 욕망을 받아들이더라도 욕망에게 휘둘리지 않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거구요. 조르바는 밑에 적어놨듯 별로 인간적이지 않은 거 같구... 인간이라면 주인공이거나 아니면 자살한
생각해보면 꽤 설득력 있는 주장같음. 기본적으로 부처와 이성과 책을 사랑하는 주인공은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욕망을 버리는 자이지만, 그것 때문에 욕망에 다가가는데 신중하기도 하고 마음으론 조르바가 옳지만 자기는 계속 조르바의 세계로 가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되니깐. 실제로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욕망의 과실을 따려는 태도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네
제가 책읽은지 너무 오래되서 주인공이 부처타령하는진 잊어먹었습니다만, 어쩌면 과부와 하룻밤을 지낸 것은 욕망을 거부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걸 수도 있겠습니다. 조르반 행동의 면면을 따져보면 어지간히 비인간적인 인간이었던 거 같구요... 폰으로 글쓰기가 힘들어 이만..
ㅋㅋ 나도 폰이라 쓰기가 힘들었는데 고생하셧음
아버지되는 사람은 혈연에 눈이 멀어 근시안적인 사람들을 뜻하는 거 아닐까요. 조르바는 욕망 그자체인 사람이라 욕망을 경계하거나 욕망에 끌려다니는 '인간'과는 다른 존재 같구요. 인간이라면 주인공이거나 자살한 그친구 둘중에 하나의 선택지가 남는 게 아닐까요. 정말로 진지하게 욕망을 대하지 않으면(주인공처럼) 하진 않더라도 욕망에 결국 끌려다니는 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닐지..
근데 아버지의 복수는 이게 정의에 합치하는 게 맞나 너무 당연스럽게 의문시되서 그런지 작품 내에서 제일 이상한 인물이긴 함. (지금 기준으로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사실 욕망을 대하는 자세란 기준으론 생각해본적 없긴한데 꽤 좋은 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
그 자살한 친구가 자살한 친구의 속성을 가지게 됐을 땐 집안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테고 아버지되는 양반은 자살한 친구와 정반대되는 케이스라서 저는 부모가 자식을 망친다는 은유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치맛바람이 지나쳐 우유부단한 자식들이 있다는 얘기처럼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나치게 자식에게 간섭해서 저런 친구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걸 얘기하고자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