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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청소를 했다.
평소 청소를 하지 않은 터라 방은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덕분에 꽤 많은 수고를 들여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기 위해 서랍 속 물건을 밖으로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바닥에 놓인 물건을 보니 옛날 앨범이 있었다.
앨범을 봤다.
잊힌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고 잠시 추억에 취해 있었다.
한껏 추억에 취해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가 겪었던 추억들은 이보다 많을 텐데 사진으로 남지 못한 추억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것들은 더 이상 찾을 수도 없고 찾지도 않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리지만 무엇을 잃어버린 지도 못한 채로 살아간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언젠가 한 번씩은 기묘한 기분을 체험한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 이런 기묘한 기분을 느낀다.
'노르웨이의 숲'은 여름날 꾼 꿈처럼 기묘하다.
어느 순간 잠에 들었더니 꿈의 내용도 기억 못 한 채 갑자기 깨어난, 슬픈 꿈이란 것만을 기억한 채로 깨어난 꿈이다.
작품의 인물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방식은 이런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노르웨이 숲'의 인물들은 툭 나타나선 툭 사라진다.
주인공의 친구의 이야기는 갑자기 시작한다.
처음 읽을 때는 중간 페이지가 사라진 것인지 의심했을 정도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소설 속 인물들은 예고도 없이 나타나선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는다.
룸메이트는 어느 순간 작별인사도 하지 않은 채 사라지고
선배도 이야기가 더 이어질 듯 하더니 더 이상 서술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추억이 생기고 사라지는 방식이라는 듯이...
여주인공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첫 장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두 알려준다.
하지만 추억이 사라지는 방식처럼 갑자기 이야기가 끝난다.
이런 소설의 전달 방식이 '상실의 시대'란 소설의 또 다른 제목처럼 상실을 느끼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하루키를 처음 접했으며 독서란 취미를 갖게 해 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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