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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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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걸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고민하느니 걍 쓰는게 낫다 싶어서 씀

헤세의 문학 전반에서 모순성이 드러난다고 하는데 이건 제가 보기에 헤세 본인의 고도의 전략임

처음엔 공감시키고 위로시켜서 독자를 소설 속 세계에 머물게 만든 뒤,
나중에 다시 그 세계로 진입하려고 하면 '이게 이런 내용이었나..?' 싶게 만들어서 튕겨내는거지.

이를테면 데미안의 마지막 부분,
데미안과 합일을 이루고, 데미안의 어머니의 키스로 (데미안이 중간에서 매개해 전달해줬지만..)
싱클레어가 어떠한 합일을 이루는 부분.

대략 요약하면
싱클레어는
현실의 고통 -> 악의 인식 -> 악과의 대립 -> 악을 다시 인식, 통합됨 -> 편안함을 느끼고 안주
이런 식의 흐름을 따른 것 같은데, 저는 한 인식, 통합까지 '정말 좋은내용이야' 하고 위로되었고,
뒤에 데미안 어머니의 키스가 전해지는 부분은
'이게 대체 뭔 개소리야?' 하고 생각됐거든요?

근데 이거 찬찬히 하나 뜯어보면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운 순서'임.
겉에서부터 보면 아마
일반 사람과의 대립 -> 친구와의 대립 -> 정말 친한 친구 또는 형제와의 대립 -> 부모와의 대립 [제일 치명적인 정신적 고통이겠죠]

즉, 인생사가 고통스러운 사람일수록 데미안의 마지막의 마지막 부분까지 위로를 받고 나올 수 있음.

그런데 위로 받으면 우리가 소설 속에서 살아야 겠어요, 나와야 겠어요?


데미안의 모순적 독해: 사실 나를 괴롭히는 악과의 대립, 그리고 그 악과 통합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사실 그렇죠 뭐, 헤세 본인도 이런 입장이었다 하고 (영지주의 -> [악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 에 부정적인 입장]).

우리가 생각해보면 말이죠, 학창시절에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있었고, 뭐 부모가 나를 괴롭혔고. 이거 다 나쁜 짓거리 들이죠.

그런데 우리가 다시금 이것들을 떠올려보면, '그 사람들 다 사정이 있어서 그랬던거야' 하고 용서할 수 있어요.
근데 데미안의 모순적 독해, 헤세의 입장은 그게 아닌거죠.

'야이씨, 야, 그놈들 다 너 괴롭히던 놈들이야. 걔네를 용서한다고?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어??
용서하지 마라, [밟고] 위로 올라서라고.'

[이게 바로 아브락사스가 알을 깨고 나온다느니-
하는 바로 그건거지.]

이런 식으로 생각되네요. 네.



세줄요약:

1. 데미안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가장 의지하고 믿을만한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억이 깊은 사람일수록, 소설의 끝까지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2. 하지만 다시 읽으면 그것들을 도로 다 튕겨내게 한다. 당연하다. 왜 그 사람들을 용서해야겠어?

3. 만약 내가 한 말이 맞다면 이 미친 헤세는 도대체 얼마나 천재인것인가? 그는 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