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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이며, 언덕 위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성을 차지하기 위해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것과 같다." 「성채」의 한 구절이다. 모두가 목표를 품고 있으며, 모두가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제 나름의 투쟁을 한다. 단번에 성채를 정복하는 사람은 없다. 성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적들을 만나고 수많은 시련을 이겨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난관을 개척하기 위해 저마다의 기술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예술성을 발휘해 아름다움이라는 성을 정복하려 하고, 누군가는 수완을 발휘해 성채에 오를 비용을 남에게서 빨아들인다. 이렇게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 가운데, 지식인은 인생이라는 성채에 어떻게 올라야 할까? 「성채」는 그 해답을 제시한다.
주인공 앤드루는 의사이다. 「성채」는 앤드루가 광산촌에 부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임이었기 때문에 그는 의사로서의 비전을 실현할 생각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앤드루가 직접 마주한 현실은 너무도 열악한 환경과 착취 구조였다. 그 안에서도 앤드루는 나름대로 신념을 공유하는 동료들을 모아 개선을 체험하기도 하고, 진심 어린 노력으로 몇몇의 목숨을 살리는 기적을 일으켰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상층부의 알력 다툼으로 일이 어그러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앤드루는 이룬 것에 비해 잃기만 하다가 동기 의사들에 비해 뒤처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동안 신념이 베푼 손해에 지친 앤드루는 목적을 의사로서의 보람이 아니라 돈으로 바꾼다.
처음에는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신념을 버리고 자신이 비판하던 사람을 따라 하니 앤드루에게도 어마어마한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만적인 자신의 모습에 처음에는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것마저도 돈이 치료해 줬다. 현실에 안주하니 새로 배우는 것은 없었지만,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앤드루에게는 어느새 발전조차 필요 없어졌다. 하지만 자신을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해주던 크리스틴의 사랑을 잃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크리스틴은 부자 앤드루가 아닌 혈기왕성한 의사 앤드루에게 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의사로서 정성을 잃어가다가 앤드루는 수술 중 인명 사고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만다. 거대한 죄악감이 밀려오고서야 앤드루는 자신을 돌아본다. 전과는 반대로 벌은 것은 많았지만 그중에 진정한 행복은 없었다. 앤드루는 그동안의 모습을 반성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비록 이미 잃은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그간의 부정에 대한 응보였는지 거기서 더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아무튼 고난 속에서 앤드루가 키웠던 가치관이 받아들여져 마침내 앤드루는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상이 「성채」의 줄거리다.
사람들의 목표는 형태가 제각각이다. 하지만 형태가 제각각이어도 본질은 똑같다. 사람들은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 물론 행복의 정의도 사람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제각각 달라진다. 그런 수많은 행복들 가운데 최상의 행복이 무엇일까? 현실에 치여본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질적 행복이 곧 최상의 행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가진 돈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마련이다. 부자들에게만 허용된 행복은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가난한 자에게만 허용된 행복은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그런데 앤드루가 직접 행복이라는 성채를 목표로 등반하며 깨달은 것은 달랐다. 앤드루의 행동반경을 행복을 측정할 단위로 삼는다면, 앤드루는 돈을 벌면서 더 행복해진 것이 맞다. 하지만 앤드루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으며,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앤드루는 순진한 환자들을 속이며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환자들을 손해에 노출시키며 자신의 행복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결국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하며, 사람은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산다. 이 원칙에서 벗어난 이상 앤드루의 행복은 가짜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앤드루는 돈에 홀려 환자를 죽인 꼴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앤드루는 돈이 자신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행복이라는 것은 설령 사람들이 뭐라고 조롱하건 세속적인 부와 상관없는 내면의 상태이며, 순전히 정신적인 것임을 앤드루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깨달았다."
앤드루가 새롭게 깨달은 '진정한 행복'이란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었다. 의사로서, 자신만의 지식과 기술을 발휘하여, 환자들을 치료해 얼굴에서 근심을 씻어내고, 근심이 씻겨나간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로부터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이 앤드루가 추구할 길이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부터 앤드루는 망설임이 없어진다. 언제고 삶이 앤드루에게서 더 많은 것을 빼앗아갈지도 모를 처지가 됐으며, 실제로 몇 가지를 빼앗기기도 했다. 하지만 앤드루는 사랑을 결여한 채 관행만 지키기 바쁜 세상이 잘못됐음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자신의 소신을 더 뚜렷이 밝힐 수 있었다. 「성채」는 그렇게 말한 소신이 앤드루를 실제로 구해주는 장면으로 끝난다. 나아가 앤드루의 소신은 앞으로도 앤드루가 옳은 일을 하는 한 몇 번이고 그를 구해주리라 전망할 수 있다.
앤드루의 삶을 감상한 뒤에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왔지만 내가 공부하는 목적은 오직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아니라 유니폼에 붙을 대학교 마크를 위해 공부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목표하던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 내 지식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얼마 없다. 그나마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며 보람을 느낀 적은 있었지만, 어쨌거나 내 직업이 교사가 아닌 한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공부했던 모든 시간들이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고뇌의 시간 동안 나를 살게 해 준 존재들이 있었다.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부모님의 사랑,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들의 우정이 나를 살게 했다. 내가 공부한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이들을 위해 해 평생토록 보은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앤드루의 삶을 보고 깨달았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생토록 빚을 갚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나의 목표는 단순히 내 가치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사람들이 있기에 사랑스러운 이 세상을 위해 보탬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새로 추구해야 마땅할 목표임을 깨달았다.
물론 나는 세상을 좀먹는 것들을 뒤엎기에는 너무도 미약한 존재이다. 목표는 거창하더라도 내가 실제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극히 작다. 하지만 나는 「성채」에서 앤드루가 하던 싸움들을 보았다. 앤드루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앤드루가 싸움에서 이겨서 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앤드루의 행동들은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성으로, 정직하게 사용하는 것. 이런 삶을 시도하는 것만으로 사례가 남을 것이다. 이 사례들이 퍼지면 사람들의 인식도 변할 것이다. 앤드루에게 감화 받은 사람들이 위기에 처한 앤드루를 매번 도와주었듯이, 내가 사랑에 감화하여 베푼 사랑은 또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랑의 교환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의가 있으리라 믿는다. "어쨌든 보람된 일이잖아요. 내겐 그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는 없어요."
그러므로 나는 작은 일부터 해나가야겠다. 약소하나마 내가 가진 지식들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또 내가 아는 얄팍한 지식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최상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배우는 자세를 길러야겠다. 앤드루가 곯아터진 의료 시스템을 비판하며 자기 자신도 계속 정체되지 않고 발전해야겠다고 채찍질을 했던 것을 본받아야겠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을 정직하게 실천하고, 더 나누기 위해 스스로를 발전시킨다면, 언젠가 내 발걸음도 미약함을 벗어나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베풀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희망을 품고 나는 삶에 새로운 태도로 임하려 한다.
물론 지금은 「성채」를 읽고 감정이 고양되어 잠깐 몽상을 하고 있는 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 책꽂이에 꽂힌 「성채」를 볼 때마다 오늘 했던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오르고 있는 산비탈이 생각날 것이며, 산꼭대기에서 만인의 행복이 아른거릴 것이다. 이것들을 기억하는 한, 지식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부단히 인생이라는 성채를 정복하기 위해 힘쓰리라 다짐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런 깨달음을 준 「성채」와 저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성채」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의사였던 작가 본인이 실제로 환자들을 접하며 느낀 한계들과 이를 극복할 방안을 소설을 통해 제시한 셈이다. 그리고 「성채」는 경종이 되어 영국 의료계를 혁신하는 데 기여했다고 전해진다. 「성채」 자신이 「성채」의 증거인 셈이다. 참 훌륭한 일화를 갖춘 훌륭한 작품이다. 의사가 주인공인 작품들 중에 의사의 일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한 작품도 처음이었고, 지식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정말 잘 제시해 주어서 읽는 내내 깨달음을 얻을 정도였다. 「성채」는 내 인생 소설의 반열에 들어왔다. 지식인, 특히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성채」를 읽고 사이언티스트이자 휴머니스트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민음사 건가요 범우사 건가요 - dc App
전 민음으로 읽었어요.
옛날에 <빙점> 처럼 기독교적 문제의식을 담은 책으로 많이 나온 책이었죠. <빙점>도 추천드립니다 - dc App
ㄴ 감사합니다. 지금 쌓여있는 책이 많아서 기회가 빨리 생기진 않을 것 같지만 기회가 되는대로 읽어보겠습니다.
천국의 열쇠가 인생소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