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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게 굉장히 특별한 책이라...
15년전부터 최소 10회독 이상한
인생서적중 하나입니다.
삶의 힘든일이 있을때마다
읽곤 했는데 이 책에대한
감상을 쓰기는 처음이네요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임을
앞서 말씀드립니다.
(스포일러가 될수있으니
책을 안읽으신 분들이라면 이점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두가지로 압축 될수 있다.
영원회귀와 키치.
소설속에서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 모두 각기다른
모습을 하고 소설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북극이 남극에 거의 닿을 정도로 근접 한다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고, 인간은 현기증 나는 진공 속에 놓여
추락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p.392)"
희극과 비극이라는 극단이
거의 닿으리만치 가까워져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가
사라진 인물들의 삶.
토마시는 필연이 아닌 그로테스크한
여섯우연의 소산으로 나타난
결과물이 테레자 라는걸 깨달은뒤
자신의 운명과 선택을 후회하지만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된다고
해도 그녀를 향한 자신의 연민이
그녀를 또다시 외면 할수 없게됨을
깨닫게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테레자는
토마시가 프라하와 취리히에서
명망있는 의사로서의 삶을 살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변덕과
도피하고픈 충동에 휩쓸려
15년전부터 최소 10회독 이상한
인생서적중 하나입니다.
삶의 힘든일이 있을때마다
읽곤 했는데 이 책에대한
감상을 쓰기는 처음이네요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임을
앞서 말씀드립니다.
(스포일러가 될수있으니
책을 안읽으신 분들이라면 이점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두가지로 압축 될수 있다.
영원회귀와 키치.
소설속에서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 모두 각기다른
모습을 하고 소설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북극이 남극에 거의 닿을 정도로 근접 한다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고, 인간은 현기증 나는 진공 속에 놓여
추락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p.392)"
희극과 비극이라는 극단이
거의 닿으리만치 가까워져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가
사라진 인물들의 삶.
토마시는 필연이 아닌 그로테스크한
여섯우연의 소산으로 나타난
결과물이 테레자 라는걸 깨달은뒤
자신의 운명과 선택을 후회하지만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된다고
해도 그녀를 향한 자신의 연민이
그녀를 또다시 외면 할수 없게됨을
깨닫게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테레자는
토마시가 프라하와 취리히에서
명망있는 의사로서의 삶을 살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변덕과
도피하고픈 충동에 휩쓸려
시골의 트럭기사로 늙어버린
그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된다.
토마시는 테레자의 꿈이야기를 듣고
심장마비가 올것같은 연민을
그녀에게 느끼고,
테레자는 훗날 늙고 약해진
토마시가 작은 토끼로 변하게 되버리는
꿈을 꾸며 그에게 똑같은 연민을 느낀다.
두 인물의 서로를 향한 가슴아픈 연민과 슬픔은
영원회귀라는 무대에서는
끝없이 반복되는 연극속 키치일뿐이다.
그 누구보다 키치를 혐오했던
그래서 자신의 삶까지 배반하며
키치를 피해 도망간
사비나는 미국에서의 삶을
살아가며 노을이 지는 건물의 창을
보면 애틋한 슬픔을 느낀다.
프란츠 역시 흔해빠진
키치에 끌려 키치만 가득한 가두행진을 위해
방문한 낯선 타국의 땅에서
어이없는 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맞게된다.
삶은 가벼운것이고 죽음이란 무거운 것일까.
희극은 가볍고 비극은 무거운 것일까.
토마시가 작은 토끼로 변하게 되버리는
꿈을 꾸며 그에게 똑같은 연민을 느낀다.
두 인물의 서로를 향한 가슴아픈 연민과 슬픔은
영원회귀라는 무대에서는
끝없이 반복되는 연극속 키치일뿐이다.
그 누구보다 키치를 혐오했던
그래서 자신의 삶까지 배반하며
키치를 피해 도망간
사비나는 미국에서의 삶을
살아가며 노을이 지는 건물의 창을
보면 애틋한 슬픔을 느낀다.
프란츠 역시 흔해빠진
키치에 끌려 키치만 가득한 가두행진을 위해
방문한 낯선 타국의 땅에서
어이없는 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맞게된다.
삶은 가벼운것이고 죽음이란 무거운 것일까.
희극은 가볍고 비극은 무거운 것일까.
영원회귀라는 무대가 있다면
이 모든것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또 다시 재연되는 공연일 것이고
이 모든것들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또 다시 재연되는 공연일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뻔하디 뻔한
연민, 동정, 슬픔, 배신, 사랑,
죽음과 삶역시 바람에 흩어져 날아갈
가벼운 키치일뿐이다.
소설의 제목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표현일것이라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이라는
채플린의 말처럼 말이다.
소설에서는 말한다
테레자의 사랑은 무거움을 표방하고
토마시의 연애관은 가벼움을 상징한다고.
양 극단의 차이가 그들을
끝없는 불행의 구렁텅이로만
몰아갔을까?
남극과 북극이 붙어버릴때
진공속에서 끝없는 추락의 유혹을
받는 사람들 처럼?
글쎄,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채 영원회귀 무대의
클라이막스만 관람했다면,
관객들의 시선에 비친
그들의 최후는 분명 불행했다고
할수있다.
토마시는 의사의 삶을 잃고
시골의 농장 고물 트럭기사로,
테레자는 열정적이던 사진기자의 삶을
포기한채 농장의 잡일을 하는
여자로 살며 추락사고로
처참하게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표현일것이라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이라는
채플린의 말처럼 말이다.
소설에서는 말한다
테레자의 사랑은 무거움을 표방하고
토마시의 연애관은 가벼움을 상징한다고.
양 극단의 차이가 그들을
끝없는 불행의 구렁텅이로만
몰아갔을까?
남극과 북극이 붙어버릴때
진공속에서 끝없는 추락의 유혹을
받는 사람들 처럼?
글쎄,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채 영원회귀 무대의
클라이막스만 관람했다면,
관객들의 시선에 비친
그들의 최후는 분명 불행했다고
할수있다.
토마시는 의사의 삶을 잃고
시골의 농장 고물 트럭기사로,
테레자는 열정적이던 사진기자의 삶을
포기한채 농장의 잡일을 하는
여자로 살며 추락사고로
처참하게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있다.
토마시도 테레자도
그리고 그들보다 조금 앞서
죽은 그들의 반려견 카레니ㄴ 역시도
그들의 삶에서 가장 큰 안정과 행복을
그 시절 누렸다는 사실을.
키치는 가벼운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것이라고 할수 있을까.
또한 그것이 무의미 한것이라 할수 있을까.
설령 그것이 같은 모습을 한채로
영원히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삶이 키치이고, 키치가 곧 삶이기 때문에
소설속에서 키치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사랑과 슬픔 그리고 행복 그 모든것을 포함하는
존재의 정체성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참을수 없이 가볍지만
그 어떤 무거움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채로.
과거, 참존가를 읽었을 때 느꼈던 것을 이 글을 읽으며 다시 느끼네요. 따봉추 - dc App
제가 생각하는 키치가 무거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것은 인간이며, 너무나도 가볍기에 스스로 키치를 만들고, 그러한 무거움에 괴로워하며 가벼워지길 바라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네요.
그런 의견으로 봐도 좋은 내용일수 있을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쫌만 더 간추리면 민음사책 뒷표지에 인쇄해서 책디자인해도 되겠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