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판 미시마 유키오 전집 (전42권) 중에서 3권 부록의 짧은 해설 번역

풍요의 바다 나머지 번역 기대하라는 의미에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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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바다」와 「안드레아스」


코바야시 쿄지


예전에 미시마 유키오의 애독서 중 한 권에 「안드레아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때마침 「풍요의 바다」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터라 이 작품의 뿌리가 전혀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는데  그 수수께끼가 한순간에 풀린 느낌이었다.


「안드레아스」는 호프만스탈의 유일한 로망이며, 독일 문학의 정통인 성장소설(빌둥스로만)의 계보를 잇고 있다.


 ※성장소설이란?


성장소설이란 미성숙한 소년이 여행을 떠나 사랑과 모험을 거듭하면서 완성된 인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소설을 일컫는다. 성장소설이라는 번역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지만(원문은 "교양소설"이지만 번역에서 빌둥스로만의 뜻을 살려 성장 소설로 번역. 아마도 일본은 빌둥스로만을 교양소설로 번역하는듯), 요컨대 소년의 성장을 따라가는 모험담이며, 이 패턴은 비단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수히 많다. 특히 한때의 소년 만화는 대부분 이 패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 소설에 필수적인 캐릭터가 객기 넘치는 소년 주인공, 그를 이끄는 스승, 친구, 괴물 같은 적, 사랑의 상대인 여성, 그리고 동경의 대상인 마돈나라고 하면 쉽게 실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이 성장 소설을 진지하게 다루려고 하면 굉장히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소년이 사랑과 모험 속에서 성숙해 가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 후 '완성된 인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까지가 아주 어려운 문제다.


애초에 한 인간에게 완성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 전에 인간이 완성이란 것이 가능한 것일까.


성장소설의 창시자인 괴테는 '마이스터'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면서 이를 클리어했다. 마이스터는 뛰어난 직능을 통해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도로 성숙한 시민을 일컫는 말로, 국민국가로서의 독일을 성립시키는 데 필수적인 새로운 인간이었다.


그러나 근대 독일이 성립되면 마이스터도 그다지 매력적인 인간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요컨대 '선량한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선량한 시민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너무도 허전하다. 다른 형태로 인간의 완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독일 문학의 적통을 자부하는 호프만스탈은 「안드레아스」에서 인간의 완성을 정면으로 다루려고 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실패로 끝났다. 소설은 중간에 폐기되었고 몇 가지 창작 노트만 남았다.


이 「안드레아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여져 마지막까지 완성된 성장 소설이 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다. 다만 「마의 산」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성장소설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의 산」은 마지막 인간적 완성에 죽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물론 죽음은 인간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본래 소년의 성장을 그리는 것으로 성립된 성장소설이 죽음을 통해 인간의 완성을 이루는 것은 너무도 시니컬하고 비극적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전후 일본에서 쓰여진 성장소설(만화 포함)의 대부분은 결국 주인공의 죽음이나 파멸로 인간적 완성을 대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성숙한 소년을 어떻게 하면 완성된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소설적 문제는 20세기 작가들에게 있어 풀리지 않는 난제였다.


참고로 「안드레아스론」은 나의 졸업 논문인데, 그 안에서 나는 호프만스탈의 창작 노트를 단서로 삼아 「안드레아스」가 완성되었다면 어떤 소설이 되었을지에 대해 추리해 보았다. 그 결과 토마스 만과 마찬가지로 죽음으로써 주인공을 완성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미시마 유키오는 이 문제를 놀랍도록 기발한 방법으로 해결해냈다.


그 작품이야말로 「풍요의 바다」에 다름 아니다. 미시마는 이 손꼽힐 만한 난제를 윤회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풀어버렸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완성이라는 서구 문명의 궁극적 명제에 대해 개인의 개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윤회를 들고 와서 풀어나가는 것은 거의 금기에 가깝다. 더 나아가 완성이 정적인 것에 비해 윤회는 영원한 운동이며, 문제를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20세기 문학에 있어서 지극히 어려운 난제를 풀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풍요의 바다」를 읽는 데 있어서 주인공의 성장에 대한 기대와 인간의 완성에 대한 순수한 희구가 행복한 형태로 일치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파탄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완성을 생각할 때 윤회가 고통스러운 기행이었는지, 아니면 하나의 필연이었는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풍요의 바다」가 쓰여진 순간이 일본 문학이 가장 서양 문학의 깊숙한 곳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