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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p에 작가가 생각하기에 좋다는 문장 나쁘다는 문장 예시가 나오는데

(중략) (료 라는 사람이 좀 아픈데 그걸 치료하는 주술을 위해 이 사람 집에 방문한 스님이 주술같은걸 물 떠놓고 하는 장면)
청정한 물이라도 되고 불결한 물이라도 된다. 따뜻한 물이나 차라도 괜찮은 것이다. 불결한 물이 아니었던 것은 [료에게는 우연한 행운이었다]. 잠시 응시하고 있는 동안에 료는 저도 모르게 승려가 들고 있는 물에 정신을 집중했다.
(모리 오가이, <한산습득>)

그런데 이 대괄호친 [료에게는 우연한 행운이었다] 라는 부분이 잘 이해가 안 갔단 말임. 대체 왜 우연한 행운일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작가가 료라는 사람을 은근히 비꼬는 듯한 문장같이 들림.

불교라는 게 내가 이해하기론, 뭐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선과 수련, 모순되는 말 따위를 통해 자아를 해체하고 미련을 해체해, 부처라는 무한소에 다다르는 시도를 하며 i) 해탈하거나 ii) 자신의 본질적인 자아 를 찾는 활동의 모임을 정리해놓은 종교라고 생각되는데.

불교라는게 이렇게 이해된다면, 사실 이미 스님이라는 사람이 이미 정답을 말함. 청정해도 좋고, 아님 말고. 수식어는 중요하지 않음. 물이라는 본질이 중요한거지. 사실 물 조차도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데 뭐 깨달음이란게 절차가 있는 것 같으니. 아무튼.

그런데 이 료라는 사람은, 사실 사람이 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로 '물이 좀 최대한 깨끗하면 좋겠다, 정성지내는 건데' 이렇게 생각할거 아님. 그렇게 바라고 있는데 마침 또 깨끗한 물이 나와서 기분이 좋은거지. 그러면 내면의 부처는 꾸짖을 수도 있는거지. '본질은 그게 아니다.'

뭔가 원효대사 해골물 얘기도 연상됨. 중요한 건 뭐, 일단 물을 마셔서 갈증을 해소했으니,그 물이 담긴 그릇이 사실 구정물이 담긴 해골이면,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투의~~ 생각되는데 정확히 그런지는 잘 모르겠고요

근데 그 뒤에 이즈미 쿄카의 문장 예시가 더 좋은데

(중략) 물을 뿌린 흔적도 꿈인 양 하얗게 말라서 엷은 아지랑이가 달콤한 벌, 향기로운 나비가 되어 춤추는 듯한데, 붕붕거리는 소리는 마치 등에 같아서, 하나같이 시끄럽기만 하다. (후략)
(이즈미 쿄카, <니혼바시>)

아니 돌아버린 것인가?
뭐 번역된거 없나 싶어서 찾아보는데 문호 스트레이독스 ㅇㅈㄹ만 졸라 쳐나오네 참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