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게 진정 제한없이 선한 것은 선의지뿐이다라고 하는데,
이때 칸트에게 선의지란 의무감이다. 의무감은 우리가 다른 선택지(자연적 경향성)가 있음에도 도덕을 선택하는, 즉 우리가 하기 싫은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그 의지가 도덕이다.
가령 신과 같은 존재가 행하는 것은 도덕이 아니다. 오직 인간만이 도덕을 행한다. 도덕이란 악덕이 무엇인지 알기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했음
근데 왜 이게 정언명령만 도덕인것임? 가언명령도 자연적 경향성에 반하여 의지를 통한 행위잖아.
가언명령이 악이 될 수 있지만 만일 정언명령과 충돌하지 않는 경우에는 가언명령 자체도 선이 될 수 있는거 아님?
그래서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의 공통점은 자연적 경향성에 대립한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정언명령은 오직 보편적인 법칙인 경우에 한 한 것이고
가언명령의 목적은 자연적 경향성일수도 있고 자기행복일수도 있음.
근데 가언명령이 정언명령과 충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논리적 모순도 안 일어남. 칸트가 제시한 논증으로 돈을 빌리기 위해 거짓 약속 한다면 약속이라는 제도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에 모순을 범한다는 것인데 즉 목적지향적 존재가 실현 될 수 없는 것인데 이것은 목적지향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목적 자체의 인간사이이의 대립에서는 목적 자체로 대우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임.
근데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예를들어 "로스쿨에 가기 위해 리트를 쳐야한다."와 같은 가언명령의 경우 모든 존재들이 목적지향적 존재로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잖아.
정언명령과 정언명령과 충돌하지 않는 가언명령의 차이점이라면 그 목적으로 말미암아 정언명령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기에 결과와 상관없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가언명령은 결과에 따라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차이점을 보이는 것까지 내가 찾아낸 바임.
아니 도덕의 확립근거가 의지의 산물인건가? 의지는 또 이성의 산물이고. 그렇다면 가언명령또한 의지인데 만일 그것이 정언명령과 대립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정언명령과 같이 의무인 것 아닌가?
요약: 내가보기엔 정언명령이 도덕적 가치를 가지는 이유가 가언명령에도 존재하는 것 같은데, 가언명령이 정언명령과 부딛히는 모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언명령과 똑같은 도덕적 위계를 가지는 것 아닌가? 정언명령은 선의지 자체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되는 것, 가언명령은 개인의 주관성
선의지가 뭐냐? 가언명령도 선의지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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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언명령의 목적을 행복으로 제한두고 봤을 때 행복 그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근데 그것이 도덕적 가치는 가지지 않지만 마땅히 추구되어져야 하는 것이라 봐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목적지향적 존재의 행복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 한에서는 선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은 정언명령에 따르는 선의지 뿐이다. - dc App
이렇게 밖에 이해를 못하겠다.. 방금 내린 나의 질문에 대한 답임 - dc App
결국 가언명령이 정언명령의 존엄성의 근거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언명령의 존엄성은 의지의 존엄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언 명령 그자체가 존엄한가? - dc App
의지 자체는 존엄하지 않는가? 행복을 위한 의지는 존엄하지 않는가? 오직 의지만을 위한 의지만이 존엄한 것인가? - dc App
경향성중에 행복이 있다보 볼 수도 있는 것인가? - dc App
난 칸트에 대해서 아는게별로없지만 확실히 x를 이루기위해서는 y를 해야한다. 는 가언명령이 있을때 x자리에 '남을 목적으로 대우하기위해서' , '선의지를 따르기위해서' 라는 말이 들어가면 이 가언명령이 대체 정언명령과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알기힘들지 내가 이해하기론 니 말도 이거랑 비슷한 말인거같은데
근데 본인 경험에 의하면 철학자들의 주장에 너도 알고 나도 알수있는 명백한 헛점이 보일때는 철학자가 압축적으로 이야기한걸 내가 잘못이해했구나 하고 관련된 다른 책을 계속 읽어보던지 해서 넘어가는게 편함(자비의 원칙 비스무리한거지) 아니면 전공자들한테 물어보던가 서강올빼미 이런데도 있고
정언명령은 도덕의 존엄성 그 자체, 즉 자기목적적이라 가언명령과 다름. 근데 내가 궁금한건 정언명령의 존엄한 근거가 가언명령에도 존재하는 것 같아서 - dc App
그리고 고등학교시절 배운 지식에 의하면 칸트가 행복한 사람은 도덕을 실천하기쉬우니까 행복도 수단적인 가치가 있다 이렇게 말한걸로 압니다만
철학과라 교수님한테 물어보긴할거 - dc App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의 공통점은 자연적 경향성에 대립한다는 것이고 <~ 아님 정언명령=자율 & 가언명령=타율인데, 윤리형이상학 정초, ‘윤리성의 모든 사이비 원리들의 원천으로서의 의지의 타율’ 절을 참고하면 좋을 듯
가언명령은 결국 타율이라는거지? 반면 정언명령은 자율로서만 가능한 것이고. 근데 가언명령에서 자연적 경향성의 목적을 위해 또다른 자연적 경향성과 대립하는 경우도 있잖아. 예를들어 성공하기 위해 게으름이라는 자연적 경향성에 대립하니깐. 근데 도덕의 핵심은 오직 자율일때만 가능하다는거네 - dc App
읽어볼게 정초 - dc App
너의 예시라면 자연적 경향성은 게으름 자체가 아니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게으르면 안된다는 자연의 인과적인 법칙일 것 같음.
ㅇㅎ 근데 칸트는 인간은 목적지향적인 존재여서 자연적 경향성 또한 따를 수 밖에 없는 존재 아님? 그러면 정언명령과 충돌하지 않는 가언명령의 경우는 도덕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거임? - dc App
도덕적 명령은 정언명령이어야만 하고 가언명령은 실용적이거나 기술적일 수는 있어도 도덕적 명령은 아니라고 칸트는 주장할 거임
철학과맞음? 나같으면 f주는 글인데
f받아야지 그럼 - dc App
댓글보니 자꾸 자연적 경향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칸트에게 있어 도덕은 진리를 찾는 거나 마찬가지야. 만약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는 진술이 있을 때 "지구에서 보면 동쪽에서 뜨니까 진리 아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웃긴 놈이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이 보편적 진리인 것이고, 동쪽에서 뜬다는 건 지구에서 본 사람의 관점일 뿐이지. 마찬가지로 칸트에게 선이란 오직 그 자체로 선하며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하기 위해서 하는 행위만이 선한거야. '~하기 위해서 한 행위'는 애초에 선한 행위가 아닌데 어떻게 선하냐고. 마치 지평선 너머가 안 보이니 지구는 평평하다고 하는거나 마찬가지지.
철학글 안 썰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