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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거 이해안된다고 온갖 학문들을 죄다 한번씩 다 훑어먹어 보면서 뇌를 졸라때리니까 이제야 좀 이해되는 것 같아서 한 번 써봄

(아래 세줄 요약 있음)

* 필자는 그냥 철학 서적 몇몇권에 빠진 무친 합리주의자 행세하는 사람일 뿐이며
들뢰즈에 관련해서 읽은 책이라고는 무슨 빤딱빤딱 간지나서 사본 '들뢰즈 다양체' 라는 무슨 들뢰즈 잡문집과
(맞나? 서한집? 뭐 알게뭐람)
무슨 '사변적 실재론' 인지 하는 책을 적당히 미술서적 관련 도서관에서 (어디 평창동인가에 있는데 그 앞에 아마 무슨 제주면장인지 하는 밀면집 있음 ㅇㅇ) 본게 다임을 알림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 27p)
[ ]로 표시하는 것은 모두 책의 인용문
아예 (책의 페이지수)[책의 인용문]으로 나타내겠음.

(중략)(27p) [우리는 다양체라는 개념이 어떤 역할을 떠맡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대답은 이렇다. 다양체 개념은 오래된 철학 개념인 본질의 개념을 대체한다. 한 사물의 본질은 그것의 동일성, 즉 그것을 바로 그것일 수 있게 해주는 데 {필수적인 근본 특징들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또 그러한 본질은 여러 사물들에 의해 공유될 수도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걸 이해하려면 우리가 일단 다양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내 딴에 이해하기론 다양체란건 그냥 도형이다.
어떤 차원에 있는 그냥 아무 도형. 종이 위에 원도 다양체고, 공간 위에 있는 지구도 다양체다.

이걸 뭐 극한까지 끌고가서, 우리가 어떤, 뭐, 예를들면 의자를 보자. 의자라는 것의 본질을 우리가 분석한다고 해보자. 의자는
* 앉는 데에 쓴다
* 어떤 재료로 이루어졌다
* 사람의 무게를 버틴다
따위의 성질을 가져야 할거다. 의자는 이러한 성질등으로 이루어진 어떤 본질을 가진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나무 그루터기도 앉을 수 있는데 이것도 의자인가?"
그런데 우리는 이런걸 의자라고 하지는 않는데,
왜냐면 이걸 우리가 옮길수가 없으니까.
즉, 우리는 의자에 어떤 *옮길 수 있다
라는 성질을 가지기를 기대하는데, 이것도 사실 정확히 보자면 1. 고정형 의자 2. 비고정형 의자
따위로 나누어서 봐야 할 거고, 내가 처음에 의자의 성질이라고 제시한 것은 '옮길 수 있다' 라는 성질이 의자에 추가되어야 한다고 볼 경우 1. 비고정형 의자의 성질, 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내가 이렇게 '어떤 대상은 어떤 본질을 구성하기 위해 어떤 성질을 가지는가' 를 서로 주고받으며 따지면, 내가 따지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이었나, 그리고 그 대상의 본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성질이 필요한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수학에서 어떤 다양체를 이루는 기저 벡터나 텐서 따위등을 추론해내기 위해 주고받는 과정과 비슷하게 생각된다. (뭐 그럴것 같다 - 내가 연속체 역학에서 대강 봐 두기론.)

즉, 이 두 과정이 서로 대응된다는 것이다.

철학에서 어떤 것의 본질을 추적하기 위해 그 본질의 성질을 낱낱이 분석함
<=> 수학에서 어떤 다양체를 구성해내기 위해 그 기저를 이루고 그 기저를 위해 필요한 공리들을 분석함

그리고 이 성질이 왜 사물에 따라 공유되냐고?
당연하지. 어떤 기저 벡터 (1,0) 을 가지는 도형이 좌표평면 위에 단 하나만 있나? 셀 수 없이 많다.
마찬가지로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 의 본질을 구성하는 성질이라고 추측한 {앉는 데에 쓴다, 어떤 재료로 이루어진다, 사람의 무게를 버틴다, ...} 의 성질중 몇 가지를 당연히 가지는 물체들이 있다.
이를테면 체중계는 당연히 사람의 무게를 버틴다.

자 그런데 여기서 좀 신기한 얘기가 두가지 제시되는데,
우리가 어떤 물체의 본질을 이룬다고 분석한 성질이 시간에 종속된 것일 수 있다는거다.
(중략)(27p) [종들은 시간을 배제한 범주들을 표상하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시간적으로] 구성된 존재들이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원자라는 것의 본질을 따져보겠다고 그 성질을 추적한다고 하자.
데모크리토스나 양자역학이 발전하기 전에 원자라는 것은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 이라는 성질을 가졌다.
그런데 아니 이런? 원자에서 더 쪼개진다. 즉,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원자에서 더 쪼개진다. 이런 탐구의 과정은 시간에 종속적이다 (역사가 흐르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나서야 밝혀졌으니)

즉 원자의 본질을 이루는 성질이 {쪼개지지 않음} 에서
{사실 더 쪼개지며 이것은 근본적인 무엇이 아님} 으로 바뀐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배제한 범주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역사적으로, 시간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신기한 얘기는 이 다양체를 그러면 우리가 구성한 뒤에, 이것으로부터 대체 뭘 하겠냐는 말이다.
우리가 뭘 분석해낸 것은 그걸 써먹기 위함인데 (예를들면 우리가 의자의 본질을 이루는 성질을 알아냈으니, 이걸로 무엇은 의자가 아니고 의자가 맞고를 따질 수 있을거다.), 당장에 내가 의자의 본질을 이루는 성질이라고 따진것만 봐도
{앉을 수 있다,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 무게를 버틴다, 옮길 수 있다} 등으로 네 가지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따져낸 의자라는 다양체를 따지기 위해 4차원 공간위에 이것을 나타내야 할까?
-> 도대체 무슨소리야?? [왜 그러는 건데?]

(32p)
[그러나 가우스는 미적분 덕분에 평소의 방식으로 표면 자체 위의 무한소 점들에 초점을 맞추되 (즉, 전적으로 국소적인 정보를 가지고서 작업하되), 전체 좌표공간에의 준거 없이도 표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가우스는 좌표축들을 표면 자체에 자리 잡게 하는 방법 (즉, 표면을 '좌표화하는' 방법)을 개발해 냈으며, 일단 이렇게 점들이 수들로 번역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생략)]

["가우스는 하나의 표면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공간이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개진시켰다."]

(33p)
[가우스는 이 공간들을 상위차원 (N+1) 공간에의 준거 없이 연구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나는 우리가 이런 착각을 하곤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물체를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선 최소한 그 물체가 있는 것보다는 한 차원 이상에서 그 물체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뉴튼 역학적인 관점, 또는 데카르트 적인 관점.
즉, 틀을 먼저 맞추고 나서 -> 그러고 나서야 안심하고 분석
하는 그런 사고관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왜 그러는 걸까?
일단 분석하고 나서 -> 틀을 만들든지 말든지 하기
로는 왜 사고가 안 되는건지?

그렇기 때문에 리만 기하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물체등을 분석할 때에 시간축과 공간축이라는 것을 설정한다는 것을 무시하고, 아무데서나 일단 쿡 찝어서 거기서 좌표축을 만든다음 분석한다.
좌표축이 그냥 그 도형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지구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운데, 지구라는 것이 구이긴 하지만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때는 우리 주변을 대강 평면으로 생각해보아도 아무 상관이 없고, 뉴튼 역학적으로 공간축과 시간축이 분리되었다 생각해도 별 상관없다. 엄밀하게야 틀리겠지만 대강 맞는다.)

그렇게 따져보고 나니 시간과 공간이 독립된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공간이 휘니까 시간이 느리게 가거나 빠르게 가거나 영향을 받는다. 둘은 어떤 우주안에 있는 물체를 기술하는 데에, 그 기술함의 본질을 이루는 [독립된 <- (매우 중요하다. 기저는 서로 독립되어야 제대로 써먹으니까. 어떤 것의 본질을 이루는 성질을 따지는것도 당연히 그 성질끼리 독립되어야 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성질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앞의 예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옮길 수 있는 의자"의 본질을 이루는 성질로
{앉을 수 있다,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 무게를 버틴다, 옮길 수 있다...} 등을 제시했는데,

우리의 사고하는 방식은 내가 볼 때에 전적으로 1차원이고 (왜냐면 우리가 무슨 객체지향적으로 사고하지는 않으니까. 우리는 앞에서 뒤로 1차원적으로 사고한다. 1차원적으로 사고하는놈 - 이라고 하는 것은 욕이 아니라 당연한 소리인거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질을 정말 앞에서부터 그냥 [국소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면 된다.

이를테면 이런 반례를 제시한다.
"테니스공이 네가 말한 것들에 모두 해당하는데 이건 의자인가?"
개소리다. 그런데 왜 개소리일까?
* 테니스공 위에 앉아봐야 전혀 [편안하지 않다.]"
* 테니스공은 애초에 [앉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또 반박 "뭐 앉기 위해서 만들어야만 의자인가?"

그러면 나는 내가 추적하려던 본질을 다시 수정해야 한다.
"옮길 수 있는, 인간이 앉는다는 기능을 수행하리라 기대하고 의도적으로 만든 물체인, 의자"
등으로 이 짓거릴 끊임없이 이어나가며 본질과 성질을 추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즉, 들뢰즈는 전적으로 '이치에 닿는' 소릴 했다는 것인데, 미분다양체 쯤 아는 짬바가 되는 수학자들은 프랑스 철학을 하질 않고, 또 들뢰즈 같은걸 논할 학자들은 솔직히 다양체라는 것이 도대체 뭔질 모르니 앨런 소칼 사태같은 괴상한 일이 발생한다.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철학하는 행위와 수학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동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게 말이 어려운건지, 아니면 본인이 읽다가 막히는 사실을 위키백과라도 뒤져서 공부할 생각이 없는건지, 아니면 본인 학문만 진짜고 나머지는 다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냥 말귀를 못알아 먹는건지, 아니면 내가 처음부터 다 끝까지 틀린건지.
여러가지 것들 중 최소한 하나는 틀렸을거고 맞는 말이 뭔가는 있을건데 대체 뭐가 맞고 뭐가 틀릴까?

잘 모르겠고~~
아무튼 이 책을 읽으려면
적당한 연속체역학, 미분다양체론 책과
철학사에 대한 적절한 이해, 들뢰즈니 아니면 뭐 양자역학 같은거 좀 보든가 말든가, 나는 오만 잡다한 책 다읽음-
정도를 보시면 "음~ 맛있다, 프랑스 요리 공부하셨나 봐요?" 하고 읽을 수 있다는 말인데, 나는 최대한 쉽게 내가 이해한 대로 써봤는데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또 모르겠고~~


세줄요약
1. 데란다라는 사람이 지적해주기로,
내가 뭐 들뢰즈를 아는건 아니지만 들뢰즈의 주장은,
수학의 사고과정과 철학의 사고과정이 거의 동일하단 것.

2. 그런데 사람들은 서로의 학문을 알아볼 생각을 죽어도~~~ 안함. 왜?

3. 그래서 이런 재밌는 거는 나같이 "졸라 이상한거 없나?" 하는 사람만 맛있게 봄. ㄹㅇ 모르겟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