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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모태 신앙이라서,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라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영적 초월적 체험을 해서,

역사적으로 가장 정교하게 체계화되고 기능했던 종교라서, 학문적 논증을 거쳐서, 뭔가를 믿어야해서

신의 존재를 긍정해서, 다른 종교 씨발이라서, 믿는 게 이득이라서


등등 대충 떠올릴 수 있는 여러 대답들과 반론들이 존재하지만

체스터턴의 대답은 또 신선한 것이


이 세상을 해설하고 변혁하려는 또는 그러지 않으려는 여러 사상들의 맹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또 극적으로 채워주었던 것이 기독교다 라고 답하고 있음

영적으로는 물론, 정서적으로, 사상적으로 기독교를 실용한다고 할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요지를 명쾌하고 체계적인 논증이나 강렬한 아포리즘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역설적 상황과 명제들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맹점이 기독교적 가치로 채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함


실제로 저자는 스스로 이렇게 쓰고 있음


"나는 이 책을 일반적인 기독교 변증서로 만들 생각이 없다. 다른 어느 때에 좀 더 빤한 영역에서 기독교의 대적을 만나면 기쁠 것 같다.

여기서는 내가 어떻게 해서 영적인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러다보니 논증적 설득력은 별로 없는 편이고,

당대 사회 분위기를 당연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현대인의 시점에서 갸우뚱 할 부분도 많지만,

그가 제시하는 역설에는 묘한 매력이 가득해서 JRR 톨킨이 생각나기도 함



"우리의 삶이 동화처럼 아름다운 삶이 되려면,

동화의 모든 아름다움은 왕자가 두려움에 살짝 못미치는 경이감을 품고 있다는 것에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가 거인을 두려워하면 그것으로 그는 끝장이 난다. 또한 그가 거인을 보고 놀라지 않으면, 동화는 그것으로 끝난다.

모든 핵심은 그가 경이감을 품을 정도로 겸손한 동시에 도전할 정도로 대범하다는 사실에 달려있다."


"그는 신들을 저주하기 원하는 위대한 철학자인가, 아니면 그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평범한 성직자인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중략).. 우리는 두 개의 합성이나 타협을 원하지 않고 절정에 이른 그 두 가지를 모두 원한다는 것.

말하자면, 사랑과 분노가 모두 불타는 상태를 원한다는 뜻이다"



무신론적 현대인들의 시점에서 보면

구멍 숭숭 뚫린 보트 위에서 "껄껄 그래도 뜨긴 뜨는구먼. 옷은 여기다 두고 수영이나 합시다!"

하는 배불뚝 아저씨의 호쾌함만 많이 느껴지는 책이지만


"한 개인이 사상적 표류 끝에 재발견한 기독교적 가치들"

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굉장히 매력적인 책임


무엇보다도 역설의 거장이라는 말이 참 와닿는 책이었음


"사람이 우주에 비해 작다고 주장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아니, 사람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보다도 더 작지 않았던가?"


연전연승하던 칼 세이건 뜬금없이 1패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