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제2경비중대 제3소대 소총수인 박노익 하사는 제13초소에 야간 잠복근무 중, 별안간 땅을 흔드는 듯한 천둥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러나 천둥소리에 잠이 깬 박노익 하사는 눈을 뜨자 그것이 곧 천둥소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호 속에서 일어나 부슬비가 내리는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는 공룡처럼 거대한 산곡 사이로 무수한 섬광들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골짝들은 섬광만이 아니고 하늘을 쪼갤 듯한 굉음까지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흡사 대지 전체가 하늘로 꼰두서서 어딘가로 움직이는 듯한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박 하사는 자기 앞에 전개된 광경들을 잠시 꿈속에서처럼 벙벙히 바라보았다. 사실 이곳은 두 시간 전까지도 풀벌레 소리만이 낭랑하게 들려오던 곳이었다. 빗물에 불은 도랑물 소리만이 컴컴한 숲속을 도란도란 울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고요하던 대지가 지금은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늘을 뒤흔들고, 불을 토하며, 대지가 통째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이었다. 노익은 한동안 넋을 잃고 38선 일대를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그가 지금 근무 중인 장소는 바로 38선 최전방에 위치한 어느 OP의 전초 중의 하나였다. 이북과 이남과의 경계선 사이에는 숲으로 뒤덮인 작은 골짝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맞은편 골짝에서 섬광과 함께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렸다. 굉음이 너무 가깝고 우렁차서 그는 자기 귀가 고장난 것을 즉시 깨달았다. 마치 고막이 뻥 뚫려서 머릿속 깊숙히 틀어박힌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포탄은 그의 머리 위로 76고지를 넘어 하늘 높이 날아갔다. 그곳은 바로 그가 소속된 제2경비중대의 본부 막사가 위치한 곳이었다.
비는 굉음과 섬광 속에서도 여전히 시름시름 꾸준하게 내리고 있었다. 호 주위로 위장된 떡갈나무 잎들이 빗물을 머금고 계속 후득후득 흔들렸다. 문득 컴컴하던 노익의 시야가 괴괴한 달밤처럼 훤하게 밝아졌다. 호박색 신호탄과 연갈색 조명탄들이 컴컴한 골짝 위로 너댓 개나 둥실 떠올랐다. 노익은 이제 자기 턱 밑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거대하고 육중한 검은 물체들이 입으로 불을 토하며 우릉우릉 숲속을 질주했다. 그것들은 숲과 소목들을 까뭉개며 등 뒤로 진흙덩이를 공 던지듯 휙휙 내던졌다. 흰 꼬리를 뒤로 기다랗게 드리운 채 수십 개의 신호탄들이 가로 세로 하늘을 마구 날았다. 크고 작은 종류의 각종 포탄들이 메뚜기떼처럼 무수하게 남쪽으로 치달렸다. 노익은 그러나 자기 턱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도 잘 알 수가 없었다. 너무 급작스레 당한 일이어서 그는 이것이 꿈처럼도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 아니고 예고 없이 시작된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기까지에는 노익에게 약 십 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박 하사는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호 벽에 걸린 전화기를 떼어 들었다. 호 속은 이미 연이은 포성으로 젖은 흙덩이들이 뭉텅뭉텅 흘러내렸다. 그는 송화기를 입으로 가져간 뒤 곧 큰 소리로 중대 본부를 호출했다. 그러나 본부는 그의 호출에 응답은커녕 잡음 하나도 보내 주지 않았다. 아니 분명 응답이 있었는데 그가 그것을 못 듣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연이은 포성으로 청각이 이미 반 이상이나 마비되어 있었다. 비나 바람, 물소리 따위들은 그의 귀에 아예 들려오지도 않고 있었다.
박 하사는 이윽고 송화기를 내던진 뒤 다시 호 밖으로 골짝 밑을 내려다보았다. 골짝은 그러나 섬광을 번쩍이며 아직도 괴물처럼 우릉우릉 울부짖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밑의 골짝만이 아니고 섬광은 아득한 좌우 골짝에도 번개처럼 번쩍였다. 따라서 포성은 38선 전역에서 마치 파도처럼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큰 포성들 사이로 작은 소화기들의 콩 튀는 듯한 총성도 들을 수 있었다. 간혹 포성과 총성 사이로 엔진이나 모터들의 야단스런 소음도 들려왔다. 그러나 숲과 어둠에 가리워서 움직이는 물체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숲 속에서 번쩍이는 퍼뜩퍼뜩하는 섬광들뿐이었다. 섬광과 신호탄과 붉은 점들만이 하늘과 땅에서 불티처럼 번쩍일 뿐이었다.
노익은 드디어 자기가 지금 적중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6.25를 졸업하는 졸업 논문과 같은 작품"
한국전쟁을 다룬 수많은 소설 중에서도 원탑인,
홍성원의 <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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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라고
재밌게 잘 썼네. 내일 읽어봐야겠다. ㄱㅅ
와 이북이라도 있어서 다행 ㄷㄷ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