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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을화>라는 책을 완독했다.
무려 우리나라 최초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김동리 작가의 책인데
<을화>말고도 다른 단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모두 무당(토속신앙)에 관한 이야기다.
그 중 <을화>는 가장 긴 이야기이며
엄마가 무당이고 아들이 기독교인이면서
극적으로 대립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을화를 보면서 영화 <곡성>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곡성>과 <랑종>을
아우르는 나홍진 세계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도 이 두 작품을 매우 흥미있게
오랫동안 곱씹어봤다.
그리고 어떤 세계관이 정립됐다.
토속신앙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나홍진 작품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것은 나홍진이 만든 세계관일까
아니면 연구하고 조사해서 '발견'한 세계관일까?
나는 경험을 곁들어 생각한 결과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몇 십년 전의 소설인 <을화>에도
그 세계관은 작동하고 있었다.
(작가는 식민지 지배 속에
민족 문화 말살에
울분을 느껴
기독교 집안의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토속신앙을 보존하고자 이 책을 썼다.)
세계관은 후에 설명하겠다.
나는 <곡성> 이전에 이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접했다.
그것은 자기계발서들에 있었고
특히 '끌어당김의 법칙'이라
불리는 동네북같은
어떤 사이비 유사과학 같은 얘기에도 있었다.
기도하면 이뤄진다?
그것은 핵심을 한참 벗어난 선전용 문구에 불과하다.
핵심은 이것이다.
'생각은 물질화에 필요한 에너지가 된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운명이 된다'라는
휴게소 화장실에서 자주보는 문구가 있다.
이것도 생각이 물질화에 필요한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생각이든 물질화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물질화는 '돈'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당장하는 생각이 말이 되기 전에도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 핵심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쉽게 접할 일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길게 들을 가치도 못느끼며
핵심을 전파하려 애쓰는
선전용 문구는 조롱거리나 된다.
대부분 자동 조정 장치처럼
어렸을 때부터 보고 체화된(그리고 제한된)
생각들에 행동을 맡긴 채 살아간다.
(나도 그렇다. 매순간 모든 걸
의식하면 미친놈이 된다.)
나 역시 저 핵심을 접하고
그렇게 믿고 알고 있지만
얼만큼 받아들이냐는 다른 영역같다.
다시 얘기하지만 논리를 벗어난 얘기기 때문이다.
더 길게 얘기해봤자
사이비 냄새만 풀풀 풍길 뿐이다.
내가 이해한 곡성 얘기는 좀 들어줄만하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고 싶은데
내가 이해했다고 해서 그것을 전부
알고 있다는 식의 거만한 태도로 보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누구나 스마트폰이 뭔지 어떻게 쓰는건지 이해하지만
대부분 부품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이 것을 그저 알았고 삶에 허용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사람에 대해
잘 몰라서일 뿐만은 아니다. 그냥 내 삶에
받아들이기 싫어서일 수도 있다.)
이해했다는 표현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그렇게 작동하는 것은 알지만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나도 당연히 모른다.
그것은 누군가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영역일 것이다.
<곡성>-<랑종>-<을화>를 아우르는 세계관
굵고 큰 글씨는 내가 그렇게 명칭하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원래 사용하던 의미들과 다를 수 있다.
에너지
영화 <랑종> 첫부분을 보면
모든 것에는 '령'이 존재한다고 한다.
'령' '영혼' '기' '귀신'라고도 하고 '신'이라 부를 수도 있다.
나는 이 모든 걸 '에너지'라고 통칭하고 싶다.
(특정 단어는 선입견을 갖게한다.
'에너지'는 뭔가 중화적인 느낌이랄까..
나는 무교다.)
그러니까 산,물,벌레,사람, 돌멩이 등 모든 것에는
'에너지'가 있다고 한다.
가시세계 / 비가시세계
이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시세계, 비가시세계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 눈에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게 '물질'이다.
즉 가시 세계 = 물질세계다.
따라서 비가시세계 = '물질화 되어' 있지 않다.
두 세계는 겹쳐져있다.
예를 들어
'흉가에 귀신이 산다.' 라는 말을 보자.
공간은 같지만
흉가는 물질 세계에 있고
귀신은 비물질세계에 있지 않은가
겹쳐 있다는 것을
흉가 안을 떠도는 귀신으로 상상해도 좋지만
흉가 그 자체에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모여있다.
비가시세계에 '에너지'가 존재한다.
선한 에너지 / 악한 에너지
곡성과 랑종 그리고 을화에도
여러 악행이 나온다.
그리고 게임으로 치면
악행에도 레벨이 존재한다.
살생,폭식,폭언,폭행,폭음,무분별한 성.관계
가족을 죽이거나, 타인을 살해한다.
눈여겨볼점은 이 악행들이 점진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욕설이 폭행이되고 폭행이 살인이 되는 식.
또한 악행들을 보면 '악'의 기준이 보인다.
물질 세계의 모든 것들의
유기적 관계를 끊는 모든 행위
그러니까 그 정도의 차이를 떠나
이 행위들이 '악'에 해당한다.
그럼 모기도 잡으면 안되나?
이 세계관에 따르면
악행은 선행에 의해 중화된다.
랑종에서 가족의 업보가
무당이 된 딸에 의해
(무당이 된 것 자체가 선행은 아니다.
무당(종교인)이 됨으로써 업보가 쌓일만한
행위들을 상대적으로 안하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막는 조언(선행)
들을 하게 되기때문이다.)
(랑종에는 개고기를 팔면서 기독교인인 사람도 나온다.)
잠시 멈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조금 천천히 얘기해보겠다.
악이 물질 세계의 모든 연결감을 끊는
행위라면 선은 그 반대가 되겠다.
(남을 돕거나, 포용하는 것,
같이 살기 위한 모든 것의 연결감을 위한 모든 행위)
그리고 선행 역시 레벨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악한 에너지(귀신,령,신,영혼), 선한 에너지(귀신,령,신,영혼)도
레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곡성>에서 일본인은 흑화하기 전에 무명에게 졌다.
<을화>에서는 무당이 예수와 싸우려한다.
통로
악행,선행은 물질세계에서 이뤄진다.
악한 에너지와 선한 에너지는 비물질세계에 있다.
이 에너지가 비물질세계에서
물질세계로 통로를 통해 넘어 올 수 있다.
선행과 악행으로 인해서다.
악행으로 인해 악한 에너지가 모이게 된다.
이유는 에너지의 '목적'에 있다.
비물질세계에 사는 에너지는
물질세계에 힘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물질 세계에 힘을 행사하는 것 만큼
존재할 수 있다.
선과 악을 의인화 시켜보자
선과 악은 베트맨과 조커처럼
서로를 없애려 함으로써 존재한다.
서로를 없애려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선한/악한 에너지(령,귀신,영혼,신)는
존재하기 위해 열심히 서로의 역할대로 활동한다.
(악행으로 선을 없애거나, 선행으로 악을 없애거나)
행위의 레벨에 맞는 레벨의 에너지가
물질세계에 힘을 행사한다.
욕설, 이간질, 저주, 병, 빙의처럼
물질세계에서 힘을 행사하는 것도 레벨이 있다.
악한 행위와 선한 행위가 비물질 세계와 물질 세계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랑종에서는 잡귀부터 억울하게 죽은 동물 악령,
악신까지 악한 에너지의 레벨을 보여준다.
그 통로의 크기만큼 물질세계에 행사하는 힘의
크기도 달라지며 악행의 레벨도 달라진다.
곡성, 랑종, 을화에서는
극 후반에 더 큰 신(에너지)을 부르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는 극단적인 악한 행위들로 이뤄져있다.
살생을 해서 피를 뿌리거나 흡사 악귀같은 모습을
하고 신을 부른다. 급격하게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더 큰 악신을 불러 위장해 호통쳐
레벨이 낮은 악귀가 놀라 물러갈 수도 있다.
무당은 선한 의도로 이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레벨은 낮은 행위는 레벨이 큰 에너지를 불러 올 수 없다.
랑종에서는
레벨이 낮은 악한 에너지들이
통로를 만들어줄 사람을 찾아
점차 악행들을 스노우볼처럼 굴려
자신들의 상관을 물질세계로 모신다.
랑종에서는 가문의 업보와 개인의 악행들로 인해
점차 악한 에너지로 점차 더 큰 통로 더 큰 악행을 저지르며
차츰 상위레벨의 악신이 올 준비를 한다.
레벨이 높은 악한 행위는 개인에서 가문, 마을로도 영향을 끼친다.
그만큼 큰 통로를 통해 거대한 악한 에너지가 물질세계로 넘어오기 때문이다.
레벨이 높은 악한 에너지는 일개 개인이 아니라 가문, 마을에도 저주를 걸 수 있다.
힘
곡성에서는 마을에 여러 사람들의 여러 악행들이 나온다.
탄 고기를 먹는 것은 일상적인 장면일 수도 있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레벨 낮은 악행을 보여주는 것에 해당한다.
서서히 악한 에너지들이 모이게 되고
악한 에너지는 통로를 통해 물질세계에서 여러 힘을 행사하는데
이간질, 의심, 폭행, (유기적 연결감을 끊는 것)들도
악한 에너지가 물질세계에 행사하는 힘이지만
재밌게도 곡성에서는 벼락같은 것도 나온다.
벼락맞은 사람은 밀렵꾼이다. (살생)
그는 악한 에너지의 통로가 잔뜩 있는 사람이다.
벼락은 선한 에너지가 벌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벼락을 맞은 이후에 그의 욕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벼락을 맞고 엄청난 욕설을 퍼붓는다.
물질세계의 연결감을 끊는 것
여기서는 쉽게 사람간에 관계를 끊는 것
이것이 악한 에너지가 자신들을 물질세계에
힘을 행사하게 해준 이들에게 저주나 병을 내리는 이유다.
가문의 업보로 인해 악한 에너지는 힘을 행사해
가문의 사람을 병에 걸려 죽게 할 수 있고
그 자제들은 우울한 삶과 여러 악행들에
노출되게 된다.
무심함
을화가 무당이 되기전의 캐릭터 묘사를 보면 곡성의 무명과 비슷한 점이 있다.
쉽게 얘기하면 무던하다는 점인데
물욕도 없고, 어떤 욕망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없어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악행을 덜 저지른다.
또한 나를 드러내는 욕망이 없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많은 것들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선한행위)
을화와 무명에게는 선한 행위로 통로가 생겨
그 레벨에 걸맞는 선한 에너지(수호신)가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동진이 랑종에서 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을 봤는데 내가 볼때
무당인 '님'이 모시는 수호신은 자신의 레벨로는
못이길 대악신이 현신해 자신의 통로 중 하나를 담당하는
'님'이 잔인한 짓을 당하기 전에
잠든 상태로 죽게하는 힘을 행사했다고 봤다.
방패
위의 글들로 알 수 있듯이
종교 자체는 방패는 아니다.
종교의 교리 같은 것을
지키다 보면
개인이 방패가 되는 것이다.
교회를 가고 예수를 백날 믿어도
악한 행위를 하면 악한 에너지가
들러붙는다.
그리고 더큰 악한 행위를 부추기고
더 큰 통로는 스노우볼이 되어
더 큰 힘(저주 같은)에 노출된다.
끌어당김
끌어당김의 법칙은 결이 다르고
당연히 이 모든걸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핵심은 통한다.
생각은 물질화된다.
결국 생각은 특정 에너지를 끌어당기고
그 에너지에게 통로를 만들어주며
물질세계에 힘을 행사하게 한다.
실제로 생각이 물질화되는 것이다.
그 통로와 힘에는 크기와 레벨이 존재한다.
생각하면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생각하면 비물질 세계의 에너지들은 현실로 튀어나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
그니까 을화가 개쩌는 오컬트 배틀물이라고?
노밸 문학상 후보에 오른(X) -> 거론된 (O) - dc App
사이비 자계서 바이럴임? 아니면 망상장애 초기증상 같은데 삶의 고통, 스트레스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어. 늦기 전에 병원가서 전문가랑 상담해. 토속 신앙 베이스에 카르마 첨가하고 에너지 어쩌구.. 너무 정석테크다. 에너지는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우는 거야.
ㅋㅋㅋㅋ
많이 보셨나보네 이분
이 양반도 슬슬 맛탱이 가네
생각이 물질화되는게 아니라 생각도결국 물질의상호작용의 결과아닐가? - dc App
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