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교외의 주막에서」



  회갑 지낸 어느 날

  대구 교외의 어느 주막까지 흘러와 보니

  옆에 앉은 갈보 계집아이는

  꼭 내 소학교 적 동기만 같고,

  소학교가 내 인생에선 제일 좋았던 게 생각나고,

  장난감도 군입거리도 따로 없던 내 소학생 때

  가장 재미났던

  또래의 계집아이들과 서로 몸에

  간지럼 먹이고 놀던 게 불쑥 그리워

  "뭐 더 할 거 있니?" 하며

  그 갈보 계집아이와 낄낄낄낄 낄낄거리며

  한 식경을 겨드랑에 발바닥에 서로 간지럼 먹이며

  참 여러 십 년 만에 모처럼 한바탕 잘 웃고 놀다

  내 회갑 기념 시화전에서 번

  오천 원짜리도 한 장 쓰윽 끄내 주고

  며칠 뒤에 또 만나자고 했는데,

  또 와 보니

  그 애는 그새 벌써 보따리 싸

  어디론지 또 한 굽이 떠돌잇길을 떠나고 없고,

  딴 애하고

  시인이 똑같은 흉내를 두 번

  되풀이하는 것도 뭣하고 하여,

  이걸로 이것도 끝장인가 하니

  못내 섭섭타.



- 『떠돌이의 시』(1976)




-




이 시와 관련된 군대에서의 개인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후임 한 명이 이 시를 보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 시인이 '갈보'와 함께 '겨드랑에 발바닥에 서로 간지럼 먹이며' 놀았다는 건 아무리 봐도 성행위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저 엽기적인 발상이라고만 생각하고 반박을 못 했지만 이제는 반박의 전거를 댈 수 있다. 애초의 위의 시의 모티프가 되는 일화가 「문치헌 일기초」에 실려 있기도 하지만, 몇 해 뒤의 『서으로 가는 달처럼…』에도 이와 비슷한 간지럼 먹이기의 일화를 다룬 「시카고의 나의 친구 미스 티클」이라는 시가 나온다. 그는 말하고 있다. '내가 미국을 두달째 떠돌고 있던 1978년 1월의 어느 눈이 되게 내리는 날, 그네는 (…) 내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는 누가 먼저 소원했던지 그건 아스라하지만, 두 눈을 서로 빤히 마주보고 있자니 둘이 다 그걸 원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여서 후다닥딱 달려들어 둘이서 번갈아 가며 간지럼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 뒤에도 만날 때마다 그 짓을 주로 되풀이하고 지내게 되었던 겁니다. (…) 그 계집아이의 나이는 몇살이나 되었었냐고요?/ 그 아이의 나이는 그때 다섯살. 내 나이도 그때는 또 다섯살.'


회갑을 지낸 직후 벌이는 간지럼 먹이기의 놀이는 유년 시절의 순수를 되찾은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뒤에 낙차 크게 현실로 되돌아오는 씁쓸함의 감정 또한 이 작품의 중요한 묘미이다. '시인이 똑같은 흉내를 두 번/ 되풀이하는 것도 뭣하'다는 말은 김정희가 <불이선란도>를 그리고 나서 '한 번만 그릴 수 있고 두 번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이치를 떠올리게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위의 시는 개인적으로 『떠돌이의 시』에서 특히 좋아하는 작품 중의 하나다. 이런 작품과 이 작품에 준하는 작품이 여러 편 실려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서정주의 세계를 그 앞의 『질마재 신화』까지로 한정지어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못내 섭섭'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