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리스 드라마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삼체> 원작소설의 작가 류츠신. 만약 그가 조금 더 빨리 태어났거나, 조금 더 빨리 등단했다면 삼체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예융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문화대혁명 초반 마오쩌둥이 류사오치를 겨냥해 <사령부를 포격하라-나의 대자보>라는 글을 발표하던 날 예융례는 23살이었으니 당시 3살이던 류츠신보다 스무살이 더 많(았)습니다.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2년이 지난 1978년 여름, 예융례는 한 권의 공상과학 소설을 내놓습니다. 무려 중국 본토에서는 처음으로 출판된 SF 소설이었다고 하죠.
후일 덩샤오핑의 후원 아래 중국의 개혁개방에 앞장 섰던 후야오방이 사상해방의 기치를 들었던 것보다 몇 달 빨랐으니 더 대단해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80년대의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위한 사상해방과 사상 교육 강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는데, 언젠가 덩이 사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자산계급 자유화 반대 운동을 주도하자 예융례는 표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베이징대학 화학과 출신의 예융례는 자신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상과학 소설에서 손을 떼어버립니다.
이후 예융례는 아이들용 동화를 쓰고 마오쩌둥, 장칭, 천보다, 덩샤오핑 등의 전기 작가 쪽으로 커리어를 바꾸게 됩니다.
만약 류츠신과 예융례의 생일이 바뀌었다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융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문화대혁명 초반 마오쩌둥이 류사오치를 겨냥해 <사령부를 포격하라-나의 대자보>라는 글을 발표하던 날 예융례는 23살이었으니 당시 3살이던 류츠신보다 스무살이 더 많(았)습니다.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2년이 지난 1978년 여름, 예융례는 한 권의 공상과학 소설을 내놓습니다. 무려 중국 본토에서는 처음으로 출판된 SF 소설이었다고 하죠.
후일 덩샤오핑의 후원 아래 중국의 개혁개방에 앞장 섰던 후야오방이 사상해방의 기치를 들었던 것보다 몇 달 빨랐으니 더 대단해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80년대의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위한 사상해방과 사상 교육 강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는데, 언젠가 덩이 사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자산계급 자유화 반대 운동을 주도하자 예융례는 표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베이징대학 화학과 출신의 예융례는 자신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상과학 소설에서 손을 떼어버립니다.
이후 예융례는 아이들용 동화를 쓰고 마오쩌둥, 장칭, 천보다, 덩샤오핑 등의 전기 작가 쪽으로 커리어를 바꾸게 됩니다.
만약 류츠신과 예융례의 생일이 바뀌었다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극적이군요...
반당분자라고 낙인 찍혀 사람 취급 못받던 마오 시절에 비하면 나았다고야 하지만 그래도 비극적이었죠
사회구조때문에 문학활동이 억압된거 보면 안타까움 ㄹㅇ
국적을 떠나 이런거 보면 안타깝죠.
아이들 동화로 커리어를 바꿨다기 보다는 60년대부터 아동용 과학 잡지 작가였음 그리고 중공 당간지인 광명일보 고문자리 까지 해먹은 양반이 억압받은 양반인지는 모르겠네
그리고 커리어를 바꿨다기엔 이 양반이 쓴 보고문학은 픽션이라는 점만큼은 SF에서 바뀐게 없긴 함
마오 시절에는 SF 소설 보냈다가 출판사한테 거절당했으니까요. 광명일보 고문이라고 하면 엄청 예우 받은거 같지만 정확히는 광명일보에서 과학보급위원회에서 고문역을 맡은거라 이걸 해먹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이력은 아니죠. 그마저도 2015년의 일이었고요. 본인도 1983년 정신오염 제거 운동에서 중국청년보에서 12번 이상 나를 공격했다며 그 이후 SF에
서 벗어났다고 회고했는데, 구체적 수치를 언급할 정도로(굳이 따지면 이상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건 분명하죠. 1983년 11월 당시에도 본인이 다시는 SF를 쓰지 않겠다고 하기도 선언하기도 했는데, 시대적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그가 SF 대신 전기작가로 전향하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예융례의 보고문학이 픽션이라는건 동의하기 어렵네요.
예가 쓴 전기를 보면 정치적 성향 이전에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엉망진창임. 예를 들자면 회인당 사건 당시에 4인방중 가정 먼저 체포당한건 장춘챠오인데 이 양반이 쓴 전기에는 왕홍원이 가장 먼저 체포됐다고 하지 않나
나름 부주석까지 한 왕홍원이 저지른 부페가 '식품류를 예를 들면 시가 35개비, 술 초콜릿60박스, 채소절임 통조림 20개를 한번에 가져갔다' 라고 하지 않나 중국 본토에서도 전기 내용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지라 오히려 마오주의자들이 밈으로 쓰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