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폭포 옆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듣는 사람들은
그 넓이 7백 50미터, 그 높이 48미터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그 넓이 7백 50미터로, 그 높이 48미터로
한번 목청을 돋궈 통곡하고 있는 것을,
동시에 "아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아파서 아파서 못견디어서
비명을 올리고 있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헷점을 치며 엉터리로 좋아들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사실 그대로
넓이 7백 50미터의, 높이 48미터의
아마도 몇 억만 명은 좋이 넘는 사람들의
피의, 피의, 피의, 피의 합쳐진 폭류(爆流)인 것이다.
그나마 피의 그 붉은 빛마저
햇볕에 두루 증발당하고 만
너희들의 선인(先人)들의 빛 바랜 피인 것이다!
그나마
사람이었던 그 피 그대로도 못 지니고
온갖 땅위의 동물들의 피,
온갖 식물들의 수분과 잡탕되어서
더 아야! 야야야얏!
더 아이고! 아이고고고!
흘러 쏟아져 내리고 있는 그것인 것이다!
조용히 좀 생각해 보아라.
얼마 전까지 체온을 맞대고 살다가
숨 넘어간 그대들의 어머니, 아버지,
그대들의 애인의 피를!
그들의 피만은 안 증발되고
구름도 안 될 수도 있는가를,
구름되려 증발당할 때에
붉은 그 빛깔과도 이별해야 했던 것을!
아니라고 할 수가 누가 있는가?
아니거든 증거를 어디 한번 대어 봐라.
이 땅위에 살던 인류와 동식물의 그 많은 피들이
대기권을 벗어나 어느 하늘에 가 고일 수나 있는가를……
한용운 선생도 말씀하셨듯이,
이 나이아가라 폭포도
'돌뿌리를 울리며……' 흐르다가 쏟아져 내리는
우리들 사람들의 선인들의, 애인들의
피들도 합쳐 우는 폭류(爆流)인 것이다!
아야야야야야야얏 아파하는 외오침인 것이다!
-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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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후기 시의 어떤 작품들은, 그가 초기에서 중기에 걸쳐 확립했던 여러 이미지들을 새로운 형태로 확장시킨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위의 작품은 그가 『동천』에 실린 「내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이나 「무제」 같은 작품에서 즐겨 다루었던 피와 물의 매커니즘에 대해 다시금 다뤄 본 것에 해당한다. 서정주의 시에서 피는 이승의 붉은 빛과 이별하여 물이 되고, 이승과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물은 구름과 땅을 왔다갔다하며, 본질에 해당하는 피 주인의 마음은 구름과 땅에 걸친 물기의 세계와 물기의 개념도 없는 더 멀리 구름 너머의 하늘이라는 두 공간을 왔다갔다한다. 이러한 전제를 둔 상태에서 위의 작품은 물기의 거대한 총합으로서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노래하고 있다.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한용운의 이 구절을 두고 서정주는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담긴 '작은 시내'가 그에 닿는 '돌뿌리'를 울게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그 '작은 시내'가 터뜨리게 했던 누군가의 울음이 극히 거대한 형체로 커져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피가 물이 되어 하늘로 증발하고 다시 땅으로 내려오기도 한다는 이미지는 마치 그것이 세상을 노니는 것처럼 미화되어 보이기도 한다. 위의 시는 그런 긍정적 느낌과는 정반대되는 측면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시인의 피의 매커니즘에 대한 충실한 보충 설명이 되어 주고 있다.
첫번째 시 나이아가라 폭포는 원주민인 인디언들 몰아낸것을 얘기하는 거임? - dc App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아 그냥 시에서 선인들의 피 이야기가 계속 나오길래 말해봤습니다. 시 감상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dc App
꾸준히 연재 해주시는데 넘나 감사한것 늘 재밌게 보고있슴다! - dc App
좋게 봐줘서 고맙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