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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에 입문하기 위해 '개인적인 체험'을 다 읽었다.

오에를 알 게 된 건, 대학 1학년 일본어 수업 과제로 ppt를 만들면서부터였다. 내게 주어졌던 과제는 관심있는 일본인의 삶과 업적을 발표하는 거였다. 처음엔 다자이 오사무로 과제를 제출하려다 앞서 발표한 동기가 그의 업적을 이미 발표해버려서, 다른 일본 문인을 조사하기로 정했다. 그렇게 정한 작가가 오에 겐자부로였다.

그 때 자료를 조사하면서 오에가 프랑스어문학과 출신이어서 실존주의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는 얘기를 기억했는데, 확실히 소설을 읽어보니 실존주의적인 태도가 작중에 베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설 개인적인 체험은, 작가 본인이 지체아를 얻으면서 겪은 감상과 오에의 작품관이 잘 녹아 있었다. 소설 속 지체아를 얻은 미성숙한 아빠 버드는 젊은 시절의 꿈인 아프리카 여행으로 현실에서 달아나기만을 고대한다.
이게 한 편으로는 절망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상으로 보여서, 시대 상황만 70년대 일본인 실존주의 소설로 읽힌 것 같다.

버드는 소설의 끝까지 지인 히미코와의 불륜과 싸움, 자학 등, 온갖 자극으로 마주한 현실에서 도망치려고만 한다. 마침내 그가 이전에 포기하면서 유기했던 관계들을 다시 만나면서 현실을 살아가길 다짐한다.
버드가 이렇게 갑작스레 현실에 맞서 선택하기 시작한 이유는, 자신의 도피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포기나 도피라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실은 부조리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고, 인간은 부당한 현실에 맞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외에 다른 삶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에는 이 사실을 자신의 체험을 엮어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제목도 꽤 적절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소설에 등장한 주연, 조연들은 다들 서로의 사연, 즉, '개인적인 체험' 으로 고통 받는다. 거기에서 인물들은 각기 다른 결정을 내리고,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대표적으로,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히미코는 남편의 자살이라는 부조리한 사건 앞에서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긴 커녕, 이런저런 궤변들로 사건을 무마시키려고만 한다. 그러한 선택으로 히미코는 삶을 사는 대신, 삶을 온갖 관계와 유희들로 시간만 허비한다. 그렇게 히미코는 결국 아프리카 여행이라는 버드의 철지난 꿈을 실현하나, 그마저도 결국 현실 도피로 끝나고 만다. 버드가 자신의 꿈을 현실에 타협해 여행 가이드가 된 것과 대조적인 결말이다.

전반적으로 버드의 개심이 감동적이라고 느끼진 못했다. 오히려 소설은 선택하지 않는 삶의 피폐함과 절망을 묘사하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작가는 선택의 중요성을 오히려 강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편으로는 실존주의자 오에 겐자부로가 지체아의 탄생이라는 역경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밖의 이야기이지만, 소설 속 지체아의 모티브로 추정되는 오에의 아들 히카리가 잘 자라서 피아니스트까지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오에의 실존주의를 지향하는 태도가 대단한 결과를 낳았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인 체험'을 읽는 동안, 여러모로 다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실존주의의 핵심을 잘 짚고 넘어갈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

실존주의와 오에 씨는 이런 맛이구나...

다음에 읽는다면 만엔원년의 풋볼 읽어야지.

이거 근데 딴 장면들의 의미는 대략 예측이 가는데, 대체 병원에서 있던 노출증 여자씬은 다소 맥락을 모르겠음. 그거 빼곤 굿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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