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추 물들이는 햇볕에

  눈맞추어

  두었던 눈썹.


  고향 떠나 올 때

  가슴에 꾸리고 왔던 눈썹.


  열두 자루 비수 밑에

  숨기어져

  살던 눈썹.


  비수들 다 녹슬어

  시궁창에

  버리던 날,


  삼시 세끼 굶은 날에

  역력하던

  너의 눈썹.


  안심챦아

  먼 산 바위에

  박아 넣어 두었더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추석이라

  밝은 달아


  너 어느 골방에서

  한잠도 안 자고 앉았다가

  그 눈썹 꺼내 들고

  기왓장 넘어오는고.



- 『동천』(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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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좋게 느껴지는 이유의 하나는 서정주가 가장 즐겨 사용했던 상징의 하나인 눈썹의 이미지가 가장 적절하게 사용된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동천」에서 눈썹이 초승달에 비견되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차올라 보름달이 되어서 나타나고 있다는 차이는 있다. 「동천」이 그러한 것처럼 이 시도 당연히 사랑 노래일 것처럼 읽히기는 하지만 끝까지 은유로 일관되어 있어 그렇게 단정해서 말하기는 또 어렵다. 시의 분위기 때문에 '너'는 그 대상을 인물로 지목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판에 사실은 달을 가리키는 것처럼 중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눈썹'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인지 아니면 단순한 초승달을 비유한 것인지는 처음부터 의도된 중첩이기 때문에 시의 해석에 큰 차이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 '눈썹'은 화자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화자는 '고향 떠나 올 때' 그것을 마음에 품었다가 한동안 '열두 자루 비수 밑에' 숨기고 살았고, 그 비수들도 녹슬어 버린 뒤로는 '먼 산 바위에' 숨겨 놓고 살았다. 이것이 따뜻한 심성과 고된 세상살이의 관계를 가리킨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추석 때 기와지붕 너머로 뜨는 달을 보고 화자는 숨기고 살았던 '눈썹'의 감정을 별안간 마주치고 감흥을 느낀 것이다. 너무 극적이라는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균형 잡힌 구성과 절제된 말씨가 그것을 이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