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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3~4개씩 모아서

지금 한 200개 정도 있는거같은데

이거를 연재를 할까요 말까요

책얘기) (사사키 아타루, 이 나날의 돌림노래)
[55p]
회화가 탄생한 지 7만 5천년이라고 하는데, 문자는 5천년 밖에 안 됩니다. 역시 우리는 아직 문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트보드에 다음 문장을 쓴다.)

나는 새끼 고양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파충류 같다.

「살아있는 기쁨」이라는 내 소설에 나오는 한 문장입니다. 다들 이 문장을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언제나 파충류를 떠올린다'고 하거나, '파충류를 연상한다'고 고치라고 말합니다. 최근에 생각해봤는데 거꾸로 내가 '언제나 파충류를 떠올린다' 고 썼다면 '언제나 파충류 같다'고 고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다시 말해 독자는 이런 지적을 즐기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먼저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겠지요. 고칠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글이 쓰여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건 이대로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부분 진짜 그.. 천재적인 발상의 문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어떤 문장을 발화함을 어떤 세계의 분절한 순간순간을 그려내는 스케치라고 생각해보면, 예시한 위의 문장은 그런 사용을 뒤엎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새끼 고양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파충류 같다.
=> 나는 새끼 고양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있다.
그러고 있으면 나는 마음속에 그 고양이가 마치 파충류 같다는 심상이 떠오르곤 한다.
이 생각을 계속 하다보니, 나의 새끼고양이에 대한 심상은 파충류로 대체되었다.
이에 따라, 그것은 곧 파충류 같다(직유).

이 문장을 보고 의문을 품어, 독자가 이 문장이 의도하고자 했을 바를 추론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사고 과정, [연속되어 변해가는 시간에 따른 사고의 변화 과정]이 한 문장에 담겼다.

미술적인 예시를 들자면 뭐 그 피카소의, 사람 앞모습 옆모습 다 그려서 참 기묘하게 만든 그런거.
다만 이 예시는 공간에 대한 중첩됨이고, 이 문장은 시간의 변화에 따른 것의 중첩됨이다. 즉, 우리 사고관으로는, 절대로 한 문장에는 나타날 수 없는 어떤 과정이 한 문장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말이다.

아니 이게 뭐야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