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옛날이라고 달랐겠냐만은 요즘은 다양해진 배설 창구만큼이나 자계서와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로 개나소나 책을 쓴다. 가치 있는 삶을 살라고 포장은 존나 해놨지만 포장 뜯어보면 결국 물질과 돈으로 회귀 중인 자본주의적 물귀신들, 혹은 반대로 아에 물질과 돈을 논의에서 배재해놓고는 비틱질만 존나게 하는 풀소유 스님 아류작들, 성장하고 힐링하라고 지랄은 존나 하지만 심리적으로 유아 퇴행 하는데 머무는 허-접 뻐킹 자계서들이 넘쳐난다. 누가봐도 배불러터진 씹새들이 나 장애인이요 나 소수자요 정병 호소까지 하면서 연민해달라고 사회탓 개꼴깝떠는 에세이와 자기 월급 나누고 세금 더 뜯어가면 개지랄할 사회주의 호소인들이 자본주의탓하는 인문 서적은 덤이다. 물론 이해당사자들은 그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수익은 당연하게도 그 개인들에게만 돌아가며, 절세에도 여념이 없다. 당사자는 없고 호소인들만 그득그득한 대호소인들의 시대이다.
그래서 나는 퍽 실리적인 태도로 장인 정신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 책이 꽤 맘에 든다. 상황을 묘사하고 문제를 정의한 뒤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자계서의 전형다운 구성을 취하지만, 땅에 발을 딱 붙이고 서서 자기 발걸음으로 걸어 보아온 풍경들로부터 고찰하고 표현한 문장들이 현실과 이상 그 사이 세계를 정확하게 건드린다.
"일단 장인이 굶주린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 친구 로랑 보사비가 얘기한 것처럼, 자신의 기술로 생계를 꾸려야 할 장인에게 굶주림이란 실패다"
저자가 내세우는 바는 분명하다. '프로그래머들에게는 (또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배움과 숙련, 나눔과 가르침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도제식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장인정신이라는 공통의 비젼을 가져야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졌으니 이 길을 걷기로 했다면 그 긴 여정을 포기하지 마라. 우리가 소개하는 방법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장인 정신이란, 디지털이 보편화된 시대에서만 가능한 직업, 프로그래머들의 사고방식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10년도 전에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는 대규모 공장형 제조 공정과 수공예 정신, 디지털과 아날로그 경험을 결합하는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저자 역시 전통이라고 여겨지던 중세식 장인 정신과 도제 시스템이라는 쌀에서 겨를 솎아내 우리 시대의 장인 정신을 재정의하는 것으로 서문을 연다. 그래서인지 프로그래머의 자기 계발을 다루는 책이지만 상당히 스토아적이고, 스토아적이지만 금욕적이진 않다.
사실 이 책의 목차나 형식만 보면,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장의 방법론들을 답습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보기에는 좋지만 작동하지 않는 여러 접근법들의 문제를 드러내어 실제로 작동되는 부분들만을 모아 다시 정리한다. 그래서 우아한 모습에 더해, 실제로 작동도 하는 코드의 패턴들이 만들어진다. 과연 프로그래머다운 사고방식이다. 프로그래머들이 쓴 책 답게, 체계적으로 정리한 패턴들을 가능한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명시될 수 없는 묵시적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도 한다.
“탁월함의 추구는 스트라디바리의 공방처럼 조직의 장기 존속에 관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여기서 고품질 작업에 대한 경험은 마스터 자신의 암묵적인 지식 속에만 들어 있으며, 이것은 즉 그의 탁월성이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의 참뜻은, 장인이라면 모름지기 모든 도구의 사용법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딘 도구든 잘 벼려진 도구든 간에 장인은 그 쓰임새를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 장인은 탁월함을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배우는 행위를 체화한 존재이다. 도제는 그 장인을 길러내기 위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저자가 스트라디바리 공방의 예를 들며 지적했듯이, (익숙한 예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후임 양성에 실패했듯이) 시스템만으로는 그 능력이 쉽사리 습득되지도, 이어지지도 않는다. 도제 장인은 견습생에게 비명시적 가치들을 전수해야함에도 비명시적이라는 특징 탓에 그것을 전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한 개인의 정신과 문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구조 혹은 시스템 혹은 방법이 문제가 된다기보다는, 묵시적 가치를 습득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장인 정신이라는 하나의 대전제, 도제라는 시스템에 내재한 배움과 숙련, 나눔과 가르침의 과정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개인이라는 존재. 이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야말로 저자들이 바라는 목표이다.
“내키는 대로 돌무더기를 쌓는 사람들과 대성당을 짓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은 이 패턴을 실천했는지 여부다. 어떻게 대성당을 지을 수 있을까?”
“완전히 다르지만 여전히 유호한 해결법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만 일은 해결될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 사람들이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할 때 기량은 연마되는 것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Apprenticeship Patters>로, 도제라는 시스템의 장점과 효용을 패턴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하여, 독자 본인의 상황에 맞추어 느슨하게 적용하기를 권한다. 장인이 되기 위한 길을 걷는 견습생들을 위해 이 책이 그 길 자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며, 종착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 자체를 걷는 행위가 바로 그들이 제시하는 장인 정신의 참뜻일 것이다. 단지 그렇다고 호소하는 것은 정말로 아무 가치가 없다. 일단 코드가 실제로 작동해야만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프로그래머가 장인 정신을 추구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결국 장인은 이 세계에 진리와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가져와 보여줌으로써만 증명될 뿐이니까. 이제 호소인들은 그만 보고 싶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