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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고 읽지 못한 책이 산더미인데, 또 도서관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빌리고 말았다. 작품 수가 얼마 되지 않으니 빨리 다 읽어서 컬렉션을 다 채우고 싶다는 욕심인 걸까? 아무튼 이번에는 챈들러의 세 번째 소설 「하이 윈도」를 읽었다. 전작들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재미는 명불허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문체가 더 터프해진 느낌이었다. 말로의 독백은 늘 터프했지만, 이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다 유독 까칠하다. 까칠하다기보다는 히스테릭하다는 말이 어울릴까? 특히 머독 부인은 (챈들러가 아닌 다른 사람의 탐정 소설들을 포함해도) 지금까지 본 의뢰인들 중에 제일 까탈스러웠다. 그래서 말로의 말이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의뢰인에게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까?"라고 쏘아붙이는 탐정이라니, 희대의 캐릭터이다.


부패한 사회상을 꼬집는 면모도 여전했다. 「하이 윈도」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쉬운 일도 대가 없이는 하지 않는다. 운전기사에게 몇 마디 묻느라고 몇 달러를 썼던가? 부패 경찰은 이번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부자들을 위해 사건을 덮어야만 했던 슬픈 경찰의 이야기는 나온다. 그런데 대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대가가 있으면 무엇이든 한다는 얘기이다. 결국 올바른 사람이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든 일단 '저지르는 사람'에게 보상이 가는 사회 구조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흰 달빛은 차갑고 맑았다. 우리가 꿈꾸지만 찾을 수 없는 정의처럼 말이다."


'추리 소설'로만 따지면 지금까지 읽은 챈들러의 작품들 중 가장 훌륭했다. 이제 7권 중 3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간 읽은 소설들은 말로의 추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 말로가 직접 구르고 다니며 정보를 모으는 장면들이 더 중요했다. 이번 작품에서 말로는 별 곤경에 처하지 않는다. 대신 말로가 보는 것들 속에 독자로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복선이 있다. "그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 내 일에 도움이 됩니다. 나는 항상 마음이 열려 있죠." 재떨이, 치과, 가스라이팅... 이런 복선들이 맞춰져서 하나의 퍼즐이 완성됐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정말 훌륭했다. 챈들러의 작품이 추리 소설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사실 정밀한 추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편견을 멋지게 깬 작품이었다.


결국 챈들러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말로의 매력에 말려들기 위함일 것이다. 이번에도 말로는 약자를 위해 여러 의미로 기사를 자처한다. 머독 부인을 혐오하고 머독 부인에게 혐오 받으면서도 의뢰에 관한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지킨다. 떳떳하지 못한 수법을 쓰는 사람에게 보복하지는 않지만, 문제점을 면전에서 꼬집는 용기는 보여준다. "당신 패거리들의 문제점은, 아무것도 아닌 일을 수수께끼처럼 만든다는 겁니다. 빵 한 쪽을 깨물어 먹기 전에도 암호를 걸어야 하죠." 물론 말로가 생각하는 정의는 뚜렷하며, 말로의 삐딱한 행동들도 최종적으로는 정의를 위한 것들이다. 말로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우선이다. 비행을 감추려는 더러운 작자들의 의뢰로 일을 하기는 하지만, 그 더러운 세계에 온몸을 바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저는 당신 일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머독 부인. 그렇지만 당신을 위해서 제 목을 잘라서 당신 무릎 위에서 피를 흘려도 괜찮을 정도는 아닙니다."


말로는 경찰들에게 직접 자신의 정의관을 설명한다. "당신네들이 스스로의 영혼을 가지기 전까지는 내 영혼도 가질 수 없을 거요. 어떤 상황에서나 당신들이 언제나 진실을 구하고, 결과야 어찌 되든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라고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때가 올 때까지는, 나는 내 양심을 따르고 나의 의뢰인을 최선을 다해서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진실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내 의뢰인에게 해를 더 끼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는요." 어찌 보면 말로의 정의는 소극적이다. 결국 의뢰인의 바람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정의와는 어긋나며, 은폐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와 소신을 품고 작게나마 세상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말로가 인기 있는 이유는 썩은 세상의 냄새에 찌든 사람들이 말로를 보고 대리만족을 하기 때문이다. 실재할 수 없는 영웅은 굳이 소설로 만날 필요가 없다. 단지 사람들의 고뇌를 해결해 주고 약자를 보호해 줄 작은 기사가 필요하기에 우리는 필립 말로를 찾는다. 나는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말로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말로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면의 소신을 키워보련다.


「하이 윈도」에 관한 감상은 이만 줄인다. 이제 오랜만에 모바일로 체스나 한 판 두려고 한다. "나와 카파블랑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