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어쩌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인물이 내 머릿속에 박히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 샌가 벤야민의 저서를 찾아다니며 적절한 책을 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심지어 또 독일이다.) 거기에 더해 교보문고에서 거닐던 도중 발견한 5만 원짜리 발터 벤야민 평전이 눈에 들어와 바로 구입해버리고는 2주가 넘게 두꺼운 벽돌 책을 읽다니 순간적인 끌림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렇게 <발터 벤야민 평전>을 읽었다. 그리고 독서를 완료한 지금 앞으로 벤야민과의 만남은 계속 이어질 듯하다.(먼저 쿤데라 씨와의 면담부터 끝내야겠다.)
책 자체는 평전이라는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벤야민이라는 인물의 성장 과정과 더불어 그 당시의 시대상, 벤야민의 주변 인물들과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들, 서적, 예술 등등. 그리고 그런 상황들 속에서 탄생한 벤야민의 여러 저서들과 그 당시의 벤야민이 가진 철학 등을 다양한 사료들을 근거로 제시해준다. 철학 설명을 할 때 집중력을 요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책 자체의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벤야민이라는 인물은 그 시대의 지식인의 어쩌면 전형이라 할 수도 있겠다. 친구들과 관련 인물들로부터 천재라는 칭송과 신뢰를 받지만 정작 성공이 눈에 띄지 않는 소위 ‘살아서는 묻혀있다 죽어서야 빛을 보게 되는’ 그런 인물상말이다. 그의 친구인 브레히트나 아도르노는 당대에도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벤야민의 삶은 더 울적해 보인다.
벤야민의 철학을 전부 설명하기에는 힘들다. 책에 나온 저서만 해도 괴테, 보들레르, 카프카의 비평, 번역가의 태도에 대한 논문, 자신의 어린 시절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에세이, 각종 여행기, 유명한 철학서인 일방통행로, 예술에 대한 고민을 담은 논문 등 당대 최고의 문필가라는 별명에 맞게 너무나도 다양한 주제로 수많은 글을 써냈다.(그럼에도 비참한 인생이었으니 그의 재능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이 글들을 통합하는 하나의 벤야민의 사상이 있으나 본인의 역량 부족으로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는 힘들겠다.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벤야민의 주류에서 벗어난 변방의 물건들을 연구했다. 여기서 말하는 주류란 당시 사회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들을 말한다. 벤야민의 그 흐름에서 벗어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혹은 유행에 뒤떨어져 폐품 취급받는 다양한 분야의 것들을 중심으로 분석을 했고 이 시도로 탄생한(미완이라 탄생이라는 말은 어폐가 좀 있으려나) <파사주 작업>, 혹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이다.
그렇다고 벤야민이 무작정 주목받지 못하는 사물들을 옹호한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 수십 편의 논문들을 써내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는 등 변방의 물건들로 사회상을 분석하려는 일을 끊임없이 진행하였다. 아무 논거 없이 예술성을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바람직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전후 70년대부터 벤야민의 글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렌트와 아도르노 등 벤야민의 지인들은 당대의 모더니티를 분석한 그의 글들을 양지로 꺼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벤야민이 죽은 지 20~30년 후에야 벤야민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연구될 수 있었다. 우리가 아직도 20세기의 영향력 아래에 위치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앞으로 꾸준히 접해야 할 그런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