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영봉 '씨트랄테페틀'이 어느 날 하신 이야기」
나 '씨트랄테페틀'이란 이름은
그게 별들의 산이라는 뜻이라
언제나 밤이면 하늘의 별들이
수십만 개씩 내려와 함께 비쳐 주어서
세상의 일은 대강은 다 알아 말씀이거니와
이 멕시코의 목숨들을 두루 만드신 햇님이
맨처음 시험삼아 만들어본 한 쌍 남녀는
꼭 한국에 많은 그 까치 비스름해서
가슴패기와 배로부터 그 윗부분뿐이었고,
몸놀림이나 소리까지도 까치같이 생겼었네.
이것들이 새끼를 낳아볼 마음이 생기면
그 수컷이 그 혓바닥을 암컷의 입에다 넣고
쑤석쑤석거리면 되었지.
이때는 꽃은 아직 없었고,
꽃노릇을 대신하고 노는 것은
초록빛 도마뱀들이었었네.
그리고 타오르는 불빛의
제비들이 날아다녔네.
그러던 어느 날에
하늘의 구름 사이를 날아가던 큰 용 한 마리가
빛나는 검은 나비이자 돌이기도 한 것 하나를
가슴에 안고 내려오면서,
마침 무슨 일로 땅 위에 와서 있던
이쁜 여신 '치마르만'에게
활을 네 번을 내리쏘아댔는데,
그녀 머리를 향해 쏜 것은
그녀 머리기운을 못 이겨 비끼어 가고,
그다음 그녀 배를 향해 쏜 것은
또 그녀의 뱃기운을 못 이겨 비껴 가버리고,
세번째로 쏜 것은
그녀가 한 손으로 받아서 보기좋게 꺾었고,
네번째로 그녀 사타구니를 향해 쏜 것은
그녀 사타구니의 넘치는 힘 때문에
벌린 두 다리 사이로 빠져 나가뻐리자,
비로소 그제서야
그 용은 히벌럭이 웃으며
그녀에게 엉겨붙어 애기를 배게 해
그애가 생겨나자
그 이름을 '날으는 뱀'이라고 했었네.
왜 저 20세기 영국의 소설가
D. H. 로렌스가 쓴
이 이름의 장편소설도 있지 않는가?
다음은 그 날으는 뱀--즉 '케짜르코아틀'의 이야긴데,
그는 장성하자 이내 이곳 멕시코의 첫 황제가 되었고
또 하늘의 태양의 대제사장직도 겸하게 되었었지.
그런데 나보고 말하라면
그 케짜르코아틀이 한 일 가운데서도
가장 진한 일은
이 멕시코의 고 예쁜 처녀들을 갖다가
꽃이 햇빛을 그리워해서 피듯이
그 해가 그리워서 못 견디게 만들어낸 일일세.
그리하여 처녀들의 그 붉은 심장까지도
그 햇님에게 바치고 살게 한 점일세.
그래
멕시코시 근교의 테오티우아칸의
해의 피라밋의 제단에서는
그 해를 찬양하는
많은 처녀들의 가슴에서 도려낸
새빨간 날심장들이
단말마의 비명 속에 때때로 바쳐지지 않았나?
이거야말로 너무한다 싶어서
나도 이 광경만은 외면하고 지냈지만 말야.
그런데 그 뒤
꽤나 많은 세월이 지난 뒤의 어느 날 오후
문득 어떤 산변두리의 느티나무 밑을 보아하니,
거기,
장사가 안 되어서 나른히 누워 쉬고 있는
너더댓 명의 소장사들 틈에 가 끼어
그 케짜르코아틀이
나자빠져 있는 게 간신히 내 눈에 띄었네.
인제는 너무나 고단해서
내 다린지 남의 다린지조차
분간하기도 무척 힘이 드는구나,
그렇게 나직히 뇌까리고 있는 게
아스라히 바람결에 내 귀에 들렸네.
그러고 마지막으로 또 한번 그를 본 것은
어느 언덕빼기의 가시덤불 옆이었는데,
년석은--인제는 년석이라고 해도 되겠기에 말일세만
거기서 웬 빨간 수탉을 한 마리 가지고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더니 털을 뜯고 있더군.
그러구는 가시덤불을 뜯어 불을 지피고,
숨겨온 냄비에 그 닭을 담아서
지글지글 끓이고 있더군.
년석은 언젠가 가난한 농부의 딸한테
장가를 들어 새끼를 수두룩히 까고
먹을 것이 모자라 허리띠를 조르고 살다가
마지막엔 숫제 굶으며
저 먹을 걸 새끼들한테 노나 먹이고 지냈는데 말씀야.
너무나도 시장끼가 지독하게 되자
마침내 남의 장닭 한 마리를 훔쳐 가지고는
아귀 같은 여편네와 새끼들 몰래
혼자 숨어서 먹어보려고
이 외딴 언덕빼기의 가시덤불 옆을 찾아
아무도 몰래 숨어 들어온 것이었네.
그런데
버글 버글 버글 버글
그 닭국이 잘 끓어서
뚜껑을 열고 마악 한 숟갈을 맛보려 하자
어디서 뚜벅 뚜벅 뚜벅 발짝소리가 나더니,
잘생긴 웬 사내 나그네가 바로 옆에 나타나서
'그 닭고기 참 맛이 좋겠다.
나도 좀 같이 먹어 볼까?
나로 말하면
사실은 자네 하느님일세'
하시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까니
년석은 화를 발끈 내면서
'당신은 아마 서양 가톨릭의 그 하느님이겠지?
당신이 나한테 잘한 게 무엇이오?
자기한테 절 잘하는 사람들만 도와주고
내게는 지독한 굶주림만 안겨주고선 뭘 그래?
그래 너무나도 배고픈 나머지
남의 닭 한 마리 슬쩍해 가지고
혼자서 실컷 먹어 보자고
겨우 요렇게 와서 있는데
이 닭고기를 같이 노나 먹자고 덤비니
당신 얌체 거 대단하시구랴!' 하고
한바탕을 퍼부어대데.
그래 그 하느님이 그냥 가버리신 뒤에
년석은 또다시 그 닭국에 숟갈을 대려고 했는데,
또 하나의 나그네가 또 그 옆으로 왔네.
그는 창백하고 뺏뺏 마르기는 했지만
위풍이 당당하고 단호하게 생겼더군.
이분이 다짜고짜로
'그 닭고기를 나하고 같이
노나 먹겠니? 못 노나 먹겠니?
나는 너를 데리러 온
저승의 사자니
어디 네 마음대로 한번 해보아!'
말씀하신 걸 보면
이분이야말로 년석의 목숨을 거두러 온
염라대왕의 사자가 틀림없었는데,
년석도 그걸 알아차리고는
겨우 마지못해
그 닭국냄비를 송두리째 내놓으며
'살려줍소사! 살려줍소사!' 하더군.
그렇지만 그 저승에서 온 사자가
그 닭국을 얻어먹고
적당히 에누리를 해주었는지 어쩐지
그 뒤 소식은 안개에 가려져서
내 시력으로도 잘 보이지 않아
뭐라고 할 말이 없네.
- 『산시』(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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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에 실린 위의 작품과 「카메룬 나라의 카메룬 산이 두 번째로 하신 이야기」 두 편은 아마도 서정주가 남긴 시 중에서도 길이가 가장 긴 작품들일 것이다. 장거리 시행을 구사했던 『팔할이 바람』 수록 시편과 비교해보아도 두 배는 길다. 물론 분량에 비하면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산시』에서 세계의 민화(民話)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 가운데서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이 시의 앞부분은 멕시코의 신화를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뒷부분은 실제로는 케찰코아틀과는 관계없는 멕시코 민화 두 가지를 슬쩍 엮은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서정주가 『산시』와 같은 해에 출간한 『세계 민화집』에 실려 있다.
위의 시의 내용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물론 마지막의 닭국을 먹으러 온 신과 저승사자 이야기이다. 신을 만나면 억하심정이 치솟지만 저승사자를 만나니 무서움이 치솟더라는 이야기는 수긍이 될 것도 같고 안 될 것도 같다. 이야기가 모호하게 마무리된 것은 원본의 민화가 실제로 거기서 끝나기 때문이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영 싱겁게 느껴진다. 잡담이지만 서정주에게 멕시코는 세계 기행문을 쓰러 여행을 다니다가 객혈로 쓰러져서 거의 죽을 뻔했던 악연의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이 일을 당하고 나서 소설가 로렌스는 멕시코 기행을 바탕으로 『날개 돋친 뱀』 같은 작품도 남겼는데 네놈은 기행문 팔아먹을 생각이나 하다가 이 꼴을 당한 것 아니냐고 자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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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고같이 노나먹겠니? 못노나먹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