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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류로 뒤덮인 행성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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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더는 인간의 것이 아니죠
인간의 몸 또한 마찬가지고요
의식과 자아는 착각에 불과하다고요
여기 이렇게 더 멋지고 아름다운 세계가 뻔히 있는데......
한 줄 요약
폭력에 의한 강압적 설득의 미화
김초엽이 작년에 낸 장편소설인 파견자들이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부터 2년이 지나 나왔으며, 그땐 식물이 소재였고 지금은 균류가 소재다. 인상도 비슷하고 두 소재로 비롯된 포스트 아포칼립스도 비슷하지만 내용과 전개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니 자기복제는 아닌 셈. 하지만 자기복제가 중요한 건 아니고, 신경 쓸 만한 것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뭘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뒷표지가 주제의식 스포를 다 해놓았지만, 읽은 입장에선 음......
뭘까?
의식과 자아의 경계에 대해 논하는 것보다 태린과 이제프의 애절한 관계를 그려내는 것에 더 많은 묘사와 서사를 투자했다고 생각이 드는 건 착각일까?
지구 끝의 온실에서처럼 파견자들 역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표면적 장르로 내세우고 있다. 표면적 장르라고 내세우는 이유는 숨겨진 장르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구색을 그렇게 맞췄다는 의미다. 문제는 장르소설에는 마땅히 존재하는 문법이랄지, 독자를 위한 배려랄지, 혹자는 '기본'이라 말할지 모르는 암묵적 룰들이 있기 마련인데, 김초엽은 2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 룰을 숙지하기는커녕 알아볼 마음이 없는 듯하다.
다음은 파견자들의 특징이자 단점이다.
1. 그뭔씹의 소설화
김초엽의 단편은 막연한 공상만 적당히 그려내면 되고, 거기에 필요한 배경무대로 많이 필요치 않아서 설명과 묘사의 요구량이 많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초엽이 그 요구량을 다 채워서 쓴 건 아니다. 여기서 요구되는 정보는 사실 독자마다 기준도 다르겠고, 그래서 누군가는 오히려 김초엽의 묘사가 좋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장르소설 독자라면 솔직히 다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김초엽의 소설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단편은 그렇다쳐도 장편은 특히 이 문제가 심각해진다. 김초엽의 첫 장편이었던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인데 지구가 어떤 꼴이 되었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분량의 2/3을 처먹고 알려준다. 그래, 간혹 포스트 아포칼립스 중에는 멸망의 원인이 중요한 떡밥이 될 수 있고 숨겨야만 하는 정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그냥 안 알려준다. 딱히 주요한 반전이라서 숨긴 것도 아니다. 그중에 최악은 상상할 이미지를 내주지 않는다.
장르소설에서 '현대'라는 장르가 잘 써먹히는 건 다름 아니라 '배경 묘사에 공을 덜 들여도 되기 때문'이다. 독자가 상상할 이미지는 현실에서 그대로 끌어오면 되니까. 그게 독자 전부가 합치되진 않아도, 공유하고 공통되는 이미지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묘사를 생략해도 된다. 하지만 이 말은 바꿔말해서 현대가 아니라면 배경 묘사에 공을 들여야 한다. 왜냐면 독자에겐 상상할 이미지를 끌어올 소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즉, 현대가 아닌 장르소설, 특히 환경의 변화를 매우 중요시 다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더더군다나 배경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구 끝의 온실에선 그런 이미지를 제시하는 걸 처참하게 실패했고, 작중 설정들조차 제대로 풀지 않아 굉장히 불친절한 소설을 만들었었다. 불친절하니 이영도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영도의 불친절함과는 궤가 다르다. 이영도의 불친절함은 작중에 정보가 다 제시돼 있기 때문에 구태여 중언하지 않는 데 오는 불친절함(곧 필요한 정보는 다 준다)이지만, 김초엽의 불친절함은 "일반인에게 씹덕 얘기를 자연스럽게 늘여놓는 것"과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파견자들의 배경이 되는 지하도시 라부바와...... 하지만 어딘지 안 알려준다. 라부바와가 지구의 어디 있는 도시인지, 옛날에 어떤 나라의 도시였는지 안 알려준다. 그냥 라부바와라는 지하도시가 배경이다. 그런데 라부바와는 사실 섬이었다. 중간에 해저 통로를 통해 내륙으로 간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언급이 언제 나오는지 아는가? 154페이지에 처음 등장한다.
그 전까지는 라부바와라는 지하도시만 나올 뿐 여기가 도대체 지구의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다못해 주석으로다가 대충 동남아예용~ 해도 될 걸 그런 것도 없다. 천선란이 개쓸데없는 곳에 주석 달고 필요한 단어에 주석 안 단 것과 달리 김초엽은 걍 주석을 안 단다. 지 머릿속엔 다 있다 그건가. 하다못해 섬이란 걸 먼저 알려줬으면 말을 안 하겠는데 154페이지의 묘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넘어갔다가 156페이지에서 내륙 한 번 더 나오는 거 보고 그제야 눈치챘다.
이뿐만 아니라 라부바와라는 지하도시는 사실 파견자 본부가 정부로서 군림하는 곳인데, 이 통제 단체로서 파견자 본부는 2부에 들어가서야 처음 등장한다. 그냥 설명이 없다. 1부 읽는 내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건 김초엽이 조성한 라부바와라는 지하도시의 시궁창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김초엽이 묘사한 라부바와의 지극한 단면, 정태린과 자스완과 선오의 일상 밖에 없다. 난 아직도 지하도시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지 못하고, 지하도시 중간에 엄청 거대한 탑이 있는 것도 소설 후반부에 가서야 알았다. 왜냐고? 그때 가서야 묘사했으니까.
단순히 이미지 제시를 불친절하게 하는 것만 해도 독자의 그래픽카드를 장애로 만들어버리는 비범함을 뽐내는데, 배경'이미지' 말고 배경'설정'은 어떨가? 이건 친절하게 설명해줄까?
아니. 전혀.
범람체라는 게 지구를 뒤덮어서 인류는 지상을 뺏겨 지하로 살아간다...라는 것까지는 1부에서 독자가 '추측'으로 알아낼 수 있다. 근데 범람체. 범람체라는 단어를 보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 파도 비슷한 이미지는 있어도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무언가를 연상시키나?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가? 하하하. 그딴 거 1부 내내 없다. 범람 기둥, 범람 산호, 범람화된 맹수...... 뭐가 자꾸 범람하는데 여기에 대한 묘사라고는 형형색색의 색채 이미지를 좀 끌어다 쓴 거 말고는 전혀 없다. 정말이다.
라부바와가 섬이었단 얘기도 154페이지 가서야 '간접적으로' 알려줘, 범람체가 뭔지도 제대로 안 알려줘, 그거 아는가? 이 소설의 작중 배경년도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기껏해야 20xx년인 줄 알았다. 왜냐면 라부바와에서 기껏 나오는 게 무인기계 몇 대, 생체칩, 뭐시기 디바이스들, 슬럼버 건...... 2030년으로 잡았어도 '그래 6년이면 지구 씹창나고 기술도 인적 자원이 희귀해지니 그럴 만도 하지'라고 이해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무려 범람체에게 지상을 뺏긴 지 수백 년이 지났다는 걸 작품 최후반부에 알려준다.
이게 대체 무슨 중요한 반전이라고 수백 년이나 지난 걸 한참 뒤에 알려준 걸까......? 그럼 수백 년 동안 범람체 대응 하나 못한 건가...? 아니, 뭐 이점은 그냥 딴죽 걸기니까 별 의미 없는 태클이어도, 수백 년이라는 세월에 대한 체감이 김초엽과 나와는 상이하게 다른 듯하다. 인류는 지상을 되찾겠다고 하는데 그게 수백 년 전에 뺏긴 거......? 아니, 난 또 1세기 안쪽인 줄 알았는데 수 세기...?
그래, 이건 체감과 감각의 문제, 주관의 문제니까 그렇다 쳐도 다시 묻는 수밖에 없다. 이걸 왜 이제야 알려주는 거지......?
알려주는 타이밍도, 알려주는 것도, 죄다 이게 장르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잘못됐다. 아니 사실 더 화가 나는 건 아주 좋은 명분으로 설명할 기회가 1부 초반에 제시됐다는 점이 그렇다. 정태린이 파견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암기하고 상기한다는 명분으로 지구가 어떻게 됐고, 범람체는 어떤 개념의 존재이며, 그래서 인류는 어떻게 됐고 어떻게 대항하고 있고 그런 걸 독자에게 설명해주면 어디 덧나나...?
하지만 현실은? 준비했다. 암기했다. 자신 있었다. 시험 볼 때도 다 아는 내용이었다......
뭘까?
내가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보는 쪽이라지만, 이건...... 그냥...... 작품이 너무 허술해서 뒤에 있는 작가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내 생각엔...... 본인도 안 생각했어... 그렇게 세세하게... 세밀하게... 설정집 같은 거 안 만들었을 거야...... 있으면 설명을 했겠지... 있는데 설명도 안 하고 독자가 독심술로 다 알겠거니 싶어서 썼겠어...?
그조차 아니라면 뭐 어디 북토크 같은 데서 배경설정 썰풀이 다 하고 '아 이렇게 설명 다 했으니 재밌게 읽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건가?
최악이다. 그 어떤 식으로든 장르소설이 작품 안에서 이미지를 그려내지 못하고 설정을 풀어내지 못하며 독자가 추측하고 추론하지 않고선 세계를 파악할 수도 없는 게...... 이걸 장르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나? 좀만 더 구멍 내고 퍼즐 배치하듯 단서 뿌리면 그게 독자를 위한 참여형 추리게임 아닐까? 세계의 진상을 맞춰보세요!
정말 놀라운 건...... 이게 결국 그뭔씹의 소설화라는 단점 하나로 정리되는 것이고, 내가 말한 단점'들'의 일부라는 것이다......
2. 인물의 심리를 작가가 못 따라감
인물에 관한 문제는 진짜 중구난방이라 한 번에 정리하기가 힘든데, 일단 뭐 크게 요약하면 이렇지 않나....... 주인공 정태린은 20대초, 많아도 20대 중반이다. 어엿한 성인이다. 근데 하는 짓이나 심리는 그냥 15살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보호자이자 선생님, 선배 파견자였던 이제프를 향한 레즈레즈 마음도 그렇고, 작중에서 정태린이 고뇌하는 것 전부가 수준이 성인이 한다고 생각하기엔...... 괴리가 좀 있다. 성인인 거 빼두고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열에 아홉은 10대로 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 나이에 대한 성숙함, 조숙함, 뭐 이런 건 작가 설정하기 나름이니 넘어가더라도, 진짜 문제는 작가가 묘사를 못하는 게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점이고, 그중에 하나가 인물 심리라는 점이다. 모든 고뇌가 한두 문단을 넘기지 못한다. 그 이상으로 묘사하는 건 힘에 부치나보다. 그 한두 문단에 힘을 빡주면 모르겠는데, 김초엽에겐 그정도 필력과 문장이 있을 리 없다.
마일라의 자살 급발진은 사실 마일라의 고뇌를 상징하는 문장 하나, 그리고 다음 6페이지는 마일라 없이 주인공과 주인공 머릿속 범람체 친구와 대화,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마일라 자살이다. 그러니까 독자가 받아들이기에 마일라는 문장 하나의 고뇌를 거친 뒤 자살해버린 미친 급발진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셈이다. 작가도 이렇게 급발진 박은 거 미안했는지 에필로그로 짧게 다뤄주는데, 아니 그게 좀...... 하......
네샤트의 범람체 증오도 뭐 사정을 제대로 설명해준 것도 없고 그냥 거의 밑도 끝도 없다. 파견자들이 범람체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심리이긴 해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마련인데 네샤트는 김초엽에게 찍혔는지 그런 사정조차 제대로 보여준 것 없이 목에 칼빵 맞아서 뒤진다. 참고로 칼빵 맞는 과정은 진짜 형편 없어서 이거 그대로 액션 배우에게 가져가면 니가 먼저 따라해보라며 뺨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리뷰 초반에 의식과 자아보단 정태린과 이제프의 애절한 관계를 그리는데 더 집중한 건 아닐까 의심한 것 말인데...... 이것과 연관이 있다. 작가가 주제의식으로 삼은 건 아무래도 의식과 자아에 대한 어떤 고찰일 텐데, 문제는 그 고찰에 대한 고뇌가 정태린을 제외하면 전무하며, 정태린마저 고뇌가 한 페이지 안으로 끝나고 두세 번 반복되다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끝나버린다. 하지만 이제프와의 관계는? 작중 내내 정태린이 고뇌하는 건 의식과 자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이제프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니...... 묘사의 빈도, 묘사의 비중, 묘사의 분량...... 그 모든 게 의식과 자아 어쩌고 떠드는 것보다 정태린-이제프 관계를 조명하는 것에 쏠려있는데 작품 주제가 어떻게 의식과 자아 어쩌고겠어? 근데 문제는 주인공의 고뇌 비중을 따라 주제의식을 낙점해버리면 나머지 설정들은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부차적인 게 돼버린다. 아, 물론 이걸로 설명되는 건 있다. 설정이 왜 그리 빈약하고 없었는지. 정태린-이제프의 관계를 조명하기 위해 필요한 설정들만 짰다고 하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그럼 의식과 자아에 대한 고찰은요?
알빠노.
ㄹㅇ임. 그냥 작가가 답을 정해놨기 때문에 페이크 주제라고 봐도 되고, 오히려 진짜 주제는 정태린-이제프의 관계에서 찾는 게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태린은 이제프를 '실수'로 죽임ㅋㅋㅋㅋㅋㅋ
걍 읽으면 어처구니가 없다. 정태린 얘는 행동 대부분의 동기가 이성보다는 직감, 충동, 본능 이딴 것들이라 더더욱 그렇다. 이걸 작가가 매끄럽게 묘사해서 납득시키는 것도 아니다. 걍 충동이 들어서 그렇게 움직였대.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대. 20살 먹은 애가 그따위로 말해도 욕 처먹을 걸 최소 20대 초 많으면 20대 중반인 사람이?
나이만 낮췄어도 설득이 어느 정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다. 물론 이해의 영역을 넓히면 정태린의 심리나 행동양식이 납득 안 가는 건 아니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식으로서, 설정으로서 '아 작가가 그렇다니 그런 거지' 하는 수준이지, 심정적으로 얘가 어찌할 수 없는 충동에 휘둘려지는구나... 라는 느낌은 없다.
그나마 심리 묘사가 잦은 정태린조차도 이 모양인데 나머지 비중도 적은 인물들 심리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제프도 작중 최고 유능인 겸 정상인 포지션을 맡지만 이마저도 김초엽이 묘사하기론 굉장히 비틀린 사랑(?)을 품은 것으로 묘사했고, 아마 그게 의도된 듯하지만...... 충동에 매번 휘둘리는 주인공 vs 이성으로 차분히 상황을 통제하려는 적대자...... 누가 빌런이지...? 심지어 주인공은 '실수'로 적대자를 죽였다ㅋㅋㅋ
하......
이것뿐만이 아니라 파견자 본부...... 얘네야말로 진짜 콩가루 조직 그 자체인데...... 작가가 작정하고 무능하게 그려서 그런지, 아니면 전문분야라서 그런지 몰라도 무능한 게 너무 실감났다. 이딴 게 지하도시 지배자...?
범람체 의식 묘사는 그냥 말을 말자. 작가가 대놓고 얘넨 좀 순진무구한 면이 있는 절대선임ㅇㅇ하고 못을 박아서 뭐라 할 그게 안 된다.
3. 주제의식의 모순
물론 진짜 주제의식은 정태린과 이제프의 관계에 있지만, 작품이 제시하려고 하는 주제의식은 의식과 자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다. 전자는 주인공 고뇌의 비중이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작품의 구성이 가리키는 것이다. 어쨌든 작품이 뭐 그렇게 제시하려고 하니까 거기에 맞춰서 주제의식을 살펴보면, 굉장히 이상하다......
인류와 범람체의 대립이 있다. 인류는 개인의 자아와 의식을 소중히 여기고, 한 개체에 한 의식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이중인격이나 해리성 인격 장애 같은 건 여기에 사례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반대로 범람체는 의식과 자아의 경계를 해체하고, 더 넓지만 강도는 약한 소규모 군체를 이룬다. 타이라니드, 하이브 마인드의 열화판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개별 개체일 땐 그냥 균류에 불과하다가 일정 군집을 이루면 거기에 지성이 피어나는 그런 식이다.
범람화된 인간들은 인류와 범람체 사이, 그러나 범람체에 더 가까운 존재들로 이들은 의식과 자아가 좀 더 열려있고, 그래서 범람체들끼리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체에 녹아들기보다는 전체를 구성하는 한 개체로서 자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질 것이고, 끝내 범람체라는 군집 안에 녹아들 것이다.
작가는 인류와 범람체 중에서 인류의 생각을 착각, 고정관념, 구태로 규정한다. 근거? 범람체가 인간 하나를 범람화시키면서 언어를 습득해봤는데 의식은 착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대. 근거는 이게 다다. 감정도 문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근거는 딱히 없다. 그냥 범람체 의견들은 근거: 내가 해부해봤는데 별 거 없더라ㅋㅋ 고 나머진 죄다 주장이다.
거기에 처음에 지구를 뒤덮었을 때 인류는 범람체가 지성이 없다고 판단했었는데, 얘네가 알고보니 지성이 존재했다면 왜 우리를 그냥 마구잡이로 없애버린 거냐고 반론하니까 우리도 처음엔 지성이 없어서 본능대로 움직이느라 그랬다고 말하더니 아 우리는 지성체가 버섯이나 개미인 줄 알았는데ㅎㅎ;;라고도 하고, 니들이 말하는 죽음은 없는데? 그냥 다른 존재로 바뀐 건데?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건데? 그게 왜 죽은 거임? 쿠쿠루삥뽕ㅋㅋ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실.
이 새끼들 우주에서 왔다.
태곳적 지구에 잠들었다가 어느 순간 깨어난 것도 아니다. 인류가 금단의 연구를 하다가 건드린 것도 아니다. 사악한 사교도들이 의식을 행하다가 사고 친 것도 아니다. 그냥 우주에서 날아왔고, 그래서 본능대로 덮치다가 어느 순간 지성이 뿅!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지구를 뒤덮은 것: 본능이다. 우리는 명령 체계도 없고 느슨한 군집이라 우리가 안 해도 다른 애들은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더 좋아지는 거잖슴?
인류를 범람화시킨 것: 본능이다. 니들 말로 죽은 것도 아닌데 근들갑ㄴㄴ, 얘네 중에서도 자아 유지하는 애들 있잖아? 우리도 적당히 조절해볼게ㅎㅎㅋㅋ
본능 방패, 소규모 군집 방패 아주 든든하다 그쵸? 꼬리 자르기가 예사롭지 않다. 책임은 회피하고 주장만 펼치며 근거는 딱히 없고 지들 경험이 전부이며, 자기들네 주장이 옳기 때문에 이것만이 더 나아지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태도...... 어?
헉
허거걱......
나는 감히 입에 올리지 않겠다. 다 님들이 멋대로 무언갈 연상해서 결론 내린 거임.
하여튼 범람체들 주장은 대충 이렇다. 쉽게 요약하면 우주에서 건너온 외계 생명체가 굉장히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으로 인류를 강제 흡수합병하려는 것이다. 왜냐고? 인류는 범람체들과 공존하지 않으면 답이 없거든. 마치 대화와 화합으로 공존/공생하는 듯해보여도, 그냥 범람체에게 대항할 수단이 없어서(사실 이제프가 만들었는데 정태린이 죽여버리면서 함께 잃어버렸다) 항복한 거나 다름없다.
특히 인류가 범람체에 대항하는 걸 두고 작중에서 '같은 인격을 가진 생명을 살해하는 것'으로 두고 묘사하며 비판을 가하는데, 정반대로 범람체가 인간을 범람화시키는 건 '자아라는 착각을 부수고 더 넓은 세게로 인도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범람체가 처음 인류 마구잡이로 범람화시켜서 자아도 없이 해체시킨 건 본능이고 조절미스라네요~
그럼 왜 인류는 본능대로 생존투쟁을 하면 안 되는 건지......? 묻고 싶지만? 파견자 본부부터가 빡#대가리 집합소라 논박은 전혀 진행되지 않고 범람체의 일방적인 긍정과 강요만 이어지기 때문에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의식과 자아에 대한 경계도 고뇌하는 인간이 극소수인 데다가 정태린도 두세 번 고민하더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인류와 범람체가 동등하고 대등하게, 서로 파국으로 치닫는 싸움을 반복하다가 범람체의 논리가 이겨서 인류가 범람체와 공존하는 방향을 택한 게 아니다. 범람체에게 수백 년 동안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인류가 반격의 기회조차 빼앗긴 채 범람체에게 굴복한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물론 이건 하나의 시각이다. 하지만 틀린 시각은 아니다. 그래, 여기서도 '수백 년'이라는 숫자가 굉장한 위화감을 가져다준다.
수어 년, 수십 년도 아니고 수백 년을 억압 당하고 당하기만 하며 파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애를 쓰던 인류는 알고 보니 범람체는 지성이 존재하고 그들이 빼앗아간 누군가의 가족, 친구, 이웃은 안 죽고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고 하며 지구 먹어버린 건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걸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
뭘까?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4. 그 외
4-1. 최후반부에 정태린이 건물을 탈출하며 이제프의 생체 칩을 아침에 몰래 베껴서 써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앞의 묘사를 다 훑어봤다. 그 어디에도 이제프의 칩을 베꼈다는 암시나 복선이 없었다. 그냥 그런 거 없이 탈출했다가 써먹을 때 되니까 '사실 복제했지롱'하고 나와서 써먹는다. 어차피 최후반부라 뇌를 약간 풀긴 했는데 그런 나에게조차 느슨했던 긴장감에 충격을 준 부분이었다.
4-2. 액션 묘사가 총 3번 나오는데, 한 번은 파견자 시험에서 맹수 시뮬레이터 돌릴 때, 한 번은 네샤트와 스벤이 엎치락뒤치락할 때, 한 번은 정태린과 이제프가 대립할 때 나온다. 그리고 셋 다 처참하기 그지없다. 김초엽은 움직임조차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다...... 그래, 액션은 묘사할 일도 좀체 없으니까 이해해......
4-3. 남자가 총 두 번, 자스완(남자인 거 계속 헷갈렸는데 2부 중반 넘어가서야 알려줌)이랑 스벤 뿐이다. 나머진 딱히 남자라는 묘사도 없고, 파견자 본부 쪽은 걍 없는 놈들 취급해야 해서...... 나머진 그냥 다 여자다. 그래, 성비 구성이야 작가 소신이고 페미니즘적 바탕에 깔린 구성인 걸 뭐라 하는 건 아닌데...... 작중에서 아무도 지원 안 하고 사망율도 높게 나오는 3d 중의 3d 업무를 여자 셋으로만 구성한다는 건...... 뭐랄까...... 어벤져스에서 신나게 치고박다가 걸벤져스 모인 그 느낌이랄까......
굳이?
4-4. 발전한 부분, 정석적인 전개를 씀. 물론 세부 묘사가 다 박살 나버렸고 위의 단점들이 너무 존재감이 커서 전개는 그냥 남들에게 말할 때나 있어보이는 효과가 있다. 근데 세부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설명하는 자신이 바보 같아지니 적당히 말해야 하는 게 단점임.
4-5. 프롤로그랑 1부 괴리감 없는 것도 발전한 거긴 했다. 지구 끝의 온실은...... 말을 말자......
4-6. -100점짜리 소설이 지구 끝의 온실이라면, 파견자들은 -40점짜리 소설이다. 그리고 100점 만점이다.
4-7. 수백 년 동안 기술 발전이라곤 범람체에게 금방 먹힐 기계들...... 아니 수백 년 동안 자재 수급이랑 식량 보급이랑....... 말을 말자...... 지구 끝의 온실에서도 그랬지만 김초엽은 이과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숫자 감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딱 자기가 고증하고 싶은 분야만 생각하고 이야기에 필요한 파츠는 일말의 고려도 안 한 것 같다.
4-8. 김초엽이 범람체의 감각을 묘사하는 파트가 있는데, 나름 힘 줘서 평소 문단의 두 배 길이로 묘사했다. 그냥 딱 보면 '아 이거 영상화 노린 건가...' 싶은 그런 묘사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묘사의 모티브가 어디서 나왔을지 보이는... 물론 잘 썼다는 건 아니다. 절대로.
애초에 이런 소설을 안 읽은 나의 승리네^^
사실 진짜 승리자는 이런 소설 쓰고 돈 존나 번 김초엽 밖에 없지만요우
어쩌겠슴
4-3은 옛날에 쓴 다른 소설 리뷰에서도 지적받은 바가 있는데도, 똑같이 있는 거 보면 작가의 고집인듯... 솔직히 등장인물 모두가 여자여서 얻는 소설만의 이점은 모르겠음... 굳이 왜 여자인건가? 쓸데없는 거 같기도 하고...
고집이 아니라 페미니즘
사실 듀나도 그렇고 김초엽도 그렇고 한국 SF 시장을 활성화했다고 평가받는 두 분이 페미니즘을 좋아하는게 참... 비단 좋은 현상은 아닐텐데
애초에 사주는 사람이 2030 여자인 시점에서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해봤자 돈이 되는 걸 어쩌겠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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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믈리에 하쉴?
나도 김초엽 단편집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축이지만 파견자들은 엄청 재밌게 봤는데 - dc App
그리고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sf와 가까울 수 밖에 없음 - dc App
지구 속 온실은 어땠음? - dc App
가깝던 말던 반영하던 말던 파견자들 비판에서 페미니즘이 차지하는 축은 엄청 적음. 그냥 굳이? 싶은 부분에서만 있을 따름이지...
파견자들 옹호하는 리뷰 한번 써봐야겠다 - dc App
저도 지구 끝의 온실보단 괜찮아서 음음 괜찮네 생각했는데, 선생님처럼 분석하며 보니 단점이 수두룩하네요… 심지어 전 지하도시가 ‘섬’이란 사실도 지금 앎…ㅋㅋ;; - dc App
지구 끝의 온실은 총체적 난국 이전에 소설이긴 한 건지 싶었던 거라 상대적 선녀인 건 맞음
아 주인공 20대였음....? 중간중간에 나오는 얼탱이 없는 설정들에 부랄을 탁 친 적은 존나 많았는데 이건 놓쳤었네 심리묘사 때문에 당연히 10대인줄 특히 4-1이랑 실험체 정보도 등록되서 실험체가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가는거, 아무튼 범람체가 도시 안에서도 마음대로 다님 하는 부분이 개씨발이었음 그 부분들 보고 이게 어떻게 sf? 싶더라 그러고보니 언급된 대부분의 설정들을 의미있게 쓰는 장면이 1도 없는데 도대체 왜 존재하는 설정들인지 모르겠음 솔직히 말해서 전반적으로 sf가 아니라 일단 이야기를 다 써놓고 부분부분 sf처럼 보일것 같은 소재를 첨가한거 같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세계관이 허술할 이유가 없는듯
의외로 성인인 거 자주 언급함ㅋㅋ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렇지... 수백 년 지난 지하도시 보안 꼬라지가 진짜 웃음벨이긴 함ㅋㅋㅋ 여러모로 설정들이 서로 아다리가 안 맞음ㅋㅋㅋㅋ 솔직히 난 이게 sf라고 생각이 들지도 않고 크게 봐서 sf일 수는 있어도 과학적 사고가 하나도 없어서 그냥... 레즈레즈백합물이 아닐련지?
늘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