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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최근작
이라고 생각하고 빌렸지만 사실 한참 예전(2012년)에 나온 책이다
왜 최근작이라고 생각했냐면
실제 최근작인 '힘과 교환양식' 에서 이오니아 자연철학과 소크라테스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꼭지가 하나 있는데
철학의 기원의 내용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가라타니의 다른 책에서는 이쪽 이야기를 거의 읽지 못했는데
가라타니는 이렇게 변주하고 저렇게 변주하고 여기서 쟤를 찾고 저기선 얘를 찾고 이런 방식으로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는 사람이라
처음 봤으니 당연히 최근작이겠거니... 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어쨌든 내용은 역시나 이오니아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그래서 이오니아가 뭔데 씹덕 새끼야
라고 할까봐 지도를 준비했다. 실제 책에는 맨 뒤에 지도와 연표가 있으니 혹시나 읽을 분들은 걱정마시라
그래서 이오니아가 왜 중요한데?
그 이유는, 가라타니식으로 또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제국의 아주변이기 때문인데
쉽게 말해, 세계제국이라는 거대한 권위와 힘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지만 적당한 영향권 안에는 있어서 사회문화적으로 좋은 것은 받아들이면서 은근슬쩍 자치를 유지하는 지역을 말한다
고대 동아시아에 비유하면 중국이 제국이고 한반도는 제국의 주변, 일본이 아주변이 된다
물론 지역을 나누는 절대적인 단위일 수는 없다. 제국의 지형은 항상 변하니까. 그래서 가라타니는 교환 양식에 의거한 새로운 체계를 고안하게 된 걸테고
어쨌든
이오니아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이 아직 닿지 않은 사이, 또 아테네가 제국으로 성장하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동안 융성했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의 폴리스는 기본적으로 씨족 공동체였는데
이오니아의 폴리스들은 다른 폴리스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개척 도시라 사회 계약적인 공동체였다고 한다
그래서 상공업을 중시하고 괴력난신을 믿지 않는 풍조가 팽배했다고 한다. 이들 이오니아 폴리스의 사회를 '이소노미아' 라고 부른다. 이소노미아는 무지배로 번역된다
뭐, 괴력난신을 믿지 않는다고? 근데 이 새끼들 불이랑 물 같은 게 세상의 기본 원소라고 했던 놈들 아님?
이라고, 이오니아 자연철학자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말할 수 있다
탈레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이전' 의 철학자들은 원소를 숭배했다고 여기는 것이 평범한 인식이다
그런데 가라타니의 주장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그리스의 전통 신들을 배제하고, 오직 물질에서 세상의 기원을 찾기 위해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즉 유물론적인 주장을 했다는 말이다
이게 설득력이 있는 게, 이들은 우리가 흔히 철학자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현실과 유리된 골방에 틀어박혀 논리를 설계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고, 실제적인 기술에도 매우 능했다고 한다. 농사에 도움이 되는 기구를 만든다던지 그런 걸 많이 했고 정치 참여도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또 히포크라테스나 헤로도토스와 같은 철학보다는 조금 더 실제적인 학문을 다뤘던 이오니아인들에게서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있는데 이것도 설득력이 있었다
반면 플라톤이 만들어낸 것은 형이상학이고 사실상의 신학이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조 또한 플라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여 기독교가 플라톤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운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뭐 이런 많이 들어본 얘기도 하는데
어쨌든 진짜 재밌었던 것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내세워 주장을 펼쳤지만 사실 진짜 영향을 받은 쪽은 피타고라스였다, 라는 부분이다
피타고라스는 수를 숭배하는 종교 집단을 만들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망해서 비밀 결사로 남았다
이 종교 집단이라는 것은 수를 가르치는 학원이었는데, 사실상의 코뮌과 같은 것이어서 소크라테스 사후 유랑하던 플라톤이 거기 머물렀던 기록도 있다
이 세계의 본질은 수라는 이중세계론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영향을 줬다는 것인데
풀어서 쓰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이중세계론은 사실 아시아에선 흔한 거였고 제국주의적인 생각이고 이런 얘기가 막 나오는데 아주 재밌다
어쨌든 둘 사이에 목적론적인 사고 방식이 이어진다는 거다
또 철인왕이라는 아이디어 또한 피타고라스의 종교 결사-코뮌에서 영감받았다고 한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실제로는 플라톤과 정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에 플라톤 안 거친 게 어딨다고 '진짜 소크라테스' 를 찾고 난리야?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의 주장에 따르면, 플라톤의 다른 저작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모두 믿을 수 없을지 몰라도 '소크라테스의 변론' 만큼은 진짜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출간 당시 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살아있었을 것이기에, 사실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변론' 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다음 둘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무여서 죽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거나, 또는 전해지는 바대로 혼이 이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주거를 옮기는 것입니다', '이제 가야합니다. 나는 지금부터 죽으러, 여러분은 지금부터 살아가기 위하여. 하지만 우리 중에서 누가 좋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신이 아니고서는 말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파이돈' 에서 소크라테스는 독을 마시기 전에 '철학이란 죽는 연습이다' 라고 말한다.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사실은 플라톤 말고도 소크라테스의 어록을 남긴 사람이 있긴 하더라.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 이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그리스철학자열전' 이라는 책이 자주 인용된다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그런데 소크라테스 또한 이오니아 자연철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본인은 이오니아 자연철학을 부정했지만, 그것이 '억압된 것의 회귀' 로 나타났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엘레아 학파(파르메니데스, 제논)의 역설에 영향을 받은 것이고, 엘레아 학파의 역설은 신을 부정하는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전통을 다시 세우려했던 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라타니 본인은 적지 않았지만 나는 읽으며 계속 생각난 것이 있는데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내세워 제자임을 강조하면서도 사실은 피타고라스의 논리에 따라 형이상학을 만들어냈다는 것도 또한 '억압된 것의 회귀' 가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내 감상만 보면 그냥 이오니아 킹왕짱 빨아주고 끝인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이오니아는 역사 속에서 가장 특별한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 그저 교환 양식 D가 발흥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제자백가가 발흥한 것과 유사한 사례라고 한다)
이 부분은 사실 이 책에선 별로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나
'힘과 교환양식' 에서는 해당 사항 중 하나로서 적은 분량으로 언급되었던 것 같다
근데 개척으로 시작된 이오니아의 이야기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예시를 드는 모습을 보니
결국 사람이 존나게 많고 지구 곳곳에 다 살고 있어서 개척할 곳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인가? 제국주의가 계속 식민지를 찾아 헤매듯이?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잘 모르겠고
어쨌든
아주 재밌었고 제목 값을 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참 중반부까지는 얘기가 없다가 갑자기 헤겔을 꺼내서 패길래 웃겨서 어제 독갤에 스샷을 올렸는데
후반부에 더 열심히 패더라. 헤겔 패는 건 가라타니 취미긴 한데
칸트 마르크스는 또 평소처럼 기습 숭배했고
뭐 나는 아무도 원전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가라타니가 맞는 것 같긴 함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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