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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지식과 지성수준은 롤대남 평균 수준이고, 구입한 책이 아까워서 텍스트만이라도 독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은 것을 정리한 내용임*
*철학책은 작은 인식론 책자 한권과 고대그리스 철학 요약 정도밖에 안 읽어봄, 순이비는 모름, 따라서 글 내용은 타당하지 않을 것*
제1강 정리 및 독후감
순수이성비판(이하 순이비)는 서양철학에서 아주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칸트의 작품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그 실상은 어떠할까?
저자 아도르노에 의하면 이제는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옛 사람들의 작품들을 현대 기준으로 평가하고 이를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순이비는 마치 버려진 신전 같다.
이 신전은 분명 과거에는 휘황찬란했던 영광스러운 신전이었고, 사람들은 이 신전에 방문하는 것으로 신을 만나리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의 신과 신자는 사라진지 오래이며, 신전의 외관도 많이 망가졌고 따라서 폐허에 가깝다.
그러나 이 망가진 신전은 조금 특별한 폐허인데, 이는 허름해진 폐허가 가치있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이비는 유행이 지나 버려진 패션이 아니고 또 이름만이 남은 고대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제 나름의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문화재이다.
순이비의 잘못된 접근은 바로 이 신전에서 숨은 신이 있기를 기대하거나, 혹은 이 문화재의 실용적 가치를 기대하는 데에 있다.
순이비의 올바른 가치는 이 폐허가 왜 한 때 신성한 신들이 살았고 경배를 받았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이 신전의 문화적 가치는 거기서 나온다.
아도르노는 자신이 그 가치를 우리에게 증명하고자 한다.
저자 아도르노는 다시 한 번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이에 대한 내 감상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철학적 물음들에 순이비가 더 이상 답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내 감상이 타당했는지는 책을 계속 읽어보며 되짚어봐야할 일이다.
(신전과 폐허 비유는 내 창작이다)
저자는 칸트의 다음 어구를 인용하며 순이비의 올바른 내용을 제시해준다..
"왜냐하면 나의 주요 물음은 지성과 이성이 모든 경험에서 벗어나 얼마나 많이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지,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이비가 당시에 준 철학적 도움은 인식의 객관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객관성을 구제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당시의 인식론적 물음은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에 치중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물음은 당시의 이성으로는 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으며 그 이후로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때 칸트가 취했던 조취는 객관성을 증명하는 것도 객관성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주관 속에서 객관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객관성을 의심받던 객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주관의 영역속에서 보호를 약속 받는다, 이것이 칸트가 계획한 객관성의 구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의 가능성' 을 언급하며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칸트의 판단들에는 전통적인 논리학이 함께하는데, 바로 판단을 주어, 술어 그리고 연결사의 결합으로 특징짓는 것이다.
따라서 문법적 의미에서 어떤 다른 것은 주어에 상응하는 대상에 의하여 빈사로서 규정된다.
그러나 이는 판단의 외형적 특징이며, 내부를 살펴보면 이러한 판단 속에서 사실 분리되어 있지 않은 계기들이 분리된 것처럼 말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판단에 포함된 A=B 개념은 동일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특수한 사태를 포섭하는 개념이 항상 사태 자체보다 더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판단이란 인식을 진리에 이끌어주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판단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를 마주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는 마치 세계일주를 해야하는데 내가 타야할 보트가 어린이들의 장난감 튜브인 셈이다.
판단은 종합적이거나 분석적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다시 말해 술어 개념이 주어 개념에 새로운 것을 첨부하느냐 첨부하지 않느냐의 것이다.
첨부하지 않을 경우 이는 새로운 것을 끌어들일 것이고, 따라서 확장적이며 이를 종합판단이라고 한다.
만약 첨부한다면 이는 분석판단이며 저자는 이를 동어 반복이라고 한다.
이는 전제된 정의의 반복에 불과하며 따라서 엄밀히 말해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분석판단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반면 종합판단은 아포스테리오리이거나 아프리오리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은 무엇일까?
칸트에게 있어서 진리의 개념이란 초시간적인 진리 개념이라고 한다.
이것은 절대적으로서 시간을 통해 결코 반박되지 않고 결코 탈취될 수 없는 것, 모든 미래에서도 두루 적용되는 어떤 것과도 같은 개념이다.
이어서 저자는 칸트의 진리개념이 '시민적 사유'와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시민적 사유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시민에 두루 미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융의 '집단 무의식'을 연상케하는 인간 인식의 보편적인 가능성이 떠오른다.
또한 칸트는 시간이 인간 인식의 필연적인 조건이며, 이는 또한 위에 말한 초시간적인-인식(진리?)의 필연적인 조건임을 자신이 처음 알았다고 전한다.
(칸트는 시간성 자체가 하나의 결점이며, 진리로서 구속력이 있는 인식이 피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저자는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이 가능한지 그리고 어떻게 가능한지의 물음이 순이비의 아주 중요하고도 소중한 물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정작 칸트는 순이비에서 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어떤 기분이 드는가?
아주 신성한 신비의 신전이 있었다, 그리고 이 신전은 아주 다양한 권능한 힘들을 제시하여 영광을 누렸었다.
그러나 신전의 신성함 중 하나가 신전의 지하에 깊숙히 잠들어 있은 채로 시간이 지났고 신전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신전에 머물던 신들도 신자도 전혀 이 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도르노는 우리가 자신을 따라 이 폐허의 지하를 탐험하여 이 신비한 원동력을(비록 지금은 신비하지 않을 수 있어도?) 탐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기에 그 힘은 이미 암암리에 퍼져 이곳저곳에 스며들었을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철학은 모르지만 칼 융의 서적을 여러권 읽었었다, 그리고 칼 융은 본인부터가 철학적 지식을 섭렵한 당대의 지성인이었고 칸트의 열렬한 독자였다.
따라서 나는 벌써 순이비의 숨겨진 힘에 대해 그 윤곽은 불분명하지만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인상을 내적으로 받고 있다.
그럼에도, 설령 내 지성이 갑자기 증대되어 내가 그것을 최선을 다해 잘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심리학적' 설명이거나 칼융의 혀를 빌려 설명한 것에 불과한 셈이다.
나는 이번에 아도르노를 따라 그 탐험에 참가해보고자 한다.
*칼융은 심리학자였고 그의 서적들은 고전심리학에 속한다*
<제1강 용어 사전>
아프리오리: 경험과 연역적 발견을 통한 것이 아닌 이미 정신에 주어진 인식이다 .
아포스테리오리: 경험과 결부되어 나온 인식이다.
명제: 물음에 대한 판단 일반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판단: 사유 작용 중 하나로, 어떠한 대상에 대해 판정을 내리는 사유 작용이다.
술어: 판단과 명제에서 주사에 대하여 긍정 또는 부정을 정하는 개념이다.
주사: 명제가 되는 문장에서 주어에 대응하는 명사, 혹은 판단의 대상이 되는 개념이다.
빈사: 명제에서 주사에 결합되어 그것을 규정하는 개념. 예를 들어 개는 동물이다, 하늘은 높다에서 동물과 높다가 빈사에 해당한다.
종합판단: 술어와 주어가 결합하여 주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개념을 이끌어내는 판단, 인식을 확장시킨다.
분석판단: 주어 개념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을 분석하여, 이것을 술어로 삼는 판단이다.
계기: 사물의 운동/변화/발전의 과정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소
개념: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나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
롤대남 수준이라메 글을 왜이리 잘써 기만자야
존잼이겠는데 나도 병렬 몇개 끝나면 한번 읽어봐야겠다
이거 읽어두면 원전판 읽을 때에 도움 될 것 같더라 (저자가 그렇게 말함 ㅋㅋ) 지금 읽는 것들도 잼게 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