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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작가를 알게 된 계기는 중앙일보 사설을 통해서다. 나는 중앙일보 종이신문을 구독 중이다. 사설에 김기현 작가가 작성한 기사글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래서 김기현 작가를 찾아보게 되었고, 발간 한 책 중에서 인간다움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만 보면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면 인문학 서적이다.
이 책을 통해서 엄청난 지적 오르가슴을 느꼈다.
한 챕터 마다 내용이 묵직하며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한 챕터 마다 묵직하게 나아가다 마지막 챕터에서 그동안 쌓았던 내공을 한 방에 터트린다.
인간다움이라는 성품도 몇 가지 재료들이 적절히 결합해 만들어진다. 사용되는 재료는 ‘공감’, ‘이성’, ‘자유(자율)’다. 어느 날 갑자기 공감, 이성, 자유(자율)라는 재료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결합해 인간다움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공감은 문명이 시작되기 전, 아주 오랜 과거에 형성되었다. 반면 이성과 자율은 상대적으로 어린 자산이다. 세상의 이치를 스스로 파악하는 능력으로서의 이성은 기원전 7~8세기경에 씨가 뿌려졌다.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능력으로서의 자율은 그보다 훨씬 뒤인 14세기 무렵이 되어야 싹을 틔운다.
공감, 인간다운 삶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관문이다.
공감이란 우리는 누군가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상대방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즉각적으로 전해져오는 것이다. 공감이 고통의 양과 단순히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견해에 영향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들어 한 남자가 돈이 없어서 며칠째 굶었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훔치다 편의점 직원에게 발각되어 경찰서에 인계되었다고 하자. 우리는 남자에게 동정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자는 자신의 돈을 인터넷 불법 도박에 모두 탕진하고, 자녀의 통장에 있는 돈까지 다 인터넷 불법 도박으로 다 날렸다. 그리고 자녀의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했다. 이 남자의 배고픔에 대해 안쓰러운 시선을 거둬드릴 수밖에 없다.
이성, 우리 안의 기준이 흔들릴 때 필요한 힘이다.
이성은 이렇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는 인간의 능력이다.
나는 당신에게 거짓말해도 되지만,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난센스로 들린다. 이런 말은 이기적인 것을 넘어 비이성적이어서 도덕 언어와 관련된 문법을 훼손하는 형용모순을 범한다.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려면 일반적 원리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이 이것을 요구한다.
공감이 편파적으로 작동할 때 이성은 내부적으로 장착한 일반성을 통해 마음에 경고음을 울린다. 예를 들어 장애인 혐오, 유대인 혐오로 인한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독일 시민에게 공감을 받았다. 이때 독일 시민은 공감이 편파적으로 작동할 때 이성의 마음의 경고음을 무시했다. 독일 군인 중에서도 히틀러의 잔인성에 경고하며 암살하려는 군인이 있었다. 이 군인은 공감이 편파적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이성의 경고음에 귀 기울였다. 이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공감도 올바르게 작용한다.
자유, 독립적인 삶으로 완성하는 인간다움
자율성은 주체성, 자기 결정권, 자주권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자율성이 개인의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에 적용될 때 ‘개인적 자율성’이라 부르고, 도덕적 규범을 스스로 구성해 나가는 모습에 적용될 때 ‘도덕적 자율성’이라 부른다. 삶의 모습과 관련되었든 도덕 구성과 관련되었든 자율성은 인간다움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축을 이룬다.
한 사람의 행동이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외적인 강제와 간섭에 의해 선택의 문이 닫혀 있는 경우다. 여기서 결핍된 자유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를 포함하지 않은 채 무엇인가가 없어야 성립하는 자유다. 즉 나의 선택을 가로막는 장애 또는 강제가 없어야 한다는 소극적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소극적 자유’라고 불린다.
외부의 간섭과 장애가 없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자유, 자기 통제와 자기 결정이 포함된 자유. 이것을 ‘적극적 자유’라고 한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율과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이다.
인간다움 적극적 의미의 자유, 즉 자율을 포함한다.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단이다.
나의 선택들이 모여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10년 전의 사진을 보고한 인물을 리키며 ‘나’라고 이야기하는 건 이상해할 것이 없다. 이는 시공간을 꿰뚫어 연속선상에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고, 스스로 가치를 두는 대상이 다르며, 그 결과 동일한 상황에서 행위를 선택하는 성향이 다르기에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의해 나의 환경은 달라졌으며, 그 결과 나의 가치관과 행동을 선택하는 성향도 달라졌다.
내가 '누구'가 되는가는 나의 선택에 의존한다. 나의 선택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의존한다면, 여기서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는 분명하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 역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의존해 결정된다. 나 자신의 이성적 성찰에 의해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가 선택되지 않고, 빅데이터에 기반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외부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인간이 점차 로봇을 닮아가는 모양새다. "
지금까지 다른 책과 정보를 얻을 때 AI 시대가 올 때 문제점으로 대부분 일자리 감소에 중점을 두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AI로 인해 인간다움을 잃는 것이 문제이다. 처음 공감에 관해 설명하고, 이성에 관해 설명하고, 자율에 관해 설명한 이유가 마지막 AI시대 인간다움을 잃게 되는 빌드업을 읽게 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 책을 꼭 추천한다.
밀리에 있넹
작가의 통찰력이 너무 부러움
난 이 책 읽으면서 작가 진짜 편협하다 생각했는데... 사고방식만 맞는다면 이 책이 좋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함. 그렇지만 본인이 던지려는 질문에 이미 답을 한 철학자랑 과학자들을 언급하면서 '그건 설득력이 없다'라고 반박하고 그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조금 서운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