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내가 평소 존경하는 석영중 선생님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모셔서 강연회를 했었지. 참고로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는 전교생이 9명이야. 고려대 교수님이 시골 꼬맹이 9명을 위해서 ktx로 2시간 30분에 승용차 40분 거리를 이동하신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려대학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선생님 메일로 간단히 부탁을 드렸는데 내가 보기엔 평범한 글인데 선생님은 ‘감동적’으로 여기시더라.
선생님 말씀이 사실 ‘하나고등학교에 간 적이 있는데 별 재미를 못 봤다. 그래서 걱정이다. 괜히 선생님의 감동적인 메일에 낚여서 가는 것인데 대충할 수는 없으니, 준비를 잘하겠다. 투르키네프의 <무무>를 미리 읽게 해달라. 쉽고 짧은 소설이니 학생들과 그 소설을 함께 읽으면서 편하게 토론식으로 진행하겠다’라고 하시더군.
역에서 마중 나가 선생님을 모셔 오는 데 포스가 느껴지더라. 긴장한 마음에 ‘러시아 음식은 맛있나요?’라는 멍청한 질문을 드렸고 선생님은 ‘맛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지’라는 현명한 대답을. 이동 중에 느낀 것인데 확실히 매우 엄한 교수님이시고 내가 이분의 제자라면 오줌 질질 싸겠다 싶었어. 박사학위 논문 한쪽에 어떻게 비문이 4개나 있냐며 한 대학원생의 실력을 한탄하시더군.
그래서 내가 혹시 러시아어로 쓴 논문이야고 물었는데 “아이고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한글로 쓴 논문이에요”라고 말씀하시더군. 여기서 나도 좀 놀란 것이 그래도 명색이 고려대 대학원 러시아문학 전공자가 러시아어로 논문을 쓸 수 없구나! 정도.
학생들과 만났는데 조금 전까지의 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상 따뜻한 할머니 미소를 지으시더라. 정말 존경스럽더라. 차근차근 중학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시더군. 어려운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으시고.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고려대학교 문구 굿즈도 준비하셨더라. 나를 위해선 저서 한 권에 서명해서 주셨고. 그리고 오래전부터 소장하던 <뿌쉬낀> 선집에 사인을 요청해서 받았지.
평소 사생활 노출 위험 때문에 사진도 안 찍고 SNS도 전혀 안 하신다는 분이 중학교 꼬맹이를 위해서 단체 사진도 찍으시고 한 명 한 명 따로 사진도 찍으셨다는. 그리고 바래다주는 길에 내 차에 내리시면서 “사진 보내주실 거죠?” 하실 땐 살짝 귀여우셨음.
또 하나, 행정실 직원 착오로 강의 끝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강연료가 지급되지 않았는데 아무 연락이 없으셨음. 내가 착오를 발견하고 거듭 사과드렸는데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음. 여러모로 존경스러운 분이시더라.
사족> 선생님의 <뿌쉬낀>이 희귀본이라는 것을 아시냐고 여쭈었는데 '관심없다'고 하심
앞으로 낼 책에 대해서 여쭈었는데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니 묻지 말라고"하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 1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하신다고 ㅠㅠㅠ
오우쒯 이 무슨 값진 경험
부롭따..
센세시네
세상에.. 글이나 영상에서 뵐 땐 엄청 깐깐하실 줄 알았더니 진짜 의외네 ㄹㅇ 인격자이신 듯 존나 부럽다
님이나 석 선생님이나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구만 잘 읽었습니다
와 이글은 참 귀하네요
독갤 17년 하면서 부러운 건 두번째다
무한한 존경...
독서만담의 박균호작가님이신가요? 맞으면 이거 귀한 글이네..
네 맞습니다. ㅎㅎㅎ 반갑네요.
진짜 멋있는 사람
이런 누추한 갤에 귀한 분 둘이
대단한 사람 - dc App
개쩌네 석영중 선생님이 번역한 뿌쉬낀 존나 재밌게 읽었는데
지린다지려 - dc App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니 묻지 말라"ㅋㅋㅋ
와...이런 미담이...
존경합니다
귀한 분과 귀한 분..ㄷㄷ
독갤에서 작은 학교인데 석영중 교수 초청 메일 보냈다가 답신 받았다는 글을 봣었는데 그건가보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