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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학은 기독교라는 통일성을 토대로 삼아 민족 문학을 파생시켰고, 민족 문학은 다시 모더니즘 등의 사조로 극단적 분화를 이뤄냈는데, 이 진화의 나무, 진화의 덤불은 유럽의 지정학적 특성 덕분이었다. 이 진화의 덤불 전체를 세계 문학이라고 부르자. 저자가 정의하는 세계 문학이란, 모든 탁월하고 위대한 작품들만이 아니라, 출판되어진 99%의 모든 서적들을 포괄하는 말 그대로의 모든 문학 서적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세계 문학은 어떻게 연구해야하는가?

 

<멀리서 읽기>는 이 세계 문학 연구를 위해 기존의 통념을 혁신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려는 텍스트이다. 저자는 하나의 아이디어로써, 유럽에서 발생한 진화의 덤불을 규명하고자, 존재하는 모든 고유한 개체와 종들을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있는 진화론, 각 개체 혹은 종들 간의 차이를 다학제적으로 해설할 수 있는 지리학, 두가지 학문으로부터 관점과 틀을 빌려온다. 이 책의 문제 의식은 이러하다. 1%의 정전만을 골라 꼼꼼히 읽어본 후 문학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기존의 연구 방법론으로는 이 진화의 덤불 전체를 설명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나머지 99%의 출판 서적들을 모두 읽어보기도 불가능한 노릇이다. 따라서 출판된 문학 작품들을 장르 혹은 지역 등으로 범주화하여 연구한 연구 비평 문헌들을 대신 읽음으로써, 1%의 정전과 99%의 범작들을 모두 포함하는 100%의 세계 문학 연구를 시도한다. 이 방법을 두고 멀리서 읽기라고 한다.

 

<멀리서 읽기>는 유럽 문학의 지리적 역사와 흐름, 세계 문학의 정의, 문화의 지리적 파생, 전파 양상, 새로운 연구 방법론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매우 흥미롭게 제시되어있는 꿀잼책이다. 문장마다 따옴표와 강조체, 괄호를 남발하는 괴상한 습관 때문에 글이 편하게 읽히지는 않았음에도, 본인의 의도와 아이디어를 꽤나 명확하고 상식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쉽고 재밌게 받아들여진다. 마르크스로부터 사회문화적 요소를 양적으로 연구하는 방법론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문학의 추상 요소를 양적 연구가 가능하게끔 구조화하는 방식과 내용을 실제로 보니 상당히 흥미롭다. 추리 소설의 문학적 장치 혹은 특성은 계측할 수 있는 요소인가? 소설의 문체를 정량화할 수 있는가? 문체와 장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지점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지수화할 것인가? 어떠한 양적 방법론의 핵심 아이디어가 문학이 아닌 다른 시장, 예컨대 영화 시장에도 통용될 것인가? 성공한 작품은 모방의 대상이 되는데, 모방 가능한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는 무엇인가? 등


이러한 일련의 아이디어들은 문학의 파생 양상에 있어 비평가들의 역할을 배재한다. 그 대신 시장을 핵심 전제로 격상시킨다. 저자가 포착한 바로, 기존의 비평가들은 원칙상 유럽 문학의 파생 양상에 기여할 수가 없었다. 파생은 모방과 적응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비평가들은 정의상 자신이 비평하고자 하는 서적들과 다른 99%의 별 볼일 없는 출판 서적과의 차이를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출판 서적을 읽어볼 수 없는 비평가 개인은 그 차이를 선행 인지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의 비평은 작품의 성공과 전파에 기여한 바가 없거나 사후적이다. 어떤 작품의 파생을 선행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다. 소비자 집단은 어떤 식으로든 출판된 모든 서적들을 집단적으로 비교 선택하기 때문이다. 파생에 필수적인 모방과 적응은 모방될 대상을 필요로 하고, 그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시장이다. <대중의 지혜> 라는 책에서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는 집단의 의사결정 방식과도 얼핏 결이 비슷하다. 다만 <대중의 지혜>가 수학적 통계 법칙의 존재를 이야기하는데 그쳤다면, <멀리서 읽기>는 시장의 역할과 그 매커니즘이 작동하는 원리를 정량적으로 규명하려고 시도한다. 정말이지 양적 연구 방법론이라는 목적에 충실하다.

 

이 책을 읽고 유럽 문학의 지정학적 역사와 다양하게 분화된 사조 및 장르들의 특성, 그 연구 방법론, 시장의 역할 등을 고찰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나에게 떠오르는 것은 양과 질의 문제이다. 양과 질, <스케일> 이라는 책은 규모의 측면에서 볼 때, 양이 선행되면 질적으로 새로운 계가 창발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삼다 명제를 생각해봐도, 양은 질에 선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멀리서 읽기>도 결국은 양적 방법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그 방법론을 질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결국 내 안에서 양과 질은 잘못 배치된 이분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질은 양으로부터 창발되는 새로운 계가 아니라 거의 중력과 같은 상위 전제인게 아닐까?

 

가르강튀아의 중력은 지구보다 수억배 강력합니다! 중력을 높이고 싶으면 질량을 키우면 되겠군요! 그런데 모래 알갱이도 중력을 가지고 있잖아? 그럼 중력은 질량이 커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질량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잖아! 그럼 질량의 규모가 중력 자체의 발생과는 상관이 없네? (챗지피티한테 물어봄. 반박시 김상욱)

 

질의 존재 자체는 양의 규모와는 무관한 것 같다. 그러나 양이 증가할 때 질도 증가한다고 가정한다면, 결국 삼다 명제는 옳다. 그렇다면 두가지 관점, 1. 규모의 측면에서 양과 질은 상관관계가 있고. 충분한 양으로부터 질은 창발될 수 있다. 2. 양이 아무리 적어도 질은 존재하고. 질이 양에 선행 혹은 불가분관계에 있다. 보통 관심이 있는 지점은 어떻게 질을 높일 수 있느냐일 것이다. 양적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이 1의 관점을 따른다. 그러다 만약 2가 옳았을 경우, 1의 관점조차 2에 종속된다. 따라서 정말로 궁금한 것은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양적 방법론이란 무엇인가?” 가 되겠다. 막무가내로 마구잡이로 애쓴다고 뭐가 되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소리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 그 전형의 초안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멀리서 읽기>. 질적으로 우수한 양적 방법론은 모든 분야의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수단이 아니겠는가? 이 책이 정말로 좋은 부분은, 그 핵심이 되는 문제 지점을 정확히 찔러낸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모든 것들은 이미 존재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핵을 얼마나 정확히 포착하고 풀어내는가이다. 요약의 형태로는 절대로 전달되지 않는 그 지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