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라고 성애 묘사 때문에 금서로 지정되고 난리가 난 소설이 있음.
여기서 등장인물 코니와 맬러스가 산속 오두막에서 떡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엄청 꼴리거든.
근데 떡씬 앞에서 두 사람, 특히 코니 이야기를 길게 들려주면서 떡을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독자에게 이해를 시키지.
근데 하루키는 그런게 없어. 그냥 이유없이 떡을 침.
내가 보기엔 하루키는 야스를 인물을 형상화 하는 하나의 장치로 쓰는 거야.
머리모양, 옷 스타일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설명하듯이 떡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데
그게 이상하다는거지.
이거는 그 시대에 유행했던 스타일이고 서구 선망같은거야. 아시아에서 70-90년쯤 이런게
유행했었어. 자유로운 야스를 도회적인, 서구적인 스타일이라고 믿은거지.
떡을 아무때나 막 치는걸 도시적 스타일을 넘어 일종의 공허라고 믿는 애들까지 있었는데
주윤발의 쌍권총과 비슷하지. 그때는 주윤발 영화에 열광했지만 지금은 유치해서 닭살이 돋잖아.
그게 좋은 사람은 하루키 야스가 별거 아닐테고 아닌 사람은 이상하지.
근데 이런건 어떻게 보면 야스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거야. 야스는 누구나 다 하잖아. 그게 무슨 스타일이야.
뭐 하루키가 성장했던 시절은 그랬으니까 이해가 가기는 함.
꼴리는건 보바리 마차 떡이 더 꼴류
그건 묘사가 별로 없잖아. 별거 없도만.
그게 ㄹㅇ 꼴인건데 묘사가 없는데 하고 난 뒤 사람들 반응이랑 그 여자반응이 천지차이인 그 점
반대로 채털리가 야스의 과대평가 아님? 진정한 사랑과 교감을 야스로 둔 거잖아. 하루키는 어느때든 할 수 있는 흘러가는 일상과 다름없는 무의미의 버둥거림으로 본 거고.
채털리에서는 거기서 떡을 쳐야될 이유를 장황하게 열심히 설명하고 쳤으니까 과대평가가 아니지. 이유를 충분히 만들었잖아. 하루키 야스는 맥락이 없으니까 반대로 섹스 자체에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한거지. 이유가 없으면 야스는 배설행위에 불과한데 설명이 하지 않은 것은 작가가 섹스 자체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믿은거지. 이유없는 섹스는 화장실 가서 오줌 싸는거랑 같은데 그게 스타일이 되냐?
아니지 사랑의 이유로 결론을 섹스로 뽑은 거지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니 그 표현을 위해 섹스를 하자는 건데 이게 과대평가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뭐 섹스가 배설행위가 되면 안됨? 오히려 섹스가 성스러운 사랑의 표현이라는게 구시대적 메타포 아닌가
하루키 야스는 도적적인 것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냥 소설의 기술적인 측면의 논쟁이지. 섹스 자체는 행위로만 좁혀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어서 그냥 화장실 가서 오줌싸는거랑 마찬가지야. 근데 그걸 소설에 쓰려면 스토리상에서 의미부여를 해야지. 근데 하루키는 설명을 안함. 그거는 오히려 하루키가 섹스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거야. 설명이 없어도 그 자체로 작동을 한다고 본거겠지. 반대로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그렇게 설명을 많이 한것은 원래는 야스에 특별한 의미가 없기 때문에 개고생을 해가며 의미부여를 한거라고.
하루키가 싫어서 로렌스까지 끌고오면서 넘겨짚는 거 같은데 나랑 정확히 반대로, 덤터기까지 쓰면서 읽어내내
글쎄 사랑의 결실로서의 섹스가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건 너무 간 거 같네. 애당초 섹스-사랑은 기표-기의 관계에 대한 상징이기도 함. 기표-기의 간 자의성이 밝혀졌다곤 해도 둘의 필연성을 주제로 나온 게 상징주의 시학이고. 그런 점에서 매개의 필연성과 체계적 구성을 담보하는 섹스-사랑은 매도될 게 아니고, 문학적 가치를 부여받을 만하다 봄
섹스가 사랑의 결실이니 뭐니 그런거 일도 안중요함. 섹스는 가치중립적인 행위고 그거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작가의 몫임. 그런 관점에서 하루키가 섹스에 의미부여를 안했다는 것은 독자와 작가사이에 합의된 섹스에 대한 어떤 감각이 있었다는 거야. 그 감각이라는것에 성에 보수적인 아시아에서 서구를 선망하면 만들어낸 인위적인 스타일이라는거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똥싸는 것도 나름 개성이라고 울부짖는 꼴인데 안 이상하냐?
그냥 미감 감각 이전에 의미 부여부터 하려니 감상 스타일이 달라 내가 말을 줄일까 싶음 난 하루키 읽으면 나름대로 즐거우니 잘 읽을게 대단하신 안목으로 의미부여 잘해주는 쉬운 작가들 잘 읽으셈 ㅇㅇ
ㄴ단어 하나하나에 의미와 이유가 있어야 된다는 사람한테 뭔 말을 더함? 똥이 무서워서 피함?
작가가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구성에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왜 똥임? 왜 갑자기 섹스를 집어넣었을까? 어떤 의미가 있는거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거 아님? 단어 하나하나 의미 찾는 것도 아니고 ‘섹스’가 하루키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데 그럼 하루키가 ‘섹스’를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이래서가 아닐까 이게 글 내용인데 동의하고 안하고는 자유지만 저
저게 급발진해서 비꼬고 똥취급할정도임?
그리고 이전 댓글은 너무 급발진한거 같아서 지웠다 미안하다
걍 논지부터가 모든 소설 구성 요소에는 의미가 필요함 ->근데 하루키 섹스에는 아무리 뒤져봐도 의미가 없음(여기서부터 틀려쳐먹음) ->섹스에 의미가 없다면 이건 하루키 스스로 섹스에 대한 의미를 가짐을 암시함(이건 또 뭔 개소리야) ->따라서 하루키는 그저 게으르게 90년대 자유로운 섹스의 의미에 기대서 글을 쓴 거 뿐임 이게 말이 되냐? 처음부터 끝까지 자의적이고 피상적인 해석 밖에 없는데
그냥 처음부터 난 과한 야스는 싫음! 걍 너무 야동 같아! 이러면 몰라 뭔 공들인 의미가 없느니 익숙함에 기대서 게으르다니 철 지난 스타일이라느니 철 지난 스타일이면 지금도 인싸들이 읽겠노? 결국 갤에서 아무리 얘기해봐야 하루키 섹스가 싫은 이유=내가 야스에 엄격한 인간이라 이거 밖에 없는데 내재적이든 외재적이든 갖은 이유 들어가며 하루키 소설의 작품성적인 문제로 걸고 넘어지는게 싫은 거야 나는
에휴시팔
그냥 조미료 정도로 생각함.. 작가 개인의 기호가 듬뿍 담긴 치킨스톡..
뭔 의미로 과대평가라 하는지 모르겠노... 채털리는 이유가 있으니 과대평가가 아니고 하루키는 이유가 없으니 과대평가고 또 섹스는 아무나 하는건데 하루키가 과대평가했고 로렌스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걸로 봤지만 과대평가가 아니고
그냥 mz 아니라서 싫은 거 아님?
섹스행위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보면 작가는 그걸 의미있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해. 오줌싸는 장면을 소설에 많이 등장시키려면 독자를 이해 시켜야지. 근데 하루키는 그런 과정이 없어. 이거는 이미 작가가 쓰기 전에 섹스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했기 때문임. 설명이 없어도 독자들이 받아들인다고 생각한거지. 이거는 섹스를 금기시하던 보수적인 아시아에서 성에 개방적인 서구를 선망하던 그 시대 분위기에서 나온거야. 근데 지금 시대에서 보면 이해가 안가지. 화장실 가는게 무슨 스타일이고 개성이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시대에는 섹스가 스타일이 되려면 설명이 빠지며 안되는 거야.
이미 특정한 기호는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상징적인 의미를 가짐. 그 섹스라는 것도 보통 특정한 상징으로 해석되는데 그걸 한다는 거 자체가 의미가 있고 독자는 그걸 해석해야 함 그냥 스타일이다 퉁칠 게 아니라. 섹스에 의미부여를 했다면 로렌스나 하루키나 둘다 소설을 통해서 함
무기여 잘 있거라 결말에서 비 내리는 게 무슨 상징임? 비 내리는게 뭔 근징이여 이럴거임? 다 죽고 끝나는데 비 내린다는 것 다체가 작가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를 가지게 됨
왜 작가가 그런것들에 일일이 다 깊은 의미를 담아서 썼을거라고 생각해? 그냥 넣은 거일수도 있지. 그냥 자기 스타일이거나 소나기 보라색도 그렇고 너를 기다린다 였나? 그 시인도 그냥 친구 기다리면서 쓴 거라고 했고. 정작 작가는 특별한 의도가 없었는데 해석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그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