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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읽고, 최근에 독서 모임 때문에 한 번 더 읽음.


인간실격은 상당히 애매한 책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고 싶다면 '사양'을, 미려한 문장을 느끼고 싶다면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권하고 싶다. 이따금 친구가 책에 대해 물을 때, '우웅... 요조 우우랭... 쥬꼬시포... 그렇지만 여자도 만나고 시포... 우웅...'으로 줄거리가 요약되며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는 사족을 덧붙였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해서 인간실격은 컬트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다.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말하자면, '우울한 나'를 꾸미기 위한 일종의 치장품으로서의 인기같이 보인다. 쿠로미가 없는 시대에 태어났을 뿐인 범부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민음사 표지가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 아니었다면 판매량은 더 적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실격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향이 강하게 묻어있다. 요조의 부유했던 어린 시절, 여성 편력, 동반 자살 시도 등 곳곳에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수필같이 쉽게 읽힌다. 다소 강렬한 제목과 그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한 문장인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덕분이다. 이 두 가지 이정표를 가진 독자는 인간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격된 이유를 묻고, 왜 부끄러워하는지 궁금해해야 한다. 단순히 작가가 " '부끄럼 많은 생애' 캬~ 필력 미쳤다!" 하고 넣은 게 아닐 테니 말이다.

요조의 부끄러움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요조가 어떤 삶을 원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요조의 시선에서 이상적인 인간은 사회에 스스럼없이 끼어들며 가식으로 꾸미지 않아야 한다. 반면, 요조는 거짓을 연기했기에, 스스로를 실격된 존재라 여기며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요조를 괴롭히는 주된 부끄러움은, 이 모든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치려 하지 않는 자기에게서 비롯된 감정이다. 다만, 앞서 물은 질문에 대한 논의를 여기서 끝내면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과 부끄러움이라는 소재가 머릿속에서 선악과를 속삭인다.

다자이 오사무가 성경을 기반으로 한 단편 소설-유다의 고백-을 지필 한 것 외에도, 성경 구절을 '사양'에 인용하기도 했기에 선악과는 퍽 자연스러워 보인다. 성경 속 에덴의 뱀은 선악과가 인간을 진보하게 만든다고 하와를 속인다. 결국, 꾀임에 넘어간 하와에게는 선악의 구별은커녕 부끄러움만 얻는다. 따라서 다자이 오사무에게 인간이란 하와가 그랬듯,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욕망하고, 선악과란 우를 범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다움 하에, 요조의 부끄러움은 되려 인간성을 부각하는 장치로 변모한다. 요조는 부끄러움이라는 원죄를 어느 이보다 감내하는 자로서 진실한 인간이 된다. 인간실격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상기한다면, 다자이 오사무는 본인의 삶에 대한 변명과 연민을 인간실격으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점이 사람들이 인간실격을 사랑하는 이유다. 정도는 다르지만, 모든 이들은 요조처럼 사회적 자아와 실제 자아 간의 괴리에 괴로워한다. 다들 요조에게서 자신을 보고, 가련하게 여긴 게 아닐까. 사람들에게는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 훌륭하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 여동생을 사랑했으며, 자신을 뒷바라지해 준 정부(情婦)를 뒤로하고 부유한 집안의 여식과 결혼한 에곤 실레의 삐뚤어진 자화상은 하나의 장신구로서의 가치를 올려준다.


요조에 대한 내 감정은 동질감에서 시작된 혐오를 넘어서 민폐에 대한 혐오임.

세상 사람 다 힘든데 너무 징징거리고 달라지지 않아.

요시코 너무 불쌍하다.


번외)

요조는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어렸을 때 하인에게 겁탈당했음을 고백해야 함.

작중 요조와 가장 닮은 사람은 요시코.


독서 모임 한지 한 달 됐는데, 못한 말이 못내 아쉬워서 써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