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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고대 그리스 만큼 후대인들에게 칭송받는 국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세만큼이나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왜곡된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다. 폴리스라는 정치 체제에 대한 이상화와 비판, 국민의 조건, 노예제를 전제로 하는 예술적, 철학적 생산성, 국가적 가치관, 신화의 입지와 역할, 그리스 신들의 부도덕함 등의 이미지들은 지금까지도 밈으로 소비되며 고대 그리스에 대한 왈가왈부를 형성한다.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는 이 왜곡된 이미지들을 해소하고, 실제 고대 그리스에 대해 더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더 풍부하고 디테일한 그림을 그려내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를 향한 애정을 듬뿍 담아 글을 전개한다. 그리스의 지리와 기후, 언어로부터 시작하여 호메로스를 토대로 이어지는 고대 그리스의 풍부한 예술적, 문화적, 사회 정치적 업적들은 독자로 하여금 고대 그리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뽕맛이 아주 좋다. 그래서 저자의 애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책임에도, 사료와 증거, 추측과 이론을 제시할 때는 상당히 사실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점이 인상 깊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주택 구조와 가구들, 생활 양식, 농법, 지리적 기후적 특성 등에 대한 사실적 기록에 근거하여 당시 사회의 계급적 차이와 인간적 평등, 개개인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한 부분이 그렇다. 무슨무슨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 만큼 고대 그리스는 그다지 평등하지도 혹은 억압적인 곳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참여적인 곳이었다. 참여적 국가답게, 각 개인이 어떤 식으로 참여했느냐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역사적 인물들이 단지 사료의 일부로써 등장하기도 하며, 국가적 차원의 어떤 결과를 가져왔던 한 개인의 연설이 상당량 그대로 인용되기도 한다. 이 인용문들만 읽어봐도 고대 그리스 고전들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논의들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가 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사실적 기록이 풍부한 부분으로부터 사실적 기록이 부족한 부분으로 논증을 이어나갈 때에도 가능한 구체적 인과를 보여주려 노력하는데, 그남충 제우스의 호색이 사실은, 경쟁에서 승리한 한 부족이 타 부족의 신들을 자기 신 체계에 우호적으로 편입해온 결과임을 이야기하는 파트 등이 그러하다. 저자의 우호적인 스탠스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고대 그리스의 포용성과 엄격한 태도의 양립은 무적이나 매혹적이다. (그리스 문화권 중에서도 엄격함으로 유명했던 스파르타는 잔인한 약육강식형 전투민족이 아니라 스토아적 수도승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고대 그리스 뽕이 저절로 차오른다. 저자도 저자겠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말 뽕맛이 뭔지 알고 있던 사람들인 듯하다. 아마도 그 뽕맛은 사실성과 구체성이라는 배를 타고 이데아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올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호메로스 서사시로부터 비롯되는데, 본인의 서사시 외에 이렇다 할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호메로스가 그 두 개의 서사시 만으로도 고대 그리스의 정신의 토대가 됬다는 논증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사실 호메로스 서사시의 담긴 가치들을 이야기하는 텍스트만 따져도 도서관 한 층은 거뜬히 채울 것이며, 이 책에서도 하나의 파트를 통으로 할애하여 호메로스와 그 서사시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호메로스는 신이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가 있어 타노시캇타!

 

<고대 그리스...>는 구체적 사실들을 활용해 고대 그리스에 대한 멋지고 풍성한, 또 재밌는 그림을 그려낸다. 덕분에 훌륭한 교양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저자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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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지도>

 

뇌는 흥미롭다. 뇌가 좌우로 양분되면 두 배로 흥미롭다. 그리고 분리뇌를 연구하는 다정하고 열정 넘치는 학자의 삶은 더더욱 흥미롭다. <, 인간의 지도>는 분리뇌 연구의 권위자인 마이클 가자니가가 쓴 자서전으로, 저자의 풍성한 추억 속에 분리 뇌 연구와 인지 신경학의 역사적 기점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학문적 회고록이다.

 

개인적으로는 뇌 전체를 하나로 다룬 책들보다는 좌우 반구를 다루는 책들이 더 재밌다. 뇌의 기능이 극도고 복합적이라 저자의 글솜씨에 기대지 않으면 명확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적은데에 비해, 양반구 연구에서는 그 사례만으로도 구조적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럼에도 좌뇌가 뭘 하고 우뇌가 뭘 하는지, 국소적인 뇌 영역들은 차치하더라도, 양 반구가 하나의 현실을 어떤 식으로 양분하여 담당하고 있는지 어렵고 아리까리하기는 매한가지다. 혹자는 하나의 뇌와 두 개의 정신이라고 묘사하기도 하고, 하나의 현실이 수십가지의 편협한 관점으로 나눠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됬건 뇌는 그것들을 모두 통합해 우리에게 하나의 인식만을 제공한다. 두 가지 개별 사물을 하나의 세계로 볼 수는 있을지 언정, 하나의 사물을 두 가지 세계관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하나의 사물, 하나의 현실을 다른 세계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 인간의 지도>는 과학자의 인생이라는 어떤 이미지를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보여준다. 과학자의 삶이 이토록 유머러스하고 활기차며, 풍성하고 또 아름다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이렇게 소중할 수 있을까? 아니, 그 누구의 삶이라도 이런 삶이라면 정말 멋지고 훌륭한 삶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 자신의 가치 뿐 아니라 그가 관계해왔던 모든 이들의 재능과 가치 덕분에도, 이 책에 쓰인 회고적 삶은 정말 빛이 난다. 멋모르던 학부생 시절부터, 인지 신경학의 태동과 그 역사적 기점들, 존경스러운 스승들과 학계, 불타는 학구열과 냉철한 현실감각을 동시에 겸비한 너무나 인간적인 동료들, 탁월한 인내심과 성실함, 유머까지 갖춘 뇌량 분리 환자들과의 오랜 우정, 다정하고 애틋한 가족들까지. 인간은 삶을 경험으로 살아가는 한편, 기억으로도 살아간다. 회고록이라는 형식은 기억으로 살아진 삶을 대변한다. 추천사에 쓰여진 말처럼, 가자니가 주변에 멋지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인지, 그 스스로가 주변인들에게서 그런 부분들을 이끌어내는 것인지, 혹은 그런 부분만을 추려 기억해온 것인지 진실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 인간의 지도>라는 책으로 제시되어진 하나의 기억된 세계는 고난을 모험으로 승화시키며, 지지부진한 연구들을 학구적 애환으로, 켜켜히 쌓인 인간관계들을 소중한 우정으로 변모시킨다.

 

경험이 지나간 후, 모든 인식이 사후적일 수 밖에 없을 때 회고의 형식이 삶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나는 가자니가가 보여준 방식으로 삶을 기억하고 싶다.